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주의 ‘대세’…보상 체계 ‘글로벌화’

임금제도 트렌드

성과주의 임금제도가 대세다. 연봉제 도입은 이제 일반화됐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9월 전국 617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의 62.7%가 연봉제를 시행 중이다. 연봉제 도입률은 1996년 1.6%, 2000년 23%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완전한 연봉제는 아니다. 연봉제는 100% 성과에 입각해 연봉을 산정하는 것이다. 반면 국내 기업들은 호봉제와 연봉제를 혼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호봉제는 한마디로 오래 일한 사람을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시스템이다. 연봉제를 도입했지만 호봉에 따라 기준 연봉을 정하는 것은 물론 수당과 상여금도 별도로 제공한다.

직급이나 직무에 따라 호봉제를 겸용하고 있는 것도 적지 않다. 예컨대 LG전자는 사무직은 연봉제, 생산직은 호봉제+연봉제를 적용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를 한국형 연봉제라고 부른다. 고용노동부 조사에서도 호봉제 도입 기업 비율이 57.6%로 나타났다.

어정쩡한 한국형 연봉제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성과주의를 강화하는 흐름만은 뚜렷하다. 고용노동부 조사에서 성과배분제를 도입한 기업 비율은 37.7%다. 전년에 비해 1.2%포인트 상승했다.

한국 대표 기업인 삼성이 좋은 예다. 삼성은 성과에 따라 같은 직급에서 임금 격차를 확대하고 있다. 삼성은 올 초 직원 승진 인사에서 발탁(연한에 앞서 승진) 비율을 두 자릿수로 높였다. 이는 연공서열 중심의 문화를 확실한 성과 중심 문화로 바꿔가겠다는 포석이다.

같은 연도에 입사했더라도 2년 빨리 승진하면 계약 연봉이 높을 뿐만 아니라 각종 성과급도 더 많아져 연봉 차이가 커진다. 더욱이 누적식 연봉제 도입으로 격차가 더 벌어지게 됐다. 누적식 연봉제는 연봉 협상 시 전년도 연봉 금액을 하한선으로 정해 놓고 성과 등에 따라 급여 수준을 정하게 돼 최악의 경우에도 삭감 없이 임금 동결만 하면 된다.

연말 성과급으로 최고 연봉의 50%를 지급하는 삼성 임금 체계의 특성상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같은 해 입사했더라도 연봉 격차가 점점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같은 직급이라도 연봉 차이가 3~5배 나야 일류 기업”이라고 말해 왔다.

이러한 흐름은 민간 기업에서 공공 기관으로 확산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으로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 100개 중 간부직에 대해 성과 연봉제를 도입한 기관이 98개다. 석유공사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등 15개 기관은 전 직원으로 이를 확대했다.

국내 기업들이 대거 연봉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무늬만 연봉제’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고용노동부의 2009년 고용 실태 조사에 따르면 조사 업체의 22.6%는 평가에 따라 연봉을 전혀 차등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경영컨설팅 업체인 엑센츄어의 최태원 이사는 “모양은 연봉제지만 연봉 안에 가족수당과 교통비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며 “평가 자체도 연공서열을 감안해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성과주의 확산과 함께 글로벌 인적자원(HR) 시스템을 도입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최신 트렌드다. 미국 인사 컨설팅 업체인 에이온휴잇의 김민석 컨설턴트는 “최근 글로벌 HR 보상 체계 설계를 요청하는 기업들이 부쩍 늘었다”며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전 세계에서 통용될 수 있는 임금제도 구축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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