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선 하마오카 원전
“결국 하마오카(浜岡)마저….” 일본 중부 지역에 있는 하마오카 원자력발전소가 가동 중지를 결정했다. 3·11 대지진 이후 원전 피해에 따른 방사능 유출 공포가 확산된데 따른 선택이다.일본 정부가 ‘만약의 사태’를 염려한 결과다. 가뜩이나 후쿠오카 원전의 방사능 누출 피해가 막대한 가운데 30년 안에 87%의 확률로 하마오카 원전 인근에 리히터 규모 8.0의 지진이 발생할 것이란 경고가 발표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정상 운전 중인 원전을 중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동 중단은 15m 방재벽이 완성되는 2013년까지다.
재계 “전력 부족한 판에 멈추면 기업들은 어쩌나”
‘설마’했던 악재가 현실이 되자 재계는 충격에 빠졌다. 가동 중단 발표 직후 재계 모임인 니혼게이단렌(日本經團聯) 회장은 긴급 회견을 열었다. 지진 피해가 워낙 컸고 갈수록 피폭 우려가 거세지면서 자숙 차원에서 말을 아끼던 재계가 이번에는 굳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은 것이다.
요네쿠라 히로마사 회장은 “그렇지 않아도 전력이 부족한데 확률만 갖고 원전 중단을 결정한 것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며 공식 비판했다.
사실 ‘전력 부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진 이후 수도 도쿄에 계획 정전이 1개월 가까이 진행될 만큼 대형 이슈였다.
하지만 4월 이후 좀 나아지는 듯했다. 그랬던 것이 이번 하마오카 원전 가동 중단으로 재차 ‘뜨거운 감자’가 됐다. 물론 부정론이 대세다. 당장 이번 여름을 정상적으로 넘기기 힘들 것이란 예측이 많다.
도쿄전력이 예년의 피크 수요에 필적하는 5500만㎾를 확보할 것으로 발표했지만 한 번 금 간 신뢰성은 회복 불능이다. 정부가 올여름 대규모 기업의 절전 목표량을 25%에서 15%로 줄여주는 등 완화 조치를 취했지만 재계 반응은 미덥지 않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생산 정체가 불가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하마오카 원전의 가동 중단은 울고 싶은데 뺨까지 때린 격이 됐다. 원전 입지가 일본이 자랑하는 제조업 근간의 위치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나고야 등 중부 지역은 기간산업이 집적된 유력 공업지대다.
거대 제조업체가 이 지역에 생산 현장을 고밀도로 보유했다. 실제 하마오카 원전 전력량의 40%는 대형 공장에 공급된다. 열도 교통의 대동맥인 신칸센도 이곳을 통과한다. 일본 최대 메이커인 도요타 본사도 이곳에 있다.
도요타 공장 17개 중 9개가 아이이치 등에 있다. 부품 공장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렉서스를 생산하는 다하라 공장은 원전에서 70km 떨어져 있다. 결국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꼭 필요한 지역이다. 일본 정부가 ‘특별 케이스’라며 진화에 나설 정도로 하마오카 원전의 입지적 존재감은 파워풀하다.
게다가 이번 가동 중단은 일본 재계의 조업 정상화 카드마저 무위로 만들었다. 그동안 세웠던 향후 조업 계획에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원래 일본 재계는 지진 이후 피해 복구와 정상화를 위한 전초기지로 중부 지역 제조 현장을 디딤돌로 삼으려고 했다.
부품 부족에 따른 생산 차질을 체울 방안으로 중부 지역 공장의 풀가동을 선택한 셈이다. 입지 등에서 피해 규모를 최소화하고 정상화를 앞당기는데 좋은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전력난을 피해 후쿠오카 생산 라인을 중부 지역으로 옮기려는 기업도 많았다.
하지만 증설 계획은 일단 물거품이 됐다. 더 생산하려고 해도 전기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하마오카 원전 가동 중단으로 중부 지역 전력 여유분은 20만㎾로 떨어졌다. 작년 무더위를 감안하면 이 정도는 사실상 마이너스다. 일본의 제조 심장부에 전력 대란이 염려되는 이유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일본학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