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브루너 어뮤니션 대표 “삼성 탭 좋은 제품이지만 스토리가 없다”

전문가 3인이 본 애플의 성공 비밀

로버트 브루너(58) 어뮤니션 대표는 현존하는 최고의 제품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그는 나이키·마이크로소프트·휴렛팩커드(HP)·델·노키아 등 세계적인 기업들과 함께 작업했다. 최근 아마존의 전자책 리더 킨들의 아성에 도전하기 위해 반스앤노블이 내놓은 최신형 누크도 그가 디자인했다. 한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고기능 헤드폰 ‘비츠 바이 닥터드레’에도 그의 손길이 닿아 있다.

바다 내음이 진하게 와 닿는 샌프란시스코 부둣가, 낡은 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한 그의 디자인 스튜디오는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는 “애플에서 내가 보낸 시간은 스티브 잡스의 ‘사이’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1989년부터 애플에 합류해 7년 동안 디자인팀을 이끌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떠나 있던 시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브루너 대표는 철통같이 베일에 싸여 있는 애플의 디자인 비밀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들려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훌륭한 제품입니다. 하지만 그걸 더 강력하게 만든 것은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탑재된) iOS의 동작 모델이에요. 멀티터치·하드웨어·네트워크를 결합하면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소통이 콘텐츠와 정보의 소비를 끌어내는 거죠.

흔히 태블릿 시장을 말하지만 태블릿 시장은 없습니다. 아이패드 시장이 있을 뿐이죠. 나머지는 이리저리 헤매고 있거든요. iOS는 하루아침에 나온 게 아니에요. 멀티터치는 애플 실험실에서 3~4년 전부터 동작이나 뉘앙스, 이런 모든 것들이 오랜 시간 하나하나 치밀하게 규정된 결과물이에요. 그 결과 매우 강력한 플랫폼이 된 겁니다.

개선해야 할 점은 없습니까.

iOS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사용자들이 ‘소비’에서 ‘창조’로 옮겨가고 있다는 겁니다. 이런 면에 아직 한계가 있어요. 콘텐츠를 선택하고 즐기는 데는 좋지만 새로운 정보를 만들고 집어넣는 데는 제약이 많거든요.

디자이너 시각에서 스티브 잡스는 어떤 인물입니까.

그는 애플이 만드는 제품에 깊숙이 관여합니다. 자신을 예술가적 사업가로 생각하죠. 이는 제품 판매와 사업에도 중요한 요인이지요.

내가 ‘공예’라고 말하는 것과 유사해요. 스티브 잡스는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공예가’예요. 최고의 인재들을 주위에 모으고 그들을 압박하죠. 많은 기업들이 인프라에 기초해 제품을 만들어요.

공장에서 가능한 방법들로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는 거죠. 애플은 다른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먼저 소비자에게 어떤 경험을 줘야 하는지 결정하고 거기에 맞게 인프라를 바꾸죠.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하든 상관하지 않아요. 스티브 잡스는 “수백만 달러를 써도 상관없다. 나는 이것이 옳다고 믿는다. 이대로 실행하라”고 말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디테일에 집착하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이런 이야기를 들었죠. 새벽 3시에 아시아에 가 있던 스티브 잡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는 겁니다. 제품 패키지 색깔이 보기 싫으니 당장 가서 고치라고 하더래요. 새벽 3시에 말이죠. 어떤 사람은 미친 짓이라고 할지 몰라요. 하지만 거기서 ‘공예’에 집중하는 한 인간을 봅니다.

정말 할 거라면 제대로 하고 아니면 그만두라는 것이죠. 요즘 기업 현실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에요. 모든 기업이 제품을 만들면서 ‘이 정도면 되겠지’하는 생각과 타협하거든요. 마지막 10%, 20%는 정말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 돈도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하지요. 그들이 최고가 되지 못하는 이유예요.

직원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어떤 일을 하지 말아야 할 수백 가지 이유를 내놓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엔지니어들의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욕을 주기도 하죠. 이것이 올바른 동기부여 수단인지는 모르지만 기업은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해 종종 충격요법을 쓰곤 해요.

지금 많은 기업들과 일하고 있지만 스티브 잡스와 같은 리더십은 찾아보기 어려워요. 디자인과 소비자 경험의 중요성을 모른 채 쉽게 타협하고 말아요. 중요한 것은 고객들은 그들이 타협한 이유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죠. 소비자들은 정말 원하는 것을 선택할 뿐이에요.

스티브 잡스가 떠난 애플이 어떻게 될 것으로 보십니까.

당장 큰 변화는 없을 겁니다. 애플은 항상 디자인을 중시하고 리스크를 감수하는 기업이었어요. 그것이 바로 애플 자체죠. 지난 10년간 디자인으로 큰 성공을 거뒀기 때문에 이런 문화는 더욱 중요한 것이 됐어요. 이것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겁니다. 문제는 좀 더 장기적으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리더십에 참여하면서 생길 거예요.

3년쯤 지나면 디자인팀에서 새로운 것을 하려고 할 거예요. 공장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죠. 수억 달러가 될지도 몰라요. 그때 팀 쿡이 이끄는 애플이 ‘우리는 디자인이 중요하기 때문에 리스크를 감수하겠다’고 할지, 아니면 ‘거기에 쓸 돈이 없다. 그동안 성공해 온 방식대로 하자’고 결정할지 지켜봐야죠.

애플의 디자인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이 애플 제품을 보고 미니멀리즘이라고 하죠. 나는 동의하지 않아요. (화면을 끈 아이폰과 화면을 켠 아이폰을 차례로 보여주며)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어요. 화면을 켜면 아이폰은 따뜻함과 솔깃함, 즐거움이 가득 찹니다. 이것은 미니멀리즘을 넘어서는 거죠. 애플 제품은 매우 단순하고 순수하지만 동시에 솔깃하고 접근 가능해요.

전통적인 미니멀리즘에는 이런 요소가 없어요. 지나치게 지적인 방향으로 가버리죠. iOS가 없으면 아이폰은 멋진 사물에 불과합니다. 애플은 배타적이면서도 동시에 포괄적이죠. 사용자들은 배타적인 클럽의 일부처럼 느끼지만 모두가 초대를 받아요. 매우 강력하고 성공하기 어려운 경지죠.

조너선 아이브 부사장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내가 애플에 있을 때 고용했지요. 매우 뛰어난 디자이너죠. 그래서 그를 고용했던 것이고요. 제품을 완벽하게 만드는 ‘공예’에 집중하죠. 디자이너들은 콘셉트를 만들고 이를 설명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아이브는 단지 콘셉트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어요. 디자인은 엔지니어들을 압박하고 생산팀을 채근하는 것이며 소비자에게 제품을 전달하는 방법과 그들이 갖는 경험에 대한 것이죠.

조너선의 개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맥북에어입니다. 매우 정제되고 단순하며 아름답죠.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만드는 과정이에요. 모든 훌륭한 디자인은 파트너십에서 나옵니다. 혼자서는 좋은 디자인을 만들 수 없어요. 프로토타입 한 개는 혼자서 만들 수 있지만 수백만 개를 생산하려면 강한 파트너십이 필수죠. 매니지먼트·마케팅·엔지니어링·생산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해요. 그것이 애플이 움직이는 방식이죠.

디자인 표절을 둘러싼 삼성전자와 애플의 소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업이 자신의 지식재산권을 지키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죠. 하지만 현재 애플이 취한 소송이나 보호주의적인 조치는 산업을 위해서는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애플은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를 내걸고 약자로서 모두가 원하는 성공을 이뤘어요. 이제는 애플 자신이 너무 큰 존재가 됐죠.

5년 전만 해도 누군가 ‘마이크로소프트가 이겨야 한다’고 말하면 비웃었을 겁니다. 하지만 요즘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성공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요. 애플이 너무나 압도적이거든요. 할아버지에서 손자까지 모두 애플 제품을 갖고 싶어 해요.

만약 애플 앱 생태계가 없었다면 다른 스마트폰을 샀을 거예요. 애플이 주장했던 대로 다르게 생각하고 싶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선택을 원합니다. 소송은 경쟁을 짓누른 것으로 비쳐질 뿐이죠.

삼성전자의 제품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삼성전자나 HTC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애플은 하드웨어·소프트웨어·콘텐츠를 모두 갖고 있어요. 하지만 그들은 하드웨어에 강할 뿐이죠. 하드웨어 수준에서 경쟁해선 결코 애플을 이길 수 없어요. 이유는 분명해요. 애플은 세 가지를 모두 갖고 있고 하드웨어에서도 다른 기업이 흉내낼 수 없는 강점이 있기 때문이죠. 남는 것은 가격을 내리는 것뿐이에요.

항복 선언이나 마찬가지죠. 사람들은 스토리를 갖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해요. 단지 멋있어 보이는 것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아요. 사람들에게 살 이유, 그것을 자신들의 삶 속에 받아들일 이유를 줘야 해요. 갤럭시 탭은 좋은 제품이지만 이것이 빠져 있어요. 왜 내가 아이패드나 다른 태블릿 PC가 아니라 갤럭시 탭을 사느냐죠. 그런 스토리가 없어요. 그러면 지는 게임이 될 수밖에 없죠.

샌프란시스코(미국)=글·사진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있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