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 독보적 ‘품질관리’ 시스템 정착

최초 공개-‘품질 경영’에 감춰진 비밀 3가지

1998년 미국 토크쇼 진행자 데이비드 레터맨은 “우주선 계기판에 현대차 로고를 붙이면 조종사가 놀라 귀환을 포기할 것”이라는 독설을 내뱉었다. 당시만 해도 현대차는 가격은 싸지만 품질은 엉망인 차로 불렸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가 주목하고 또 경계하는 자동차 메이커다. 미국 시장조사 기관인 제이디파워(JD Power)의 신차 품질 조사에서 현대자동차는 2004년 사상 처음으로 도요타자동차를 제치고 4위에 올랐고 2009년에는 어떤 자동차 메이커도 넘지 못한 900점을 넘기며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더 놀라운 것은 토크쇼의 조롱거리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자동차 메이커가 되기까지 걸린 기간이 불과 10여 년이라는 점이다. 그 사이 현대자동차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1품질 회의-결함은 한 달 이내 해결

1999년 3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개발 담당 임원에게 기아자동차가 생산 중인 미니밴 카니발을 한남동 자택으로 가져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한 달 후인 4월 초 기아자동차 사장·부사장을 비롯해 연구소와 공장에서 개발과 생산을 담당하는 주요 임원이 모인 가운데 품질 회의가 열렸다.

회의장에는 카니발 한 대가 놓여 있었다. 정 회장은 분필을 가지고 슬라이드 도어 위쪽 창문에서부터 시트 밑, 바닥, 천장, 문틈 등에 동그라미를 치며 말했다. “이것들을 당장 고치시오.” 카니발을 집 마당에 갖다 놓고 밤낮으로 들여다보고 주말이면 직접 몰아본 뒤 느낀 문제점을 하나하나 지적한 것이다.

이때부터 ‘품질 회의’는 매달 한 번씩 열렸다. 통상적으로 하는 회의와는 달랐다. 정 회장의 지적 사항을 어떻게 개선했는지 직접 부품을 가져다 놓고 설명해야 했다. 지적 사항이 빨리 개선되지 않거나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개발 및 생산 담당 임원들에게 품질 회의는 마치 지옥문을 통과하는 것처럼 버거운 것이었다.

임원뿐만 아니라 일선 직원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품질을 개선하는 것뿐만 아니라 회의에 임박해서는 자료를 만드느라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자료를 싣고 오던 직원이 교통사고가 나자 보험사보다 퀵서비스를 먼저 불렀을 정도였다.

당시 한 달에 한 번 아침 8시에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기아자동차 본사에서 주로 열렸던 품질 회의는 현대·기아차가 ‘품질 경영’에 드라이브를 건 모태가 됐다. 지금까지도 10년 이상 꾸준히 매월 품질 회의가 열리고 있다. 현재 양재동 사옥 1층에 품질 회의만을 위한 별도의 회의실을 마련해 놓고 있다.

처음에는 회사 내에서 회의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불만이 나오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부문 간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해지면서 품질 문제가 빨리 개선되는 해결사가 됐다. 품질 문제는 디자인·설계·자재구매·조립 등 어느 한 분야만 나선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품질 회의에서 활발하게 의견이 오가고 역할이 조율되면서 의사결정이 신속해져 어떤 문제든 한 달 이내에 개선됐다. 문제가 생기면 경영진뿐만 아니라 실무자까지 나서 부서의 장벽 없이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만 총력을 기울일 수 있게 된 것이다.

현대·기아차의 품질이 이른 시간 내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린 데는 이런 비결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자신감을 토대로 현대자동차는 미국 시장에서 ‘10년간 10만 마일 보증’을 내걸 수 있었고 지난 10년 동안 눈부신 성장을 한 것이다.

제조업이라면 이런 품질 회의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강력한 리더십이 없으면 하기 힘들다. 현대차 개발품질총괄팀 관계자는 “타사는 이만큼 하지 못할 것이다. 강력한 품질 경영 드라이브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품질 회의가 정착돼 정 회장이 직접 주재하는 경우는 드물고 현대차는 정의선 부회장, 기아차는 이형근 부회장이 주로 챙기고 있다.



2파일럿센터-개발자가 생산 품질까지 책임져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에는 ‘파일럿센터’가 있다. 이곳은 개발이 완료된 차량을 공장에서 조립하기 전에 연구소 내에서 공장에서와 똑같은 공정으로 미리 생산할 수 있는 곳이다. 전 세계에서 현대·기아차만이 유일하게 파일럿센터를 갖추고 있다. 양산 과정을 재현해 생산 과정에서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지 미리 검증하는 것이다.

대개 신차가 나오는 과정은 ‘디자인-설계-시험차 제작-평가-양산’으로 이뤄지는데, 연구소는 시험차 제작 및 평가까지만 담당한다. 생산 과정에서의 문제는 공장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연구소로 다시 넘어오게 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게 된다. 과거에 ‘신차가 나오면 1년 뒤에 사야 안정화된 차를 살 수 있다’는 말이 있듯 생산 과정에서 도면대로 만드는데 시행착오의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는 이제 옛말로 치부해야 할 듯하다.

과거엔 생산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설계자는 ‘조립 불량일 뿐’이라며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이제는 생산 과정의 문제도 개발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설계에 반영하고 있다. 즉 설계자가 제조 및 생산 품질까지도 최대한 도면에 반영되도록 한 것이다. 이를 SE(simultaneous engineering: 동시 공학)라고 하는데 후공정에서 불량이 나는 것을 사전에 막는 활동을 뜻한다. 품질 문제에 관해서는 전공정(개발)과 후공정(생산)의 구분이 없어진 것이다. 현대·기아차는 1999년 품질 회의를 시작한 지 4년 뒤인 2003년부터 파일럿센터를 가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자동차 메이커는 왜 이런 파일럿센터를 활용하지 않을까. 현대차 측은 “가치의 문제다. 비용과 시간이 더 들더라도 품질 좋은 차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3 개발품질센터-품질만 관리하는 컨트롤센터

지난해 10월 1일 가동을 시작한 ‘개발품질센터’는 현대·기아차의 품질 경영을 극대화하기 위한 컨트롤센터다. 연구소 조직은 파워트레인·섀시·조향·공조·전장·의장 등 기능별로 분리돼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품질을 총괄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프로젝트 총괄팀’은 여러 차종을 유기적으로 조율하며 개발 각 단계의 게이트 관리를 담당한다. ‘개발품질팀’은 디자인·개발 단계에서 과거 문제점을 재평가해 신차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점검하는 곳이다. 부속 기구인 ‘총합시험팀’은 각 시험 조직 밑에 있던 팀을 모은 것이다.

75개의 시스템을 관장하는 시스템위원회는 정보를 공유하는 일, 기술 표준을 만드는 일, 설계 가이드와 엔지니어링 스펙을 협의해 설계 역량을 키우는데 힘쓰고 있다. 현업 부서에서는 바쁘기 때문에 개발 표준이나 기술 로드맵을 만드는데 여력이 없어 개발품질센터에서 하는 것이다.

개발품질센터는 개발 과정의 차량을 점검하는 것 외에도 경쟁사 차량의 리콜이 발생할 때마다 이를 분석해 현대·기아차의 차종에는 동일한 문제가 없는지 검토하기도 하고 현대·기아차의 중고차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조사해 개선점을 찾아내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개발품질센터를 만든 데는 2009년 도요타자동차의 리콜 사태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급격한 생산량 확대를 매니지먼트가 따라가지 못해 생긴 일이었다. 당시 협력 업체가 공급한 가속페달 문제로 1000만 대 이상을 리콜하면서 회사의 명운을 갈랐다. 협력 업체의 사소한 문제가 완성차 업체가 휘청할 정도로 큰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현대·기아차는 “개발품질센터는 확실하게 점검하고 문제가 없으면 개발하겠다는 의도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태 개발품질총괄팀 책임연구원은 “품질 문제는 신기술이 적용되는 과정에서 나온다. 품질 지수만 고려하면 신기술을 빼는 것이 낫겠지만 그건 아니지 않나. 신기술이 나가기 전에 사전에 검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센터가 생긴 목적”이라고 밝혔다.

현대자동차는 1999년 강력한 ‘품질 경영’ 드라이브를 내세우며 10년 사이 괄목할 만한 품질 개선을 이뤘다. 최고경영자가 직접 주재하는 ‘품질 회의’, 생산 과정의 문제점을 미리 점검하는 ‘파일럿센터’, 품질만을 담당하는 컨트롤센터인 ‘품질개선센터’는 타 메이커가 흉내 낼 수 없는 현대차만의 품질 노하우다.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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