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Ⅰ] '창의력이 경쟁력'…자유로운 캠퍼스 문화 만든다

'꿈의 일터'로 변모한 삼성전자 디지털시티

172만㎡(구 52만 평) 매탄벌에 들어선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세계 정보기술(IT) 업계의 신흥 강자 삼성전자의 심장부 격인 이곳이 대학 캠퍼스를 닮은 자유로운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신세대 취향에 맞는 커피 전문점과 제과점이 문을 열고 점심에는 구내식당에서 테이크아웃 메뉴가 공짜로 제공된다. 곳곳에 마련된 공원 사이로는 자전거들이 자유롭게 오간다. 자유분방한 업무 환경으로 유명한 구글이나 페이스북에도 뒤지지 않는다.

지난 2009년 ‘꿈의 일터’를 선언한 이후 2년, 회색빛 ‘공단’에서 ‘디지털시티’로 탈바꿈한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한경비즈니스가 최초로 공개한다. 지난 5월 3일 경기도 수원 삼성 디지털시티. 정문에서 까다로운 보안 검색을 통과하면 사업장을 동서로 관통하는 넓은 도로가 나온다.

2009년 ‘꿈의 일터’ 선언 이후 수원사업장이 디지털시티로 바뀌면서 이 도로도 ‘메인 스트리트’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메인 스트리트와 또 다른 중심 도로인 ‘브로드 애비뉴’가 만나는 네거리 왼쪽으로 지난 2년간의 변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아트월이 서 있다.

1995년 지어져 20여 년 동안 냉장고 공장으로 쓰인 낡은 회색 건물이 거대한 야외 전시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200m가 넘는 공장 외벽을 구스타프 클림트, 클로드 모네, 빈센트 반 고흐 등 세계적인 화가 6명의 아름다운 작품들이 채우고 있다. 노후 건물을 친환경, 문화 공간으로 되살리는 작업의 일환이다.

지난 2004년 세탁기 라인이 광주로 옮겨간 것을 끝으로 수원에는 더 이상 생산 시설이 남아 있지 않다. 연구소와 연계된 시험 생산 라인만 소규모로 일부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공장이 빠져나가 빈자리를 채운 것은 각종 연구소와 교육 시설이다.

현재 디지털시티는 삼성전자의 연구 기능이 밀집해 있는 글로벌 연구·개발(R&D) 센터로 운영되고 있다. 이에 따라 디지털시티의 ‘주민’ 구성도 크게 달라졌다. 전체 2만9000여 명의 임직원 중 65%가 R&D 인력이다.


사내에 들어선 커피 전문점·제과점

디지털시티를 대표하는 건물은 2005년 완공된 디지털연구소다. 38층 높이로 수원시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최고층 랜드마크 빌딩이다. 액정표시장치(LCD) 제품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디자인의 이 건물에만 9000여 명의 연구원이 일하고 있다. 그 옆으로는 휴대전화 외관을 그대로 빼닮은 27층짜리 정보통신연구소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디지털시티에서 하늘 높이 뻗은 아름드리 소나무나 형형색색의 바람개비만큼 자주 눈에 띄는 것이 업무용 자전거 두발로(Dooballo)다. 사업장 내 11 곳에 자전거 100여 대를 비치해 자유롭게 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누구나 자전거를 꺼내 탄 다음 가까운 두발로 보관소에서 세워 두면 된다. 자전거를 반납하기 무섭게 새 사용자가 나타날 만큼 인기가 높다. 디지털시티는 전체 면적이 축구장 250개(172만㎡, 구 52만300평)를 합친 규모이기 때문에 자전거 이용이 필수다.

피자와 콜라를 한가득 들고 자전거에서 내린 양준동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사원은 “먼 거리를 이동할 때 업무용으로 두발로를 자주 탄다”며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점심시간을 이용한 피자 파티 때문에 심부름을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사업장 내에 커피 전문점과 피자 가게가 입점한 것도 예전에는 볼 수 없던 새로운 풍경이다. 편의 시설이 모여 있는 한가족 플라자 뒤쪽에 커피 전문점 커피와사람들·파리바게뜨·배스킨라빈스·도미노피자·BBQ치킨 등이 나란히 들어서 있다.

가족 5남매가 모두 삼성 출신이라는 BBQ치킨 정유진 사장은 “전화 한 통화면 디지털시티 내 어디든 배달해 준다”며 “과거 공장 시절에는 꿈도 못 꾼 일”이라고 말했다. 이 점포에서만 하루 평균 100마리 분의 치킨이 팔려나간다. 뼈가 없어 사무실에서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순살 치킨이 인기 메뉴다.

사업장 내를 순환하는 셔틀버스 정류장에서 양손에 생일 케이크를 든 젊은 직원이 눈에 들어왔다. 안내를 맡은 삼성전자 홍보팀 관계자는 “부서 내 생일 파티를 점심시간에 간단하게 끝내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요즘 신세대 직원들은 술을 많이 마셔야 하는 저녁 회식 모임을 반기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디지털시티의 주축은 확실히 20~30대 젊은층이다. 그 가운데 깔끔한 정장을 입은 전통적인 ‘삼성맨’은 찾아보기 어렵다. 상당수가 편한 청바지에 남방셔츠 차림이다. 홍보팀 관계자는 “초기에는 비즈니스 캐주얼로 제한했는데, 점점 허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시티 중앙에 있는 3층짜리 한가족 플라자는 직원들의 생활 중심지다. 강북삼성병원 분원과 치과·한의원·물리치료실·쇼핑몰·체육관까지 웬만한 편의 시설은 다 갖춰져 있다. 특히 일반 감기약이나 간단한 치료제는 회사에서 무료로 제공한다.


자율출근제 도입…출근 시간 제각각

디지털시티의 점심시간은 11시 30분에서 시작해 오후 1시 30분까지 2시간 동안 이어진다. 3만 명 가까운 대규모 인원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이 가까워 오자 한가족 플라자 주변은 사무실을 빠져나온 사람들로 금방 북새통을 이룬다.

한가족 플라자 1층에는 구내식당 ‘레스토랑 패밀리’가 자리해 있다. 점심에만 하루 3000 ~3500명이 이곳을 이용한다. 디지털시티에는 모두 9개의 구내식당이 운영되고 있다.

이날 메뉴는 왕만두김치뚝배기·쇠고기무나물비빔밥·미트스파게티·나시고랭 등 4가지다. 어느 것을 선택하든 무료다(저녁 식사는 3분의 1 본인 부담). 식당 한쪽에는 각종 모임이나 파티에 적합한 카페 분위기의 좌석이 따로 마련돼 있다.

지난 4월 선보인 테이크아웃 메뉴 ‘프레쉬 투고(Fresh to-go)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샐러드와 샌드위치, 과일 위주로 구성돼 사무실이나 야외에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 저녁에는 샌드위치 대신 죽이 제공된다.

식사를 일찍 끝낸 사람들은 저마다 손에 테이크아웃 커피나 아이스크림을 들고 새로 조성된 ‘열린산책로’로 향한다. 산책로는 폐수정화장 옆에 만들어진 생태공원을 지나 원천천변 매화공원까지 이어진다. 물과 꽃, 녹음이 어우러져 가장 인기 있는 휴식 공간이다. 생태공원 초입에는 토끼와 다람쥐, 공작이 뛰노는 미니 동물원이 자리 잡고 있다.

디지털시티에는 생태공원 외에도 각기 특색을 가진 3개의 공원이 더 있다. 대형 축구장과 야구장을 끼고 있는 그레이트워크플레이스 파크(GWP 파크), 벚나무가 아름다운 ‘창조의 길’이 있는 생동감 파크, 그리고 마지막 한 곳은 최근 완공돼 이름을 공모 중이다.

디지털시티를 걷다보면 대학 캠퍼스에 와 있다는 착각이 들 때가 적지 않다. 무선사업부의 한 직원은 “딱딱한 회사 분위기가 나지 않아 좋다”며 “마치 대학 캠퍼스에서 생활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같은 부서의 신입 사원은 “오히려 대학 캠퍼스보다 더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디지털시티의 변화는 단지 외형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난 2009년 ‘꿈의 일터’를 선언한 이후 창조적 조직 문화 구축이 최우선 과제로 자리 잡고 있다. 직원들의 취미 소모임도 활성화돼 디지털시티에서만 104개의 동호회가 활동 중이다. 매주 수요일에는 각종 문화 공연이 열리는 ‘수요감성무대’가 사업장 곳곳에서 열린다.

지난 2009년 6월 도입된 자율출근제도 파격적이다. 오전 6시에서 오후 1시까지 원하는 시간에 출근해 하루 9시간(식사 시간 포함)의 근무시간만 채우면 되는 방식이다. 가장 효율이 높은 시간을 골라 스스로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삼성전자가 아이디어와 창의성이 넘치는 꿈의 일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창조와 열정만이 혁신적인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직원들의 창의력이 기업의 경쟁력과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구글·애플·페이스북 등 최고의 글로벌 기업들이 자유로운 대학 캠퍼스나 공원처럼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업무 환경 조성에 아낌없이 돈을 쏟아 붓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5월 2일부터 삼성전자는 또 다른 실험을 시작했다.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집이나 가까운 사무실에서 근무할 수 있는 ‘원격근무제’를 시범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삼성전자 전체 임직원 가운데 30%를 차지하는 여성 인력의 육아와 가사 부담을 덜어주고 유연한 근무 환경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삼성전자의 변화는 진행형이다.

수원=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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