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권력 지도 지각변동

증시의 권력 지도가 바뀌고 있다. 그간 한국 증시는 개인과 외국인 그리고 증권사· 자산운용사가 중심이 된 기관들이 주도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들과 함께 ‘제4의 세력’이 증시의 새 변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첫째는 주식 투자 비중이 높지 않아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해 ‘변방’으로 평가되던 연·기금이다.

둘째는 ‘기타’라는 이름처럼 증시를 좌지우지하지 못했던 국가기관·지자체 및 기타법인이다. 앞으로의 증시를 주도할 이들 ‘제4의 세력’을 집중 분석했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의 곽승준 위원장은 4월 26일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들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본격적으로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곽 위원장의 발언에 재계는 물론 증권 관련 업계까지 들썩였다. 이유는 바로 연·기금이 국내 증시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5월 4일 기준 연·기금은 올 들어 3조3266억 원을 순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흥국 인플레이션 우려, 중동 정정 불안, 리히터 규모 9.0의 ‘동일본 대지진’ 등 각종 악재에도 꾸준히 주식을 사들이면서 증시 핵심 세력으로 자리를 굳혔다.

반면 2008년부터 증시 상승을 이끌었던 외국인은 1조4303억 원어치를 순매수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외국인이 21조5731억 원, 연·기금이 8조85억 원어치를 사들였던 것을 따져본다면 매수 주체로서의 위상이 역전된 것이다.

월별로 보면 외국인과 연·기금의 행보가 뚜렷하게 대비된다. 지난 2월 3조5억 원어치를 팔아치웠던 외국인은 3월에 1조2000억 원, 4월 들어서는 3조 원어치를 순매수하는 등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 반면 연·기금은 1월 약 8000억 원, 2월 약 7000억 원, 3월 약 1조1000억 원, 4월 약 6000억 원어치씩 꾸준히 사들였다. 지난해에는 매월 순매수했다.

전문가들은 주식 수급의 안전판 역할을 하는 연·기금의 신규 투자 확대에 대해 증시 안정성을 높이는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은 올해 신규 주식 투자에 7조 원가량을 투입할 예정이다. 특히 연·기금의 큰손인 국민연금은 올해 5조5000억 원어치를 더 사는 등 전체 자산에서 주식 비중을 18%, 총주식 투자액을 60조 원까지 늘릴 계획이다.

연·기금, 증시 안전판으로 ‘우뚝’

연·기금과 함께 ‘기타’가 증시에 미치는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이들은 이름처럼 그동안 증시 영향력이 크지 않아 말 그대로 ‘기타’에 머물렀다. 한국거래소에서는 ‘기타’를 ‘국가·지자체’와 ‘기타법인’으로 구분하고 있다.

국가·지자체는 중앙정부 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고용노동부·우정사업본부·서울특별시 등 지자체와 지자체 산하 공기업들이다. 특히 기관투자가들의 거래가 위축된 시점에서는 이들이 활발하게 매매하면 시장 영향력이 두드러지게 된다.

국가기관의 증시 영향력이 최근 커지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운용 자금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가·지자체의 핵심 플레이어인 우정사업본부의 주식 투자 규모는 약 2조2000억 원에 이른다. 이는 2009년 말 1조1000억 원에서 2배로 늘어난 규모다.

기타법인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제4의 세력’이다. 기타법인은 은행·보험·증권사·선물사 등 기관투자가로 분류되는 법인을 제외한 나머지 법인들을 지칭한다. 일반 상장법인의 자기 주식 매매도 기타법인으로 잡힌다.

기타법인은 최근 선물시장에서 핵심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선물시장에서 기타법인은 5월 4일 기준 지난 3개월간 190만8000계약을 매도했고 194만2000계약을 매수해 3만4000계약을 순매수했다.

이 같은 거래량은 기관 중에서도 리스크 관리에 특히 민감한 은행이나 선물거래의 주체가 되는 증권 및 선물 등 주요 투자자를 제외하고는 다른 주체에 비해 훨씬 많은 수준이다.

이 때문에 기타법인은 회전율이 빠른 매매 패턴상 자금력이 큰 개인들의 매매 창구이거나 사설 투자 자문사인 것으로 업계에서 파악하고 있다.

이와 함께 관련 업계에서는 정확히 파악하긴 힘들지만 그간 주식 투자에 관심을 두지 않던 일반 법인들도 증시 활황세를 타고 투자 비중을 늘리며 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나가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취재=이홍표·장진원·우종국 기자
전문가 기고=최남철 삼호SH투자자문 운용대표·김중원 HMC투자증권 애널리스트
사진=서범세·김기남·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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