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배상법안 부결 ‘충격’…영국 등 소송 예고

원점으로 돌아간 예금 상환 줄다리기

<YONHAP PHOTO-0634> (100617) -- BRUSSELS, June 17, 2010 (Xinhua) -- This file photo taken on Feb. 4, 2010 shows flags of Iceland and European Union (EU) flaunt in front of the EU headquarters when Icelandic Prime Minister Johanna Sigurdardottir visits the European Union. EU leaders gave their formal approval during the EU Summit on June 17, 2010 to launch accession talks with Iceland, diplomats said. (Xinhua/Wu Wei) (zw)/2010-06-18 06:20:03/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지난 2008년 아이슬란드 은행 ‘아이스세이브’ 파산 이후 영국과 네덜란드 예금자들에 대한 손실 보상 여부를 놓고 2년 반을 끌어왔던 정부 간 협상이 결국 파국으로 끝났다.

아이슬란드는 최근 국민투표를 통해 영국과 네덜란드 정부에 대한 배상 법안을 부결시켰다. 투표 결과는 반대 58.9%, 찬성 39.7%로 사실상 압도적인 반대였다. 이에 맞서 양국 정부는 ‘더 이상 협상은 없다’며 이 문제를 법정으로 가져가겠다고 선언했다.

2년 반 넘게 이어져 온 분쟁의 발단은 금융 위기가 터졌던 지난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아이슬란드 은행 란드스방키가 파산 후 국유화되는 과정에서 란드스방키의 온라인 은행 아이스세이브에 예치된 영국·네덜란드 고객들의 자금 40억 유로(약 58억 달러)를 동결한 것이었다.

높은 금리 차익을 노리고 가입이 손쉬운 아이스세이브에 몰렸던 예금자들은 하루아침에 돈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영국과 네덜란드 정부는 각각 예금자들의 피해액을 대신 보전한 뒤 아이슬란드 정부에 상환을 요구해 왔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영국 정부는 아이슬란드 은행의 영국 내 자산을 동결하기 위해 반(反)테러법을 적용함으로써 큰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영국 정부는 30만 명에 이르는 자국 피해자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신속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에서는 이 반테러법 적용을 둘러싸고 영국에 대한 반감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아이슬란드가 국민투표를 통해 영국과 네덜란드 정부에 대한 배상을 거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아이스세이브 사태 이후 아이슬란드에서는 영국·네덜란드와 외교 협상-타결-의회 심의-부결-재심의-국민투표로 이어지는 지루한 과정이 반복돼 왔다.

2008년 아이스세이브 사태가 터진 직후 아이슬란드 정부는 영국 및 네덜란드와 외교 협상을 통해 마련한 상환 조건을 기초로 배상 관련 법안을 마련해 왔다. 이 법안이 2009년 아이슬란드 의회에 회부됐다.

그러나 의회는 이 법안에 한목소리로 반대했다. 대신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배상액의 최고 한도를 정하는 수정법안을 통과시켰다. 정부가 영국·네덜란드 정부와 합의한 배상 방식과는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의회가 통과시킨 법안에 따르더라도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2017년부터 7년에 걸쳐 총 GDP의 4%(파운드화 기준)를 영국에, 2%(유로화 기준)를 네덜란드에 고스란히 갖다 바쳐야 하는 셈이니 아이슬란드 경제에는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은 분명했다.

대통령이 서명까지 마친 이 법안은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휴지조각이 됐다. 영국과 네덜란드가 이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두 나라는 아이슬란드 의회가 마련한 수정법안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이슬란드가 신청한 국제통화기금(IMF) 자금 지원에 반대하고 나서면서 고강도 압박 작전에 나섰다.

높은 금리 차익 노리고 해외 예금 몰려

<YONHAP PHOTO-0080> People protest in the streets of Reykjavik on March 6, 2010 Protestant joined the parade on the streets demanding the government do more to improve conditions in Iceland. celanders headed to the polls in drizzling rain Saturday in a referendum set to reject a bank repayment deal worth billions that many here consider a foreign diktat, but a "nei" vote is expected to plunge the country deeper into crisis. The issue is whether Iceland should honour an agreement to repay Britain and the Netherlands 3.9 billion euros (5.3 billion dollars). This would be to compensate them for money they paid to 340,000 of their citizens hit by the collapse of Icesave in 2008. AFP PHOTO / Halldor Kolbeins /2010-03-07 06:33:12/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정부는 영국과 네덜란드의 요구를 충족할 만한 재수정 법안을 만들어 다시 의회에 넘겼다. 투표 결과 찬성 33 대 반대 30의 근소한 차로 통과했다. 투표 직전까지만 해도 반대표가 찬성표를 근소하게 앞서 법안 통과는 다시 불투명해 보였다. 그러나 법안에 반대해 온 야당 의원 2명이 막판에 찬성 쪽으로 돌아서는 바람에 겨우 법안을 되살려낸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이슬란드 대통령이 이 법안에 서명을 거부함에 따라 사태는 다시 한 번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이슬란드 전체 유권자의 23%에 해당하는 5만6000명 국민들이 연대 서명을 통해 법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요구하고 나서자 대통령은 국민투표라는 카드를 빼든 것이다.

결국 배상 조건을 놓고 아이슬란드와 두 나라 경제 부처 간 지루한 재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지난해 3월 첫 번째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이 국민투표는 아이슬란드가 1944년 덴마크로부터 독립된 후 처음으로 실시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93%라는 압도적 반대표를 던져 배상법안을 다시 좌초시켰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상환 기간을 30년으로 늘리고 이자율을 조정한 새로운 법안을 만들어 이를 다시 국민투표에 부쳤다. 그러나 얼마 전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국민들은 60%에 가까운 반대로 이를 다시 부결시킨 것이다.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영국 내 자산을 동결하기 위해 반테러법을 꺼내든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가 사태를 악화시킨 주범이라고 말한다.

부결 직후 영국과 네덜란드 정부는 더 이상 협상하지 않고 이 문제를 법정으로 가져가겠다고 선언했다. 아이슬란드 정부 역시 ‘또 한 번의 국민투표를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법적인 절차에 따라 대응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수단이 없다고 밝혔다.

아이슬란드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이 아니다. 노르웨이·스위스·리히텐슈타인 등 유럽의 3개 소국과 함께 유럽자유무역연합(EFTA)에 가입해 있다. 따라서 아이슬란드와 영국 및 네덜란드의 분쟁은 EFTA 내 분쟁 해결 기구에 회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EFTA는 이미 지난해 아이슬란드 정부가 외국인 예금자를 차별한 것이 유럽경제지역(EEA) 협정 위반이라고 결론지은 바 있다.

이렇게 영국과 네덜란드 등 해당국은 물론 국제 경제 기구들로부터도 겹겹이 포위당한 아이슬란드가 버티기로 일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럽 언론들은 이 문제가 경제적 문제라기보다는 아이슬란드 국민들의 자존심과 결부된 문제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우선 경제적 문제부터 따져보자. 금융권에서는 온라인 은행 아이스세이브를 소유한 란드스방키의 자산을 모두 매각하면 영국과 네덜란드에 지불해야 하는 배상 금액을 충당하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문제는 아이슬란드 국민들이 양국 정부, 그중에서도 특히 영국 정부에 대해 갖는 반감이다. 두 차례의 국민투표를 부결시킨 배경에도 이러한 감정적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그중에서도 아이스세이브의 영국 내 자산을 동결하기 위해 반테러법을 꺼내든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가 사태를 악화시킨 주범이라고 말한다.

브라운 전 총리가 반테러법을 적용했을 당시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코흘리개 아이들까지 앞세워 ‘우리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또 이를 유튜브에 올리며 대대적인 반영 캠페인을 벌여왔다.

금융 위기로 몰락한 독립당 입지 회복 노려

<YONHAP PHOTO-0238> (081118) -- REYKJAVIK, Nov. 18, 2008 (Xinhua) -- Photo taken on Nov. 17, 2008 shows the Landsbankinn, national bank of Iceland, in Reykjavik, capital of Iceland. Iceland's currency krona has depreciated more than 100 percent since financial crisis hit the country in October. Krona's exchange rate remain in unprecedented turbulence although Iceland has reached agreement with some European Union members on guarantees for deposits held by foreigners in frozen Icelandic accounts. (Xinhua/Guo Lei) (hdt)/2008-11-19 06:20:00/ <저작권자 ⓒ 1980-200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흥미로운 것은 2008년 금융 위기를 불러들일 당시 집권당이었던 보수 성향의 독립당이 이러한 반대 캠페인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991년 집권해 18년간 여당 자리를 지켜 온 독립당은 신자유주의 노선에 기초해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라는 ‘강소국 신화’를 만들어 낸 주역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 신화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아이슬란드가 IMF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로 전락하면서 독립당은 2009년 총선에서 패배해 야당으로 전락했다. 경제 위기에 대한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 독립당은 그 후 국제금융 시장과 각을 세우며 국민들의 민족주의 감정을 부채질하면서 입지 회복을 꾀하고 있다.

이런 정치적 복잡성이 뒤엉켜 사태 해결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영국과 네덜란드가 이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가더라도 명확한 결론이 나오기까지에는 최소한 1~2년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성기영 영국 통신원(워릭대 국제정치학 박사과정) sung.ki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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