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의 아버지] 로얄탕의 추억

최근에 공중목욕탕을 가 본 기억이 언제인지 가물가물하지만 내가 어릴 때는 동네 목욕탕을 가는 것이 많이 기다려지곤 했었다. 수영장이 거의 없었던 그때는 목욕탕에 가면 첨벙거리면서 물놀이도 할 수 있었고 목욕이 끝나면 아버지를 졸라 자장면도 먹을 수 있었다.

다만 때를 밀어야 한다는 것이 큰 고역이기는 했지만 맛난 음식과 장난칠 것을 생각하면 기대되는 시간이었다. 누나와 어머니까지 가족 전부 가는 경우도 많았지만 아버지는 특히 우리 삼형제만 데리고 목욕탕에 가는 것을 참 좋아하셨다.

남자로서는 아주 작은 키에 마른 체구였던 아버지는 살아오시는 동안 당신 자식들은 좀 크게 키우자고 항상 생각하셨는데 아들들을 목욕탕에 데리고 가면 자식들이 크는 것을 옆에서 볼 수 있고 한편으로는 매우 든든하셨던 모양이다.

어느 하루는 시내에 아주 최신식 목욕탕이 생겼다고 거길 가자고 하셨다. 아들 삼형제를 데리고 버스를 30분이나 타고 시내 한가운데 있는 극장 맞은편 큰 건물로 우리를 데리고 가셨는데 바로 앞에서 올려다보니 ‘로얄탕’이라는 멋진 네온사인으로 둘러싸인 글씨가 걸려 있었다.

그 안에 들어가자마자 우린 운동장만한 크기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크고 작은 많은 탕들, 천장에 매달려 있는 신기한 폭포 장치, 탕 내부 벽면과 아래 바닥의 물거품 마사지, 여러 군데에서 물줄기가 나오는 단독 샤워 공간, 각종 사우나 시설 등 동네 목욕탕과 비교해 보면 생전 처음 보는 별천지였다.

탕도 넓어서 한쪽에서 물장구를 쳐도 다른 어르신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놀 수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들을 실컷 놀게 하시면서도 한 명씩 불러서 온 몸의 때를 구석구석 밀어주셨다. 세 아들들의 때를 밀어주시고 당신 몸까지 미시려면 힘도 드셨을 것인데 얼굴에는 짜증내는 구석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2시간의 목욕을 마치고 난 후 우리는 약국에 가서 시원한 드링크제를 하나씩 마시고 시내에서 가장 맛있다는 만둣국집을 찾아가 저녁을 먹었다. 정말 꿀맛이었다. 아직도 그 맛을 생각하면서 만둣국을 찾는데 아버지와 목욕 후 먹던 그때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그 후로 우리 형제들은 목욕탕에 가는 것을 더욱 기다리게 됐고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기숙사 생활을 하기 전까지 거의 매주 토요일마다 로얄탕이 우리 부자들의 주 무대가 되었다.

이제 내가 아들을 둔 아버지가 되어 보니 그때 자식들의 때를 밀어주던 아버지의 마음이 눈시울 짜릿하게 다가온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우리 아들의 등에 비누칠을 해 주면서도 대충대충 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사람한테 구박을 많이 받기도 한다. 그때는 때 미는 게 너무 싫었지만 30년 전의 일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것은 아버지가 밀어주셨던 때 덕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가 로얄탕의 열렬한 팬이었기에 같이 보냈던 시간들이 지금의 내 자리에서 조그맣게 누릴 수 있도록 나를 이끌어 왔고, 앞으로도 그 추억의 힘을 많이 의지할 것으로 생각된다.

어느덧 훌쩍 흘러버린 세월에 한편으로는 기분이 멍하지만 지금의 내가 그때의 아버지 위치에 이른 만큼 나도 우리아들한테 수십 년이 흘러도 마음 잔잔한 추억을 선물해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맛있는 것을 서로 먹겠다고 아들과 다투곤 하는데 아직 한참 멀었나 보다.

지방에서 아들과 손자 걱정에 여념이 없으신 우리 아버지, 덩치는 작으셔도 나한테는 모든 면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오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십시오. 고맙습니다.

김성하 미래에셋증권 전략기획본부 이사·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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