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차별화’…우량주 중심 ‘투자’

한국판 ‘니프티 피프티’는 누구

최근 주식시장을 지배하는 화두는 주가 차별화와 주도주 논쟁이다. 소위 오르는 종목만 계속 오르고 가치와 실적이 우량함에도 불구하고 찬밥 대우를 받는 주식들은 계속 죽을 쑤고 있다. 필자도 운용을 하면서 많은 딜레마를 느끼는 부분이다.

더욱이 코스피 지수 2000 위에서 유입된 자금으로 시장 주도주를 사자니 2~3년간 아찔하게 올라 현기증이 나고 그래서 비주도주군 가운데 비교적 가치가 우량하고 성장성이 있어 보이는 종목을 사면 주가가 움직이지 않아 애를 태운다.

최근 눈에 띄는 ‘차별화 장세’

혹자는 이러한 현상을 일부 자문형 랩의 운용 행태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선두권에 있는 랩 운용사에서 소위 잘나가는 몇몇 우량 주식에 집중 투자하고 여기에 개인들이 가세하고 일부 기관들이 뛰어들면서 소수 종목으로 쏠림이 극대화되고 이것이 블랙홀처럼 비주도주군의 매도를 부추겨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비난한다.

게다가 지속적인 환매 몸살을 앓고 있는 자산운용사들이 환매가 들어오면 잘나가는 주도주는 아껴두고 애물단지 노릇을 하고 있는 비주도주군을 먼저 정리하기 때문에 주가 차별화가 더욱 심화되고, 설상가상으로 투신권에서 최근 등장하고 있는 압축 펀드도 주가 차별화에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종목 차별화를 보는 필자의 시각은 좀 다르다. 물론 일부 자문사의 압축 포트폴리오가 주가 양극화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맞지만 시대 상황이나 증시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러한 인위적인 흐름은 지속되기 힘들다.

하지만 일시적 흔들림이나 조정에도 불구하고 주도주의 차별화는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그렇다면 뭔가 구조적인 이유가 있는지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우리보다 증시의 역사가 오래되고 발전 단계에서 앞서 있는 선진국의 사례에서 찾아봤다.

미국은 1969년부터 1972년까지 연·기금의 주식 투자가 확대되면서 이들 연·기금이 선호하는 우량주 50개 종목의 주가가 급등한 소위 ‘니프티 피프티(Nifty Fifty)’ 장세가 있었다.

당시 이들 50종목의 주가수익률(PER)은 시장 평균 PER 대비 2배에서 4배에 달했고 피크 시점인 1972년 기준 50개 종목의 평균 PER는 42배에 이르렀다(코카콜라·제록스 46배, 존슨앤드존슨 57배, 맥도날드·월트디즈니 71배 등).

이러한 극심한 차별화 장세는 미국 주식시장의 질적인 판도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작전주가 사라졌고 부실주가 시장의 관심에서 퇴출됐다. 개미들이 비로소 우량주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됐다.

또 미국에서 퇴직연금(401K)이 본격 도입된 1980년대 중반부터 우량 종목 30개로 구성된 다우지수가 장기간 상승한 사례를 들 수 있다. 1985년 1400억 달러에 불과했던 미국의 퇴직연금 자산이 2009년 2조5000억 달러까지 17배 증가하는 동안 다우지수는 1000에서 1만으로 10배 가까이 올랐다.

투자신탁 국제부에서 미국 투자를 담당하던 필자의 기억에도 다우지수 1500~2000에서 시장 과열에 대한 경계와 우려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던 기억이 새롭다. 일본도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극심한 주가 차별화 장세가 진행됐다.

경영 혁신과 구조조정으로 경쟁력이 높아진 일본의 수출 기업들이 미국의 장기 소비 호황에 편승해 실적이 급증하면서 도요타·혼다·다케다제약·캐논·세븐일레븐 등 우량주에 매기가 몰리면서 주가가 크게 차별화된 사례가 있다.

미국과 일본의 경제와 자본시장 발전 단계를 답습해 가고 있는 한국 증시에 훌륭한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국민의 가계 자산 가운데 금융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고작 17%에 불과하고 80% 이상은 부동산 등 비 금융자산에 묶여 있다.

그나마 금융자산 가운데 8% 정도만이 펀드를 포함한 주식 관련 자산이다. 미국과 일본은 가계 자산의 절반이 금융자산이고, 그 가운데 절반이 주식 관련 자산인 것과 대조적이다. 또한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가운데 퇴직연금 자산의 비중이 고작 3%에 불과해 일본의 64%, 캐나다의 73%, 미국의 104%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다.

게다가 연금 자산 가운데 주식 비중이 23%에 불과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47%의 절반에 머무르고 있다. 반면 채권의 비중은 47%로 미국의 두 배, 호주의 3배에 달하고 있어 지나치게 채권에 치중한 운용을 하고 있다.


연·기금 주식 투자, 선진국 수준에 맞춰야

지난해 국민연금의 자산 운용 수익률은 8%였는데 만일 주식과 채권 비중을 5 대 5의 비율로 가져갔더라면 연금 운용 수익률은 15%에 달했을 것이다. 향후 고령화로 연금 수령자의 급증이 예상돼 자칫 연금의 지급 차질에 대한 우려가 공론화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선진국처럼 위험 자산, 특히 주식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길이다. 미국은 연·기금 자산 가운데 주식 운용 비중이 50%에 달하고 있다.

미국 주식시장이 숱한 어려움과 곡절을 겪으면서도 장기적으로 큰 상승 랠리를 이어가고 있는 까닭은 바로 우량주에 장기 투자하는 연·기금이 굳건한 버팀목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경제의 장기 성장에 대한 믿음으로 조정 국면마다 우량주를 사서 곳간에 쌓아 놓은 믿음의 투자가 큰 결실을 가져와 국민들의 노후와 복지를 윤택하게 책임지고 있다. 그래서 연금에 대한 납부가 더 증가하고 우량주에 대한 수요가 더 늘어나는 상생과 공존의 룰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고령화사회로 치닫고 있는 한국 사회가 빨리 깨닫고 배워야 할 선례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도입 초기에 있는 퇴직연금의 규모가 향후 급격히 확대될 것은 자명한 이치다.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은 30조 원에 달한다.

이 중 주식 투자가 가능한 확정기여형의 비중은 28%에 불과하다. 향후 자본시장의 활성화와 함께 퇴직연금에서 주식 운용 비중이 커질 것이고 우량주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이다.

현재 주식시장에서 목격하고 있는 주가 차별화, 특히 우량주의 차별화된 시세가 이미 이러한 자산 운용 구조의 변화를 염두에 둔 선제적 움직임일 수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이에 따라 주도주 논쟁에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실적과 가치 그리고 성장성 면에서 연·기금과 외국인, 기관의 러브콜을 받게 될 우량주를 미리 선점하고 장기 보유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물론 상승장에서도 언제든지 일시적인 조정과 흔들림은 다반사로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장 성격이 일시적으로 바뀌고 주도주의 순환과 변동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량주의 장기 상승 사이클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점이다. 따라서 일시적 조정과 흔들림을 이기지 못해 우량주에서 도망을 꿈꾸기보다 그 기회를 역이용해 알토란같은 우량주, 그리고 아직 남이 알아주지 않지만 머지않아 주옥같은 우량주의 대열에 합류하게 될 차기 유망주를 남보다 먼저 사 모아야 한다.

이제 바야흐로 한국 주식시장도 연·기금의 주식 수요 확대와 가계 자산 재구성으로 주식 수요가 급증하는 선순환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연·기금의 주식 수요가 확충될수록 증시 변동성이 줄어들게 된다.

또 과거 품질이 조악한 저가 수출품에 의존하던 물량 떼기 수출에서 이제 탁월한 품질 경쟁력에 의존한 프리미엄 브랜드를 수출하는 한국 경제에 대한 시각도 많이 바뀌고 있다. ‘주식회사 한국(Corporate Korea)’이 경기 민감주(Cyclicals)에서 우량 가치주(Value Stocks)로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이미 글로벌 투자 사회에서 한국은 사실상 선진국 대우를 받고 있다. 이제 국내 투자자들 특히 개인들이 변해야 한다. 부동산과 금리부 자산에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노후를 보장 받기 힘들다. 연·기금 또한 현재와 같은 겁쟁이 운용으로는 국민의 노후를 절대 책임질 수 없다.

주식 비중을 과감히 선진국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향후 한국 증시의 장기 상승 사이클을 이끌고 그 복된 과실을 국민들에게 나눠 줄 책임은 이제 연·기금의 몫이기 때문이다.

최남철 삼호SH투자자문 운용대표 serodas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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