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 막 오른 패권 경쟁…스마트화로 앞서가야

세계 1등으로 가는 열쇠

지난 10년간 현대차의 급성장은 놀라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이는 생산 규모만 아니라 품질에도 해당한다. 자동차 전문 컨설팅 회사인 BMR컨설팅의 이성신 대표는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현대차의 품질은 선진 기업의 80~90% 수준이어서 제값을 받지 못했다”며 “지금은 선진 기업 대비 95~105%로 오히려 앞선 분야도 있다”고 평가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세계 1위’도 더 이상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라고 말한다. 도요타는 1953년 세계 1위 자동차 회사가 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당시에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냉소가 쏟아졌지만 2007년 제너럴모터스(GM)를 제치면서 이 꿈은 현실이 됐다. 김 교수는 “현대차는 1950년대 도요타가 세계 1위를 선언할 때보다 훨씬 가깝게 목표에 다가서 있다”고 말했다.

세계 자동차 업계는 치열한 패권 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동안 세계 자동차 시장은 GM과 도요타라는 두 거인의 각축장이었다. 2007년 도요타가 수십 년 동안 강고하게 유지되던 GM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GM은 대량 리콜 사태와 일본 지진 여파로 휘청거리는 도요타를 누르고 올해 세계시장 1위 자리를 되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세계 자동차 시장은 이제 더 이상 이 두 기업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글로벌 패권에 도전하는 새로운 경쟁자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현대차가 그중 가장 주목받는 다크호스다. 이 대표는 “2015년이 되면 주요 자동차 기업의 생산량이 모두 800만~1000만 대에 육박할 것”이라며 “시장 패권을 둘러싼 대격돌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도요타는 2015년 990만 대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GM은 이보다 많은 1025만 대(2015년), 폭스바겐도 1000만 대(2018년)를 예상한다.

고수익 고급차 브랜드 안착 필요

FILE - In this Feb. 25, 2007 file photo, 2007 Hiighlander hybrid sports-utility vehicles sit at a Toyota dealership in the southeast Denver suburb of Centennial, Colo. Toyota Motor Corp. said Wednesday, June 29, 2011, it will recall about 82,200 hybrid SUVs in the U.S. due to computer boards with possible faulty wiring.(AP Photo/David Zalubowski, file)
전문가들은 현대차의 가장 큰 과제로 생산량 확대를 꼽았다. 자동차 분야를 연구해 온 이항구 산업연구원 주력산업팀장은 “세계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는데 현대차만 현재 상태로 있을 수는 없다”며 “얼마나 효율적으로 생산 설비를 늘리느냐가 문제”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현재 570만 대인 현대차의 생산량을 최소한 2015년 포드 목표치인 800만 대까지는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생산량 확대는 공장만 짓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자칫하면 도요타의 대량 리콜 사태 같은 ‘대량생산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안수웅 LIG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글로벌 차원의 대량생산 체제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며 “부품 하나가 잘못되면 막대한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철저한 통제와 관리 시스템을 함께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0년간 공격적으로 해외 공장을 늘려온 대표적인 기업이 바로 도요타와 현대차다. 도요타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설비를 늘리다가 글로벌 금융 위기와 유럽 재정 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반면 현대차는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에 승부수를 던져 ‘적시타’를 터뜨렸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해외 생산 공장 증설은 부품 업체들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 도요타 리콜 사태도 급격히 늘어난 해외 생산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부품 업체에서 비롯됐다. 이 대표는 “국내 부품 업체들의 기반이 취약하다”며 “현대차의 성장 속도를 이 정도 따라온 것도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현대차가 숨고르기가 필요한 시점인 것은 분명하다”며 “그렇지만 한번 순위 경쟁에서 밀리면 패권 경쟁 대열에서 탈락할 수 있는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올해 현대차의 국내 생산과 해외 생산의 비중은 대략 50 대 50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해외 생산 비중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항구 팀장은 “주요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이미 해외 생산 비중이 더 높지만 현대차는 처음 겪는 일”이라며 “현대차 특유의 생산 방식인 ‘현대 웨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접목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YONHAP PHOTO-1573> Employees place a windshield on the new generation Volkswagen AG Beetle at the company?s assembly plant in Puebla, Mexico, on Friday, Aug. 5, 2011. Volkswagen, seeing 22 percent U.S. sales growth in its namesake brand this year so far, announced management changes and other efforts aimed at improving its quality reputation in the U.S. Photographer: Susana Gonzalez/Bloomberg/2011-08-06 19:06:39/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현대차가 풀어야 할 또 다른 과제는 고급차 브랜드를 성공시키는 것이다. 그동안 현대차의 주요 활동 무대는 소형차였다. 2000년대 초반 신흥시장에 진입하면서 소형차 개발에 많은 투자를 했다. 이것이 고유가와 글로벌 금융 위기라는 외부 요인과 잘 맞아떨어지면서 현대차의 고속 질주가 가능했다.

세계 자동차 시장은 크게 대중차와 고급차로 양분돼 있다. 벤츠·BMW·렉서스·인피니티·링컨 등 고급차 브랜드는 고가 제품을 소량생산해 높은 마진을 챙긴다. 대부분 연간 생산량이 100만 대를 밑돈다. 반면 폭스바겐·도요타·GM·현대차는 대중차 브랜드로 분류된다. 고급차와 대중차는 시장과 경쟁 논리 자체가 서로 판이하다.

대부분의 대중차 업체들이 고급차 시장을 탐내는 것은 높은 수익성 때문이다. 이항구 팀장은 “현대차를 5대 팔아야 벤츠 한 대 판 것과 같다”고 말했다. 고급차는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도 크게 기여한다. 이에 따라 도요타(렉서스)·GM(캐딜락)·폭스바겐(아우디)·닛산(인피니티)·포드(링컨) 등 대부분의 업체들이 고급차 브랜드를 따로 갖고 있다.

이필수 교수는 “작년 미국 수출을 시작한 현대차의 에쿠스 판매 실적을 잘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6만 달러 이상의 고가에 판매되는 에쿠스가 프리미엄 브랜드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현대차가 현재 5위권에서 2~3위권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프리미엄 브랜드의 안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YONHAP PHOTO-0309> FILE - This April 21, 2009 file photo shows General Motors Co. world headquarters in Detroit. Strong investor demand for General Motors stock may prompt the automaker to raise the target price range for Thursday's initial public offering, a person briefed on the matter said Monday. Nov. 15, 2010.(AP Photo/Paul Sancya, file)/2010-11-16 05:54:49/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추격자에서 산업 리더로

자동차의 스마트화와 그린화에 대한 대응도 관심거리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는 “스마트화로 자동차 산업이 100년 만의 변화를 맞고 있다”며 “스마트화는 현대차가 세계에서 가장 앞서 나갈 수 있는 분야”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디지털화의 물결을 타고 소니를 앞지른 것처럼 현대차도 스마트화에서 얼마든지 도요타나 GM을 밀어낼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이미 마이크로소프트·인텔 등과 함께 스마트화에 대한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친환경차는 여전히 시장 상황이 불확실한 상태다. 전기차·하이브리드·연료전지·클린디젤 등 여러 대안들이 경쟁 중이다. 김필수 교수는 “어느 한쪽에 올인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며 “북미와 유럽 등 지역별 특성에 맞게 다양한 대안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현대차는 삼성전자와 똑같은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그동안 앞선 기업을 따라잡기 위해 뛰어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추월해야 할 목표가 없다. 안수웅 센터장은 “현대차가 디자인이나 품질에서 일본차를 넘어섰다”며 “이제는 표준을 스스로 만들어 끌고 가는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 센터장은 “무한한 상상력으로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인재들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노사관계의 변화 필요성도 빼놓지 않았다. 생산성 향상과 회사 발전을 위해 노사가 함께 머리를 맞대는 ‘협력적 노사관계’로 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항구 팀장은 노사 대타협으로 다시 일어선 독일자동차 산업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일본은 제2의 산업 공동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동차 업체들이 빠져나가고 있지만 독일은 임금이 한국보다 3배 이상 비싼 데도 국내 생산을 고수하며 새로운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며 “노사 대타협으로 생산성이 올라갔기 때문에 고임금에도 버틸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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