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금융·부동산서 금맥 캐다
한국의 부자들은 누구일까. 지난 10월 10일 재벌닷컴이 1813개 상장사와 1만4289개 비상장사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을 대상으로 본인 명의로 보유한 주식·배당금·부동산 등 등기 자산을 평가한 결과 ‘슈퍼 부자’의 기준이랄 수 있는 1000억 원 이상의 재산을 가진 부자는 보두 262명으로 분석됐다. 이 중 1조 원이 넘는 재산을 가진 부자는 25명이었다.이 조사에서 나타난 특징 중 하나는 전통의 대기업 가문 부자들의 강세 속에서도 자수성가형 부자들이 상위권에 대거 도약한 점이다. 1000억 원 이상을 기록한 부자들이 모두 72명이나 됐다. 재벌닷컴 측은 “2000년 벤처 버블이 꺼진 이후 급격히 줄었던 자수성가형 부자는 ‘스마트폰 혁명’이 시작된 정보기술(IT) 업계를 중심으로 게임·연예기획 등 콘텐츠 산업, 바이오산업 등이 부각됐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연예인 출신은 이수만 SM 회장이 ‘톱’
자수성가형 부자의 대표는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과 김정주 NXC(구 넥슨) 회장이다. 이들은 쟁쟁한 대기업 가문 출신들을 제치고 재산 순위 10위권 안에 들었다.
박현주 회장의 재산은 2조4683억 원, 김정주 회장의 재산은 2조3358억 원으로 평가됐다. 김 회장은 ‘카트라이더’ 등 인터넷 게임으로 대성공을 거뒀으며 외부 노출이 많지 않아 ‘은둔의 게임 황제’로 불리기도 한다.
‘리니지’로 유명한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의 개인 재산은 1조8251억 원으로 분석됐으며 이민주 에이티넘파트너스 회장의 재산은 1조3166억 원으로 평가됐다.
이민주 회장은 우리나라 연극계 대부인 이해랑 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의 아들로 20대 나이에 봉제 업체를 설립해 번 돈을 밑천으로 케이블 사업에 뛰어들어 부를 쌓았다.
김준일 락앤락 회장은 수차례의 사업 실패 끝에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 주방 용품을 내놓아 1조635억 원의 부를 쌓았으며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대우그룹 출신 샐러리맨에서 바이오 사업가로 변신한 지 10년 만에 1조210억 원의 재산가로 성공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1조 원대의 거부 대열에 오르진 못했지만 독특한 아이디어와 열정적인 사업 수완으로 1000억 원 이상의 재산을 쌓은 자수성가형 부자도 66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평순 교원그룹 회장은 학습지 사업을 발판으로 교원L&C 등 각종 마케팅 사업을 벌여 8410억 원의 재산을 보유한 갑부로 발돋움했다. 개인 재산이 7364억 원으로 평가된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역시 슈퍼 부자다.
그는 부영그룹을 자산 순위 기준 30대 그룹사로 받돋움시킨 주인공이다. 1970년대 ‘율산신화’의 주인공 신선호 센트럴시티 회장은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을 바탕으로 5592억 원의 재산가로 부상했으며 샐러리맨 출신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은 타이틀리스트, 풋조이 등을 보유한 아쿠쉬네트를 인수하면서 4707억 원의 재산가가 된 것으로 분석됐다.
진대제 스카이레이크 인큐베스트 CEO(전 삼성전자 사장) 역시 개인 재산이 3426억 원으로 평가돼 종합 순위 80위의 재산가로 등장했다.
이 밖에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등을 거느린 SM엔터테인먼트의 최대 주주 이수만 회장 역시 1865억 원의 재산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회장의 재산은 연예인 출신으로는 가장 많은 액수다.
한국 정치권 ‘태풍의 눈’으로 부상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은 안철수연구소 지분 등으로 1354억 원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됐다.
임대·개발 등 부동산 부자도 수두룩
재산 1000억 원 이상의 한국의 슈퍼 부자들 중에서는 아직 30대이거나 이제 갓 40대에 들어선 젊은 부자들도 있었다. 각각 재산 순위 77위, 99위, 133위로 평가된 원진 디와이홀딩스 대표이사, 박관호 위메이드 대표이사, 나성균 네오위즈 대표이사가 그들이다.
원진 대표는 동양엘리베이터의 창립자 원종목 전 회장의 아들로 재산 평가액이 3578억 원에 달한다. 이유는 디와이홀딩스가 지배하는 디와이에셋이 현재 코스닥 우량주로 평가되는 에스에프에이의 최대 주주이기 때문이다. 박관호 대표는 ‘미르의 전설’로 유명한 게임사 위메이드의 최대 주주이며 나성균 대표는 네오위즈게임즈의 지주회사인 네오위즈의 최대 주주다. 박관호 대표와 나성균 대표는 각각 2682억 원, 2060억 원의 재산을 가진 젊은 부자들이다.
빌딩이나 상가 등 임대업 혹은 개발을 주력 사업으로 하는 부동산 부자도 눈에 띈다. 1980년대 부동산 재벌로 알려진 고 정시봉 전 국회의원의 장남인 정승소 동승그룹 회장은 동대문 종합시장 상가 등 보유하고 있는 재산 가치가 1382억 원으로 평가됐다. 정경한 성담 사장은 강남 삼성동 소재 빌딩 등 보유하고 있는 재산 가치가 1266억 원이었다.
경기 고양시에 ‘웨스턴돔’을 설립해 건설 업계의 스타로 떠오른 배병복 청원건설 회장이 1125억 원의 재산가로 등장했으며 박석훈 세안홀딩스 회장은 광화문 소재 오피시아빌딩 등의 재산 가치가 1046억 원으로 조사됐다. 박석훈 회장은 최근 고급 식당업에도 진출하는 등 사업을 확대 중이다. 동대문 광장시장 대주주인 송호식 광장 회장의 재산은 909억 원으로 나타났다.
또 ‘호텔 부자’도 주목할 만하다. 강남 리츠칼튼을 소유한 이전배 전원그룹 회장이 1391억 원, 축구선수 차두리 선수의 장인으로 알려진 신철호 임피리얼팰리스 회장은 강남 임피리얼 팰리스호텔 및 필리핀 등 해외 소재 리조트 등의 재산 가치가 1096억 원으로 평가됐다.
이 밖에 신영균 제주방송 명예회장이 1166억 원의 재산이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신 회장은 영화배우 출신으로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또 영화인으로는 곽정환 서울시네마 회장이 704억 원의 재산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곽정환 회장은 유명 영화배우 고은아(본명 이경희) 씨의 남편이자 ‘영화계의 대부’로 불리는 인물이다.
‘샐러리맨 신화’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의 재산은
‘비상장 지분+배당’ 등 금융자산이 대부분
최고의 자수성가형 부자로 기록된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의 재산은 어떻게 평가됐을까. 박현주 회장의 재산 2조4683억 원 중 대부분은 비상장 그룹 계열사 지분이다. 박 회장은 공정위 신고 기준으로 미래에셋 그룹 출자 구조의 핵심 회사인 미래에셋컨설팅 지분 48.63%와 미래에셋캐피탈 지분 48.69%를 비롯해 미래에셋자산운용 54.33%,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 79.81%, 미래에셋운용리서치센터 99.9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재벌닷컴 측에 따르면 비상장사 주식 가치는 지난 6월 말 재무제표상 순자산을 근거로 증여상속법(60조, 66조) 기준에 따라 산출된 주식 가치에 동일 업종 상장사의 주가순자산배율(PBR), 대주주 가중치를 부여해 평가했다. 배당금은 2010 회계연도 현금 배당액(세금 미공제) 기준을, 등기 자산은 건물·부동산의 공시지가 가중치, 기타 시가로 산출했다.
이 중 미래에셋캐피탈은 상장 계열사인 미래에셋증권 지분(36.98%) 가치가 4800억 원대에 이르는 등 회사 가치가 1조 원대를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또 부동산 관리 회사인 미래에셋컨설팅은 작년 8월 박현주 회장 및 가족이 대주주로 있던 케이알아이에이를 합병하면서 자체 평가한 주당 가치가 53만3518원(당시 케이알아이에이는 주당 128만4788원 평가)에 달해 가족들이 보유한 지분 가치만 3000억 원대를 기록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 미래에셋자산운용 역시 1조 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올해는 배당금을 기부했지만 박 회장은 이런 비상장사 계열사에서 매년 200억 원에 가까운 배당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부동산과 회원권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미래에셋그룹은 국내 최초로 증권·생명보험 등 금융회사를 주축으로 하는 순수 금융 대기업집단으로 발돋움했다.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대기업집단 순위에서 미래에셋그룹은 공정 자산 기준으로 6조6200억 원을 기록, 공기업과 민영화 공기업 제외한 랭킹 3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홍표 기자 haw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