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준비하는 노후 마스터플랜

노후 준비에 가장 중요한 자산은 무엇일까. 바로 ‘시간’이다.

일찍 시작한 노후 준비와 그렇지 못한 것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20년간 매달 30만 원씩 넣은 연금보험을 예로 들어보자. 공시 이율 5.1%를 적용하면 20세에 시작해 55세의 은퇴 시점이 됐을 때 2억4000만 원의 노후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조건으로 30세부터 시작하면 55세 때 받는 돈은 1억4800만 원 정도에 그친다. 이자가 붙는 자금 운용 기간이 짧기 때문이다.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잡을 수 있다. 노후 준비가 바로 그렇다.


“앞으로 20년간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매달 500만 원이 내 통장에 입금된다.”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시장에 나온 지 석 달이 넘도록 인기가 꺾이지 않고 있는 ‘연금복권’ 얘기다. 연금복권은 지난 7월 출시 이후 14회 차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매진되지 않은 적이 없다.

한꺼번에 큰 목돈을 쥘 수 있는 로또 복권 등에 비해 초반 반짝 인기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연금복권이 이처럼 큰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신한은행 PB고객부 한상언 팀장은 “노후를 복권에 의지해야 하는 단면이 씁쓸하기는 하지만 노후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뜨겁다는 방증”이라고 얘기한다.

자녀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으면서도 여유 있고 풍족한 삶을 즐기는 건 모든 이들의 꿈이다. 본격적인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를 앞두고 있고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보이고 있는 한국인에게 노후 준비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재테크의 마지막 보루라는 부동산을 이용한 주택연금 가입자 수가 크게 늘고 있는 것도 노후에 대한 불안감을 보여주는 지표 가운데 하나다.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주택연금 신규 가입 건수는 2009년과 비교해 79%나 늘어난 2016건에 달했다.

은퇴 후에도 ‘근로’ 계속돼야

그나마 집이라도 있어 연금을 탈 수 있다면 다행이다. 1970~1980년대 고도성장기의 수혜를 본 베이비붐 세대는 집이라도 한 채 장만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제 막 가정을 꾸리기 시작한 30대나 한창 일할 나이인 40대는 ‘내 집 마련’이 절실한 사람이 더 많다. “오르지 않는 건 월급과 아이들 성적뿐”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유행하듯 당장 먹고살 일 때문에 미래나 저축은 꿈도 꾸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삼성경제연구소가 가계의 저축 행태와 자산 구성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6월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 대상 가구 중 22.7%가 현재 전혀 저축을 하지 않고 있다고 응답했다.

소득 1분위에선 저축을 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46.8%를 기록했다.

또 전체 조사 가구 중 절반에 이르는 49.6%가 가계소득에서 저축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다고 평가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가계 저축률 수준이 낮다고 응답한 가구 중 43.3%가 저축 부족으로 향후 노후 생활의 자금 부족을 가장 크게 염려하고 있다는 조사다.

저축할 돈이 없다고 마냥 손을 놓고 있다가는 은퇴 후 큰 낭패를 볼 것이 눈에 빤하다. 하루라도 젊을 때 미리미리 준비해 놓아야 ‘풍족’까지는 아니더라도 쪼들리지 않는 은퇴를 맞을 수 있다. 자신의 재무 상태를 점검한 후 최대한 노후 준비를 위한 마스터플랜을 짜야 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은퇴 후 마냥 휴식을 취하겠다’는 마인드도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년 후 30년, 길게는 40년에 이르는 기간을 무조건 쉬며 지낼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대안은 역시 ‘일’이다. 실제로 2010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중·고령자 은퇴 가구의 소득 가운데 ‘근로소득’이 50%를 넘어섰다.

많은 수의 은퇴자들이 계속 일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은퇴 후의 일은 단순히 ‘월급봉투’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삶의 의미를 찾고 성취감을 얻는데 노동만한 것은 없다. 바쁜 생활 속에서도 취미나 학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 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 이유다.

취재=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김성주 객원기자
전문가 기고=공도윤 미래에셋퇴직금연구소 선임연구원·전기보 행복한은퇴연구소장
사진=서범세·김기남·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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