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책] 디지털 상상력의 한계

빌레마드의 ‘날아가는 배’는 기업과 정부가 현재 계획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현실 확인으로 충분한 의미가 있다. 100여 년 전 유럽의 상상가들은 바다를 떠다니는 배가 오늘날의 비행기로 발전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러한 잘못된 예측으로부터 기업과 정부는 인터넷과 디지털 사회가 가져올 기업 환경 및 산업 환경 변화를 보다 정확하게 진단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2030년, 2050년 또는 2111년의 대한민국은 또는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사회의 디지털화가 가져오는 거칠고 끝없는 도전에 직면한 수많은 기업에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이제 기업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일이 됐다.

그 누가 컴퓨터 생산 기업이었던 애플이 휴대전화뿐만 아니라 음악과 영상 콘텐츠를 유통하는 서비스 기업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었을까. 그 누가 승승장구하던 미국 비디오·DVD 대여 기업인 블록버스터가 갑작스레 도산할 줄 알았겠는가.

프랑스 국립도서관 홈페이지에서는 화가 빌레마드(Villemard)가 1910년에 2000년의 사회상을 상상하며 그린 24개의 그림을 구경할 수 있다. 그의 그림에서는 기술 발전을 예측할 때 쉽게 나타날 수 있는 오류가 그대로 담겨 있다.

그가 제시하는 미래 예측은 예측의 시점까지 이룩한 인류의 기술 발전 수준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를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그 무엇을 생각해 내는 상상의 힘을 찾아볼 수 없다.

20세기 초반 대서양을 횡단하는 경식 비행기 체펠린(Zeppeline)의 모습은 당시 유럽 및 북미 사람들에게 인류가 이룩한 기술적 진보에 흥분하게 만들었다. 체펠린의 웅대한 모습에서 빌레마드 또한 배가 발전해 비행기가 된다는 전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다시 말해 ‘현존하는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그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부동의 명제였다.

빌레마드와 유사한 상상력의 한계를 현재 한국 기업과 정부의 시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종이 신문을 PDF 파일로 전환해 스마트폰을 통해 서비스하면 독자들이 기꺼이 돈을 지불할 것이라는 철부지 같은 생각, 오프라인에서 작동하는 실명제로 ‘악플(다른 사람이 올린 글에 대해 비방하거나 험담하는 내용을 담아올린 댓글)’을 근절할 수 있다는, 또는 실명제에서 출발한 셧다운으로 중독성 강한 온라인 게임에서 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다는 헛된 계획,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디지털 세계에서 낡은 저작권으로 작가와 음악가의 생계를 보장할 수 있다는 거친 확신 등 모두 빌레마드가 보여준 상상력의 한계와 유사하다.

물론 현재의 기술력과 구조에서 벗어나 상상의 날개를 펼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빌레마드의 ‘날아가는 배’는 기업과 정부가 현재 계획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현실 확인(reality check)으로서 충분한 의미가 있다.

지금 구상하고 있는 미래 사업 방향은 혹시 현재 이룩한 기술 성과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온라인 게임 셧다운제는 스마트폰을 통한 온라인 게임의 확산 또는 페이스북을 통한 소셜 게임의 폭발적 인기 등을 고려한 미래 지향적 정책일까.

‘날아가는 배’처럼 잘못된 가정에 근거한 미래 계획과 정책은 어쩌면 우리가 작지 않은 대가를 치르고 뽑아야 할 내일의 전봇대다.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연구원

1971년생.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 경영학 학사, 경제학 석사, 독일 비텐대학교 경영학 박사. (주)오프비트 전략이사(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연구원(현). 블로그 www.berlinlo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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