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Ⅳ] ‘아낀 돈 불리자’ 대세… ‘정년 연장’ 공감대 확산

100세 시대 가계·기업 대응 방법

대지진(3·11)은 일본 사회에 충격과 교훈을 한꺼번에 안겨줬다. 케케묵은 난제가 동시다발적으로 부각되면서 그 해결 압박과 자구 마련이 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이대로라면 일본에 미래가 없다는 위기감의 발로다. 가려진 불편한 진실이 잊힌 추구 가치의 설정으로 연결된 셈이다. 핵심은 인구구조 변화다. 따뜻한 100세 시대를 위한 치밀·꾸준한 숙제 풀이가 그렇다.

공동체 복원이 중차대한 우선 이슈로 인식된 게 대표적이다. 가계·기업 등 개별 경제 주체의 적극성도 높아졌다. 우울·절망·폐색의 무연(無緣) 생활 반성 차원에서다. 자칫 100세살이의 편두통거리로 연결될 각종 우려를 서둘러 줄여보자는 발상이다. 고립 공포, 생활 불편, 노후 자금, 연금 불안, 고용 불안 등의 자구적 해결 시도다. 자연스레 준비된다면 100세 시대의 두려움도 즐거움으로 승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추구 방향은 더불어 사는 행복한 장수 사회다.


‘원 코인(one coin)’ 소비 유행

100세 시대가 암울한 이유 중 99%는 돈 때문이다. 건강과 유대 이슈도 실은 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100세 시대 개막 이후 일본 가계의 대응 과제는 노후 불안을 떨칠 수준의 소득 확보로 요약된다.

세대 불문의 적극적 자산운용이다. 이보다 앞서는 건 절약 생활의 안착이다. 70세가 일자리를 찾고 80세가 저축할 지경이니 지출 축소는 불가피한 공통분모다. 복합 불황 이후 절약 지향은 꽤 정착됐다. 허리띠 졸라 매기다.

중산층을 포함한 절대 다수가 동참한다. 2010년엔 ‘도시락·수통남’이란 말까지 유행했다. 소비 불황과 소득 침체로 도시락·수통족(族)에 남성 그룹이 대거 가세한 결과다. 월급쟁이 평균 용돈(월 4만600엔)이면 도시락·수통을 드는 게 속편하기 때문이다.

500엔 동전 하나로 지출 한계를 설정하는 작업도 한창이다. ‘원 코인(One Coin)’ 소비다. 이는 2050세대의 학생·샐러리맨이 주류다. 서민 음식의 상징인 덮밥(규동)은 500엔짜리 소비의 상징이다. 여행·주점·강좌·상담 등 상식적으론 불가능한 업종까지 확산된다. 긴켄(金券)으로 불리는 할인 티켓·적립카드·우대권 등으로 생활비를 아끼려는 가계도 늘었다. 액면가보다 저렴하게 매입해 액면가치대로 사용하는 구조로 세부 종류는 방대하다.

반면 빚은 엄금 대상이다. 대표적인 게 내 집(自家) 마련을 위한 대출 억제다. 소유 욕구보다 사용 가치를 중시하는 흐름 때문이다. 과거 인플레 시대와 달리 지금이라면 굳이 빚을 내 마이 홈을 가질 유인이 적어졌다. 빈집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도 한몫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낮아진 차익 기대감이다. 주택 불황 탓이다.

경기 악화로 과거 취직·결혼과 함께 35년짜리 담보대출로 주택을 구입한 4050세대의 자금 압박 소문도 부담스럽다. 세태에 떠밀려 부담스럽게 빚까지 져가며 집을 살 환경도 이유도 없다는 얘기다. 마이 홈을 둘러싼 면밀한 대차대조표의 필요 부각이다.

대안은 ‘평생 임대’다. ‘주택 자금 〉평생 임대비’의 등식 완성이다. 사는 것보다 빌리는 게 낫다는 의미다. 더욱이 임대 환경이 개선되는 추세다. 임대 비용 하락 속에 저비용 임대 물건이 상당하다. 보증금·사례금 없이 가구·가전제품이 구비된 임대 물건까지 있다. 비용 절감과 함께 언제든 원하는 환경을 선택할 수 있는 것도 매력이다. 자녀 양육과 노후 생활에 어울리는 자유로운 생활 환경 선택이다.

줄였다면 다음은 불리는 수순이다. 일본 가계는 1990년대 이후 위험 자산을 극도로 경계한다. 재테크란 말은 자취를 감췄다. 버블 악몽 때문이다. 다만 실질금리 제로 안착 속에 경기 불황의 지속 유지가 위험 자산의 적극 편입으로 일본 가계의 등을 떠미는 추세다. 잔존 여명이 길어지고 불황 바닥이 깊어갈수록 적극적인 자산운용의 필요성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손 놓고 있다가는 고단한 100세살이 절망 스토리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다. 부채 인생을 저지할 유력 솔루션은 플러스알파를 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평생 현역 유지로 꾸준한 근로소득을 확보하려는 것도 마찬가지다. 불리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고위험·고수익의 위험 자산 편입 확대다. 주식·펀드 등의 활용이 대표적이다. 실제 해외 주식·채권을 비롯한 외환거래(FX) 등에 관심이 높다. 매월 분배형 펀드처럼 중위험·중수익의 맞춤형 투자 자산도 인기 절정이다. 적자 가계부 벌충 압박에 시달리는 고령 가구의 위험 자산 투자가 적지 않다. 노후 생활(예비 동기)을 위해서다. 일부지만 청년 세대의 투자 열기도 목격된다.



숙련 노동자의 현장 이탈 ‘우려’

노인 증가는 기업 환경을 옭아매는 악재다. 가처분소득이 떨어지는 인구가 늘면 그 자체가 내수 소비의 걸림돌인 법이다. 화려하게 분석된 실버 시장의 성장성이 과락 점수를 받은 이유다. 또 노련한 생산인구의 대량 퇴장도 기업으로선 부담스럽다. 노동력 확보가 열악해지면 성장 기반이 침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00년대 이후 일본 기업의 중대 고민 중 하나가 숙련 노동자의 상징인 단카이 세대의 대량 퇴직이다. ‘2007년 문제’다. 지금은 ‘2012년 문제’로 불거졌다. 단카이 선두 주자(1947년 출생자)의 65세 정년 시점이기 때문이다. 베테랑 근로자의 생산 현장 대량 이탈은 제조업 강국엔 상당한 우려다. 제조업 해외 이전에 따른 ‘공동화’와도 맞물린다. 결국 해법은 소비·생산 주체로서의 고령 인구 활용에 있다.

현재로선 정년 연장이 유력한 셈법이다. 가계·기업 모두에게 100세살이의 불안·공포를 줄여줄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특정 연령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제활동의 주력 무대에서 소외시킨다는 것은 여러모로 손실이란 공감대가 높다. 65세를 고령 인구로 보는 기존의 낡은 시각을 버리자는 여론도 높다. 1956년 유엔보고서에 나온 노인 규정을 지금까지 받아들인다는 건 시대착오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고령자를 65세부터 10년씩 전기·후기·말기 고령자로 세분화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결과 세제상 노인 부양을 따질 때는 70세, 노인보건법에서는 75세까지 노인 규정을 높였다. 정년 연장의 경제적 합리성은 다양하다.

국가 전체로는 적극적인 고령 노동력 활용으로 구조적인 저성장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는데다 세원 확보로 안정적인 재정 운영이 가능해진다. 내수 침체의 해결 실마리다. 개인적으론 장수화로 잉여 인간화의 대표 집단인 고령자에게 새로운 인생 모색과 삶의 만족감을 증가시키는 심리적 장점을 뺄 수 없다.

연금과 취업 기회 등을 둘러싼 노소(老少) 대결이 있지만 고령화 속도·강도를 볼 때 최근 불거진 세대 갈등도 조정될 수 있다. 칼자루는 기업이 쥐었지만 정부가 노인의 경제활동 적극 지원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비용 부담을 이유로 소극적이던 기업의 대응 인식도 바뀌는 추세다. 불가피한 시대 흐름이란 인식 공유와 함께 기업의 시장 확보와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법의 강제력은 있었지만 최소한 65세까지의 계속 고용을 선택한 기업이 절대 다수다. 60세에서 5세가 늘어난 것이다.

SV-018
2010년 현재 65세까지의 계속 고용을 위한 고용 확보 조치 실시 기업은 96.6%에 달한다. 대기업(98.7%)이 중소기업(96.3%)보다 활발하게 도입했다. 내역을 보면 정년 폐지(2.8%), 정년 상향(13.9%)보다 계속 고용(83.3%)이 광범위하다.

이는 1990년대 이후 추진된 정부의 정년 연장 법률 시행이 큰 힘이 됐다. 65세 정년 의무를 규정한 고령자고용안정법이 2004년 개정됐고 2006년부터 발효돼서다. 구체적으로는 정년 상향, 계속 고용, 정년 폐지 등이며 대상은 근로자가 있는 전체 기업이다.

절대 다수가 채택한 계속 고용은 다시 근무 연장(정년 연령 설정 상태로 그 연령에 도달한 근로자를 퇴직 없이 계속 고용)과 재고용(정년 연령 도달근로자를 일단 퇴직시킨 뒤 다시 고용)으로 나뉜다. 65세 정년제는 2013년 4월에 법적으로 완성된다.

글=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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