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안성기·이나영·전지현 ‘10년 넘어’

기업과 장수 모델 ‘찰떡 궁합’ 그 비밀은

지난 1995년 한국기네스협회는 김혜자 씨에게 ‘최장 전속 광고 모델’ 기록 인정서를 수여했다. 1975년을 시작으로 20년째 제일제당 광고모델로 활동 중이던 김혜자는 “그래, 이 맛이야”라는 광고 카피를 유행시키며 이후로도 5년간 더 제일제당의 모델로 활약했다.

장수 모델로서 워낙 한 브랜드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당시 김혜자는 다른 브랜드 광고에 출연하지 않았고, 대신 제일제당 측은 그녀를 단순 광고 모델이 아닌 ‘이사 대우’를 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김혜자 하면 ‘다시다’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정도로 모델과 제품 이미지가 잘 맞아떨어진 좋은 사례다.

김혜자의 기록을 넘어서는 또 한 명의 장수 모델이 있으니 바로 배우 안성기다. 지난 1983년부터 현재까지 28년째 동서식품 커피 모델로 활동 중인 것. 동서식품 측은 “소비자 조사 결과 ‘동서식품’이나 ‘맥심’ 하면 안성기 씨가 연상된다는 답변이 많다”며 장수 모델 효과에 만족감을 보인다.

화장품 업계에도 장수 모델들이 눈에 띈다. 각각 12년째, 11년째 (주)아모레퍼시픽의 전속 모델로 활동 중인 이나영과 송혜교를 비롯해 7년째 SK-II 모델을 맡고 있는 김희애, 5년째 LG생활건강의 ‘더 후’ 모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영애 등이 주인공이다.

이 밖에 포스코건설 ‘더샵’ 모델로 9년째 활동 중인 장동건, 역시 9년째 포스트콘푸라이트 모델인 신애라, 10년째 LG생활건강 ‘엘라스틴’ 모델을 맡고 있는 전지현, 6년째 삼성전자 하우젠 세탁기 광고 모델인 한가인 등이 대표적인 장수 모델이다.


남다른 ‘의리’…무료 봉사 자처하기도

스타 의존도가 높은 국내 광고 시장에서 모델의 이미지는 곧 기업의 이미지 및 매출과도 직결된다. 더욱이 장수 모델은 브랜드 연상 효과가 있어 광고 밖에서도 광고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지난해까지 GS건설 ‘자이’ 모델로 활동한 이영애다. 브랜드를 론칭할 때부터 만 8년간 해당 기업의 모델로 활약한 이영애는 모델 계약이 끝난 지금까지도 ‘자이’ 아파트를 연상시켜 이 기업은 광고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GS건설 강상식 부장은 “여전히 ‘자이’ 하면 이영애 씨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며 “이영애 씨의 고급스럽고 세련된 이미지를 통한 브랜드 이미지 제고 목표는 모두 달성했다”고 ‘이영애 효과’를 인정했다.

장수 모델과 기업 간에는 오랫동안 쌓은 신뢰에서 비롯된 남다른 ‘의리’가 작용하기도 한다. 모델 스스로 브랜드 및 제품에 상당한 애정을 갖고 ‘자체 홍보’에 열을 올리기도 하고 기업에서 주관하는 홍보 행사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광고 외 활동에도 열심인 경우가 많다.

지난 3월 삼성전자 신제품 발표회에 참석한 한가인은 행사 내내 자리를 지킨 것은 물론 인사말을 통해 삼성 버블세탁기의 역사를 줄줄 외며 자신이 직접 사용 중인 삼성 세탁기에 대한 애정을 보여줘 장수 모델의 면모를 과시했다. 아이오페 장수 모델인 이나영도 광고 촬영 콘셉트를 잡을 때부터 의견을 내는 등 적극 참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무엇보다 파트너십이 형성되면서 서로의 상황을 배려하게 된다는 장점도 있다. 특히 장수 모델은 대부분 A급 연예인들이어서 개런티 부담이 큰 것이 사실인데, 이 부분에서도 어느 정도 ‘조율’이 가능하다는 게 업체 관계자들의 얘기다.

동서식품 측은 “회사와 안성기 씨 모두 장기적인 안목에서 접근하다 보니 모델료를 비롯한 세부 조건에서도 서로를 배려하고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LG생활건강 측도 개런티와 관련해 “엘라스틴 장수 모델인 전지현 씨 쪽에서 오히려 업체에 유리하게 해 주는 편”이라며 “그러나 업계 최고 대우인 것은 확실하다”라고 말했다.

제일기획 김홍탁 CD(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회사 상황이 좋지 않아 모델 측에 양해를 구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오히려 장수 모델이기 때문에 늘 최고 대우를 해 주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이뿐만 아니라 기업이 어려울 때는 모델들이 무료 봉사를 자처하는 경우도 있다. 몇 년 동안 A건설사의 아파트 브랜드 모델로 활동했던 배우 B 씨는 건설 경기 악화로 A사가 연예인 모델을 기용할 수 없게 됐다는 소식을 듣자 그간의 ‘의리’를 생각해 1년간 무료로 광고 모델을 할 것을 제의했고, 결국 기업과 모델 간 더욱 신뢰가 두터워졌다는 일화도 있다.

이에 대해 한 광고 전문가는 “의리도 의리지만 아파트 광고 모델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장점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우리나라 광고 시장에서는 현재 광고 모델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인기를 증명하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덧붙였다.

‘검증된’ 모델이 안전, 장수 모델 선호

장수 모델이 갖는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기업에는 모델의 스캔들 위험을 안고 가야 한다는 부담감도 갖고 있다. 모델의 스캔들 또는 사생활 문제로 기업 이미지가 실추됐다며 소송까지 가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

김홍탁 CD는 “이 때문에 광고주 쪽에서 처음 모델을 발탁할 때 나쁜 스캔들이 있는지 여부를 중요한 기준으로 본다”고 말한다. 그런 이유로 모델 쪽에서는 장수 모델 타이틀이 주는 자부심이 대단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인기를 증명해 보이는 것과 함께 사생활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광고계에서 그만큼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장수 모델은 제품뿐만 아니라 기업 이미지를 대변하기 때문에 약간의 흠도 크게 부각되는 게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광고계에서는 이미 타사 광고 등을 통해 여러 가지로 ‘검증된’ 모델을 기용하는 경우도 많다.

12년째 아모레퍼시픽 모델로 활동 중인 이나영은 동시에 동서식품 맥심 커피 모델 10년 차이며, LG 트롬세탁기 모델도 올해 9년째 맡고 있어 장수 모델 중에서도 퀸이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LG하우시스 ‘지인’ 모델로 발탁된 데다 최근 소셜 커머스 브랜드 ‘쿠팡’ 모델로도 선정되는 등 다양한 제품군의 광고 모델로 동시에 활약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김홍탁 CD는 “우리나라는 광고에서 연예인을 활용하는 비중이 비이상적으로 높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미국과 유럽은 아이디어 차원의 광고가 많은 반면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는 것.

“우리나라는 광고 모델을 선택하는 근거가 ‘지금 뜨느냐’입니다. 이 때문에 한 명이 10~11개의 광고를 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거죠. 이론이나 논리적으로 따지면 말이 안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가능한 건 구매가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가령 휴대전화 광고를 보세요. 이효리 씨가 휴대전화 광고에 나오면 소비자들은 그 제품의 특징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무조건 ‘이효리폰 달라’고 합니다.

지금 스마트 TV 모델로 삼성은 현빈 씨를, LG는 원빈 씨를 내세웠는데 광고만 보고선 해당 제품의 특징이나 장점을 전혀 알 수 없어요. 그냥 ‘현빈 TV’, ‘원빈 TV’인 거죠. 스타의 유명세에 열광하는 문화가 지금 같은 광고 시장을 만든 겁니다.”

상황이 이러니 기업은 이미 구매력 등에서 효과가 입증된 모델을 재계약하는 편이 안전할 수 있다. 장수 모델을 선호하는 기업이 많아지는 이유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또한 장기간 모델을 바꾸지 않는 브랜드는 그 자체로 브랜드에 신뢰가 가게 마련”이라며 장수 모델 선호 이유를 밝혔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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