[Book] ‘모든 악마가 여기에 있다’

탐욕에 물든 월스트리트를 향한 분노

‘모든 악마가 여기에 있다’

요즘 뉴욕 월스트리트는 1980년대 한국 대학가 시위 현장을 연상시킨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street)’는 구호를 내건 시위대들이 아예 월스트리트 인근 주코티공원에서 먹고 자면서 수주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자신들을 ‘99%의 미국인’으로 지칭하며 금융 위기로 경제 파탄을 초래하고도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는 탐욕스러운 1%를 향해 내뿜는 이들의 분노는 독재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일어섰던 중동 시위대들의 외침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책은 이 모든 사태의 출발점이 된 2008년 금융 위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라는 낯선 이름으로 우리에게 닥쳤던 이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세계 금융시장을 다시 얼어붙게 한 유럽 재정 위기와 월스트리트를 점령한 시위대들이 생생한 증거다. 위기는 누군가 위기가 끝났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 새로운 시작은 위기가 충분히 무르익어야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저자들은 먼저 대참사의 진원지가 된 주택저당증권(MBS)의 역사를 추적한다. 금융 재앙의 씨앗은 30여 년 전 영리하고 야심 찬 세 남자에 의해 뿌려졌다. MBS가 생긴 덕에 주택 구매자에게 돈을 빌려 준 금융회사는 재출채권을 투자자에게 팔 수 있게 됐다.

루이스 라니에리와 랠리 핑크, 데이비드 맥스웰이 MBS를 만든 주인공이다. 이들은 MBS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 때문에 벌어질 엄청난 위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금융 위기가 미국을 휩쓸고 지나간 뒤 라니에리는 자신이 역사상 가장 큰 ‘폭탄 돌리기 게임’을 만들 생각이 없었지만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다고 털어놓았다.

이 책에는 뉴욕의 금융 시스템과 투자 기법, 위기를 유발한 법률가들과 회계 책임자들, 의사결정 과정의 황당함, 투자은행들의 탐욕의 극치가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전대미문의 거품 붕괴에 따른 미국 금융회사들의 부도를 막기 위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사상 초유의 공적자금을 퍼부었다. 그는 국민의 세금과 미래 세대들의 피와 땀을 수탈해 가는 부도덕한 뉴욕의 금융인들을 ‘망치로 때려 주고 싶다’며 분노했다.

배서니 맥린 외 지음┃윤태경 외 옮김┃540쪽┃자음과모음┃1만7000원



이종우의 독서 노트
새로운 기축통화는 가능할까

사람들이 정형화된 돈을 만들기 전에 교환 수단으로 물건을 사용했던 것처럼 미국도 정착 초기에는 옥수수, 대구, 심지어 담배까지 동원해 거래했다. 당연히 고약한 문제가 생겼는데, 저급 담배의 생산으로 구매력이 떨어지자 버지니아에서는 법적으로 담배 경작을 제한하는 조치를 검토하기도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영국과 스페인의 은화다. 미국이 통화를 만들어 봐야 유통되지 않을 테니 당시 국제통화였던 이들의 돈을 들여다 쓴 것이다. 그러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는데, 영국과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돈의 유입이 줄어들어 유통에 곤란을 겪게 된 것이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달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5년 동안 달러는 최고의 지위를 누렸다. 영국에 전후 복구 자금을 지원해 주는 대가로 기축통화의 지위를 물려받았고 미국 경제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으로 성장하자 화폐의 지위도 따라 올라갔다. 당시 달러는 미국 밖에서도 금만큼 인정을 받았다. 누구든 달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미국 은행에서 온스당 35달러로 계산해 금을 인도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달러가 가지고 있던 절대적 지위는 1970년대 들어 흔들리기 시작했다. 독일과 일본이 강한 제조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따라붙고 미국의 채무가 늘어나 더 이상 달러를 금으로 바꿔줄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달러의 위기가 계속 얘기되고 있다. 무서운 속도로 치고 올라오는 중국과 통합을 통해 경제 규모를 미국만큼 키운 유럽 통화가 달러를 대체하리란 전망이다.

이는 기우다. 위상이 좀 떨어지기는 하겠지만 앞으로 오랫동안 달러는 기축통화의 역할을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 어떤 나라도 달러의 지위를 이어받을 능력과 의지가 없기 때문인데, 위안화가 달러를 대체하려면 금융시장 개방을 통해 통화가 자유롭게 거래되도록 해야 한다.

1997년 개방의 후유증으로 아시아 국가들이 외환위기에 몰리는 걸 지켜본 중국이 이런 모험을 할 이유가 없다. 유럽은 상황이 더 나쁘다. 경제가 나쁘고 재정이 엉망이다. 여기에 17개 국가가 모여 하나의 통화를 만드는 구조적 약점을 안고 있기 때문에 유로는 달러보다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달러제국의 몰락’은 달러가 등장한 후 세계 기축통화로 자리 잡고 약해지는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 배리 아이켄그린이 경제사를 전공한 만큼 역사와 이론을 결합해 썼다.

통화는 제국의 힘을 반영한다. 제국의 힘이 강하면 아무리 막아도 그 나라 돈을 가지고 있으려는 욕구를 제어할 수 없지만 힘이 약해지면 통화도 버림을 받는다. 미국의 힘이 예전만 못한 만큼 앞으로 달러의 지위는 계속 뜨거운 쟁점이 될 것이다.

솔로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jwlee@solomon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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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
앤드루 오키프 지음┃최수진 옮김┃424쪽┃
푸른여름┃1만5000원

직장에서 벌어지는 상사와 부하 직원의 리얼 생존 스토리다. 직장 내 권력 구조와 갈등·음모·생존법을 소설로 풀어냈다. 아첨꾼, 중상 모략가, 아이디어를 훔치는 사람,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 시도 때도 없이 소리를 지르는 사람 등 다양한 유형의 상사들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회사에서 상사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집에 돌아와 이솝우화를 펼친다. 직장 생활에서 벌어지는 온갖 불화와 부조리는 어리석고 무지한 동물들이 판을 치는 이솝우화와 다를 것이 없다.



그림자 시장
에릭 J. 와이너 지음┃김정수 옮김┃404쪽┃
랜덤하우스코리아┃2만 원

세계경제의 구조 변화를 이끌어가는 ‘그림자 시장’을 분석했다. 세계 금융시장을 배후에서 주무르는 유대인 자본을 겨냥한 음모론들과는 차이가 있다. 그림자 시장은 유럽이나 미국이 아니라 중국과 여러 산유국, 싱가포르·노르웨이 같이 막대한 투자자산을 보유한 나라들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거대한 국가 소유 지주회사와 헤지 펀드, 비공개 투자 펀드, 국부 펀드 등 규제받지 않는 투자 수단을 통해 세계경제를 바꿔 놓고 있다.



마음으로 리드하라
류지성 지음┃328쪽┃삼성경제연구소┃
1만5000원

리더를 위한 리더십 지침서다. 수백 명의 직원을 거느린 경영자나 서너 명의 작은 팀을 이끄는 팀장이나 공통적으로 느끼는 고민이 있다. 바로 부하가 자기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풀려면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사람의 마음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피터의 원리, 리더십 파이프라인 등 부하 직원들의 복잡한 심리 프로세스를 제대로 읽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다양한 노하우를 전해준다.



환율의 역습
조재성 지음┃288쪽┃원앤원북스┃
1만5000원

외환시장 최전방에서 활약하는 금융 전문가가 환율에 대해 쉽게 풀어썼다. 유로존의 재정 위기 확산과 이에 따른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환율이 또 한 번 급등하고 있다. 과거 환율이 급등할 때마다 주가와 부동산은 폭락하고 기업의 이익이 급감했다. 바로 환율의 역습이다. 이제 환율은 이에 대한 이해 없이는 세계경제는 물론이고 국내 경제도 이해할 수없을 정도로 중요한 경제 변수다.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의 이동은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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