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금 지급 계획의 함정- 일정 금액 ‘여윳돈’ 갖고 있어야

얼마 전 경기도 광명시에 거주하고 있는 K 씨에게 연락이 왔다. 이사를 하고 싶은데 경매로 주택을 구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주하려는 지역과 취득하려는 아파트의 규모, 자금 사정에 대해 묻자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99㎡형(30평형)대 아파트를 보고 있으며 자금은 약 2억 원 정도여서 대출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 정도 조건의 아파트를 경매로 취득하려면 3억~4억 원 정도에 가능해 컨설팅 계약을 맺었다.

드디어 적당한 물건이 나왔다. 감정가 3억8000만 원에 1번 유찰돼 3억4000만 원에 2차 입찰을 예정하고 있는 사건이었다. 고객과 함께 현장을 방문해 보고 주민센터에서 전입 가구 열람을 해보니 권리 분석상 큰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고객도 매우 만족해하는 모습이었고 벌써 낙찰이라도 받은 양 흥분으로 얼굴까지 붉어졌다.

그런데 문제는 입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매각 기일에 준비해야 할 것들로 신분증과 도장, 입찰 보증금을 알려주자 난감한 표정이었다. 당장 입찰 보증금 3040만 원을 어디서 구하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자금이 2억 원 정도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니 지금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의 전셋값이 2억 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전세 계약 기간은 이미 만기가 됐고 마음 좋은 임대인은 필요한 만큼 더 살다가 언제든지 1개월 전에만 통보해 주면 보증금을 돌려주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고객은 낙찰을 받고 대출금과 반환받을 보증금을 합해 낙찰 잔금을 지급할 요량이었던 것이다. 사정을 듣고 보니 정작 문제는 입찰 보증금이 아니었다. 입찰 보증금이야 급한 대로 융통한다고 하더라도 낙찰 잔금 지급 후 명도가 끝날 때까지 거주할 곳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경매로 부동산을 낙찰 받으면 낙찰자는 잔금을 지급함과 동시에 낙찰 부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한다. 법적으로 내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부동산에 거주하고 있는 전 소유자나 임차인이 낙찰자가 잔금을 지급함과 동시에 부동산을 낙찰자에게 인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쩌면 전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별다른 요구 조건 없이 부동산을 비워주는 착한 소유자나 임차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잔금 지급 당일에 비워주는 사람은 지금까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잠실1단지 부동산 20100620 허문찬기자 sweat@...........

일정 기간 거주할 집 준비해야

그러나 K 씨의 사정은 다르다.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반환 받는 순간 주택을 임대인에게 반환해야 한다. 임대 보증금의 반환과 주택의 반환은 동시이행의 관계에 있는 법률 행위이기 때문이다. 만약 임대주택을 반환하지 않는다면 임대인도 역시 보증금을 반환해 주지 않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2억 원을 2개월 정도 융통할 수 있는 방법이나 2개월 정도 임시로 거주할 장소가 없다면 경매로 아파트를 낙찰 받아 이사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말에 K 씨는 “알아보겠다”는 불안한 대답을 남기고 돌아갔다. 그 후 며칠이 지나 이번 입찰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아파트는 잔금을 지급하고 부동산을 인도받을 때까지 약 1~2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 사안에 따라 더 길어지기도 하지만 아파트는 권리관계가 다른 물건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순하기 때문에 명도에서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중요한 건 기간의 길이가 아니다. 잔금 지급과 동시에 낙찰 부동산을 인도받지 못한다면 어차피 일정 금액의 자금 또는 일정 기간 거주할 곳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것이 부동산 매매와 경매의 무시하지 못할 차이점 중 하나다.

김재범 지지옥션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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