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반영하는 ‘모던한 클래식’ 대세

남자를 위한 트렌드&라이프 여섯 번째

바야흐로 디지털 시대다. 손안에 스마트폰이 세상과 서로를 실시간으로 연결하고 각종 정보 서비스를 취할 수 있는 21세기다. 그런데 지난 10여 년간 트렌드를 앞서 나가는 패션 브랜드들이나 다양한 매체에서는 수백 년을 재해석하고 고찰하는 ‘클래식(classic)’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고집스러운 클래식이 전 세계적으로 트렌드가 됐다. 이미 그 자리에 수세기 동안 존재해 왔던 클래식 문화들은 때로는 진부하고 시대성이 떨어진다는 이유 등으로 외면 받기도 했지만 당분간 이 ‘클래식’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넘지 않고는 오히려 영원히 과거 속에 갇혀 사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 어떤 분야보다 패션에서 이러한 ‘클래식’의 회귀본능이 두드러지게 충만하다. 단순히 옛것을 답습하는 것에 그치거나 ‘레트로’처럼 지난날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것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닌 듯하다. 보다 적극적으로 현실을 반영하는 모던한 클래식이 대세다.

명품 브랜드 시리즈에서도 소개한 바 있지만 영국의 대표적 클래식 ‘버버리’가 아직도 스타일리시한 이유는 과거의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진화해 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느덧 미국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된 ‘톰 브라운’ 또한 미국이 바라본 유럽의 세상에서 벗어나 미국만의 고유한 그리고 독창적인 클래식을 선보이고 있어 더욱 신선하고 패셔너블하다. 이름부터가 ‘Tom Brown’이 아니라 ‘Thom Browne’으로, 발음은 톰 브라운이지만 그 철자는 이미 범상치 않다.



‘버버리’가 아직도 스타일리시한 이유

짧은 바짓단과 소맷단, 과장된 하이웨이스트, 그러면서도 언제나 잃지 않는 신사다움은 곧 톰 브라운의 정체성이자 미국 클래식의 정체성일 수 있다. 미국의 대표 정통 클래식인 ‘브룩스 브라더스’와 비교해 볼 때 일맥상통한 것도 물론 있지만 ‘따로 또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예를 들면 버튼다운 옥스퍼드 폴로셔츠, 사선 무늬 넥타이, 블레이저, 금장 단추, 아이비 카디건 등등 그 복장의 근간과 패턴, 원단 등 모두 동일하지만 랄프 로렌보다 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브룩스 브라더스(1818년 미국에서 탄생)는 넉넉하고 편안한 피트감에 에이브러햄 링컨, 존 F. 케네디, 빌 클린턴 등 역대 미국의 대통령과 많은 보수 유명 인사들이 즐겨 입는 브랜드 이미지가 강하다.

반면 톰 브라운은 콘셉트·디자인과 원단이 브룩스 브라더스와 거의 동일하지만 입었을 때 매우 타이트한 실루엣에 과감할 정도로 극대화한 미니멀한 커팅으로 파격적일 때가 많다. 두 브랜드가 매우 같은 느낌이면서도 또 매우 다른 것이다.

그래서일까. 톰 브라운은 브룩스 브라더스와 손잡고 자신의 라인인 ‘블랙 플리스’를 론칭했다. 영국을 대표하는 클래식 ‘버버리’가 크리스토퍼 베일리에 의해 ‘버버리 프로썸’으로 재탄생·재해석된 것처럼, 브룩스 브라더스도 톰 브라운에 의해 ‘블랙 플리스’로 재탄생된 미국의 새로운 클래식의 지평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한국의 클래식도 한 번 되짚어 봐야 하지 않을까. 물론 한국의 대표 클래식 ‘빈폴’이 최근 디자이너 정욱준의 ‘준지’와 협업해 나름대로 선전하고 있긴 하지만 클래식의 고집스러운 충실함에 다소 흔들림이 있어 보이는 빈폴이라는 브랜드와 디자이너 정욱준과의 만남은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빈폴 바이 준지’를 로고 없이 보면 그냥 ‘준지’이지 결코 ‘빈폴’이라는 브랜드와의 개연성이 느껴지지 않아 조금은 안타까운 것이다. 빈폴이라는 우리의 클래식 브랜드가 아이돌 스타와의 무분별한 스타 마케팅이나 유명 디자이너와의 무조건적인 협업보다는 이제 한국만의 고유한 클래식으로 보답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우리에게 우리만의 ‘버버리 프로썸’과 ‘블랙 플리스’는 아직 요원한 일일까.

황의건 오피스에이치 대표이사 h@office-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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