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전 ‘햇살’…기계·축산 ‘먹구름’

한·EU FTA ‘업종별 명암’

한국과 유럽연합(EU) 사이의 자유무역협정(FTA)이 5월 4일 국회 비준을 받았다. 이에 따라 EU의 관세장벽 대부분이 7월 1일부터 순차적으로 허물어지게 됐다. 한국과 유럽을 오가는 거의 모든 상품·서비스에 대한 관세가 5년 내에 철폐된다.

세계 2위 규모의 유럽 시장이 활짝 열리면서 한국 제품들의 유럽 진출이 가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10개 국책 연구 기관은 한·EU FTA 체결로 수출은 한 해 25억 달러 증가하고 일자리는 25만3000개가 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가장 큰 수혜는 자동차 관련 산업이 누릴 것으로 보인다. EU가 그간 10%라는 높은 관세를 매겨 왔기 때문이다. 유럽에 수출하는 우리나라의 중대형 승용차는 3년 내, 소형 승용차는 5년 내에 관세가 사라진다.

현재 22%의 관세가 5년 내에 철폐되는 화물자동차 수출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베어링·타이어·고무벨트 등 자동차 부품 업체들도 수출 길이 크게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TV·냉장고·에어컨 등을 수출하는 가전 업체들도 혜택을 보게 된다. 컬러TV·모니터 등에 붙던 14%의 높은 관세가 없어지면 한국 제품의 인기가 지금보다 높아질 수 있다.

섬유도 전반적으로 ‘득’이 많을 것으로 기대된다. 업계는 EU의 섬유 분야 평균 관세율 7.9%의 관세 철폐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더구나 한국 제품은 EU 생산자보다 중국이나 대만 등 EU의 주요 수입국과 경쟁 관계에 있어 EU 시장에서 관세 폐지에 따른 수혜를 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EU와의 FTA는 일부 중소기업들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KOTRA는 한·EU FTA로 수혜를 볼 품목으로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위성방송 수신기, CCTV 카메라, 산업용 장갑, 편직물, 타포린(PE 소재), 폴리에스터, 에너지 절약형 전구, 디지털 도어록, 풍력발전기용 플랜지 등 10개를 꼽았다.

중소기업 생산품 중에 지난해 유럽 수출이 크게 늘어난 것들로 관세마저 없어지면 수출 증가세가 더욱 늘 것으로 예측된다. LED 조명기기는 4.7% 관세 철폐 외에도 유럽의 백열전구 사용 금지라는 호재까지 겹쳤다.

잃는 것도 있다. 소재를 포함한 화학·기계류·제약 분야 등 EU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문은 무역 역조가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EU는 전 세계 화학 산업 매출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고, 세계 30대 화학 기업 가운데 바스프(BASF)·쉘(Shell)·바이엘(Bayer)· 토털(Total) 등 무려 13개를 보유하고 있다.

일반 기계류도 FTA 체결 후 무역역조가 심화할 것이란 예측을 낳고 있다. EU는 일반 기계 전체 22개 품목 가운데 식품 가공 기계, 종이 제조 기계, 농기계 등 13개 품목에서 세계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화장품 업계도 울상이다. 그동안 한국 시장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대형 업체는 물론 중소업체들까지 몰려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축산업은 직격탄을 맞을 전망이다. 국내산보다 가격이 싼 삼겹살 등이 몰려오면 축산업은 큰 타격이 예상된다. 지난해 EU 지역에서 수입된 냉동 삼겹살은 6만1238톤으로 우리나라에서 소비된 22만톤가량의 삼겹살 가운데 30% 가까이 차지했다. 한·EU FTA가 발효되면 뛰어난 가격 경쟁력으로 수입이 추가로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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