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해안·고층 ‘No’… 내륙·내진 ‘OK’

바뀌는 주택 시장 인기 지역

대지진은 일본 주택 시장에 거대한 후폭풍을 안겼다. 인기 물건에 대한 인식이 변화된 것이 대표적이다. 대지진이 전통적인 ‘살기 좋고 살고 싶은’ 인기 지역 순위를 뒤집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해안가 고층 맨션의 인기가 하락했다.

그 대신 바통을 이어받은 새로운 인기 스타는 내륙 입지와 내진 설계로 요약된다. 지진 이후 전통적으로 강세 물건이던 해안가 고층 맨션은 발길이 뚝 끊긴 반면 도심의 탄탄한 집은 신흥 강자로 우뚝 섰다.

원래 해안 부근은 일본 부자가 선호하는 거주지로 유명하다. 예외가 있지만 절대 다수의 부유층이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지역에 산다. 다마(多摩) 등 도쿄 도심의 일부 언덕 지역에도 고급 주택이 많지만 대세는 그래도 바다다. 도쿄 도심을 보자. 도쿄 부자의 집성촌은 미나토(港)와 지요다(千代田) 구로 압축된다. 서로 인접한 이들 부유층 거주지는 바닷가라는 것이 공통분모다.

‘부자 선호 = 해안 지역’ 등식 깨져

부자들의 바다 선호는 수도권까지 넓히면 보다 뚜렷해진다. 노무라종합연구소가 매년 10월 발표하는 ‘지역별 금융자산 추계 결과’를 보자. 이에 따르면 고소득자가 모이는 전철 라인 1위는 바다 경치가 좋기로 유명한 에노시마선(線)이다.

세컨드 하우스 개념의 별장 밀집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가구별 연간 소득은 800만 엔으로 집계됐다. 2위인 고요선도 오사카 권역의 부자 밀집 지역이다. 연간 소득이 789만 엔대로 바닷가에서 출발한다. 4위는 도요코선인데, 도쿄와 요코하마를 오가는 라인답게 해안 지역에 인접한 부자 동네가 많다.

그런데 대지진은 ‘부자 선호=해안 지역’의 등식을 깨고 있다. 대지진으로 해안 거주의 위험성이 여실히 드러난 결과다. 해안 지역에 몰아닥친 쓰나미와 액상화 공포 탓이다. 더욱이 액상화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지바의 우라야스시가 대표적이다. 액상화는 지진으로 수맥이 뒤틀리면서 상하수도와 가스관이 망가지는 현상이다. 지반이 물렁물렁해지면서 꺼지거나 치솟으면서 배관이 손상을 입는 것이다.

디즈니랜드가 지진 당시 물바다가 된 이유다. 지진 이후 수도권 해안 지대의 액상화는 공통적이다. 배관 손상은 해안가 고층 맨션 거주자를 순식간에 ‘고층 난민’으로 만들었다. 물과 전기가 끊겨서다.

이에 따라 ‘해안 고층 맨션≠고가 인기 물건’의 등식으로 대체된 느낌이다. 가격도 떨어졌다. 절정기(2006년)에 3.3㎡당 201만 엔까지 치솟았던 우라야스 고급 물건의 가격은 지진 이후 하락세가 가속화했다. 반면 내륙지역은 지진 수혜를 봤다. 도쿄 동쪽의 신규 물량은 지지부진하던 분양 성적이 확연히 개선됐다.

또 하나의 변화 양상은 내진 설계 여부다. 일본의 지진 공포는 여전하다. 부정적인 관측도 줄을 잇는다. 향후 30년 안에 리히터 규모 7.0 이상의 지진 확률이 70%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때 예상 지역은 대부분 도쿄와 이를 감싸는 수도권이다. 그만큼 주택 부문의 안전 지향성이 높아졌다. 일본은 1981년을 계기로 내진 설계 요구 조건이 변했다. 이전엔 규모 5.0으로 맞춰졌지만 이후부터는 규모 6.0~7.0을 견디도록 했다.

다만 여전히 전체 맨션의 5분의 1(106만 호)이 1981년 이전에 건축됐다. 전체적으로 봐도 내진화율은 3.4%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전 등 비상 대책을 잘 갖춘 물건도 관심권이다.

개별 대응의 태양광발전은 물론 태양광발전의 한계인 축전 시스템을 채택한 물건도 생겨났다. 기존 주택은 내진 적립금을 10배 이상 올려 새로운 내진 강화에 나서는 움직임도 있다. 과거 인기 물건의 필수였던 1층의 필로티 형태는 지양되는 추세다.

전영수 게이오대 경제학부 방문교수 change4drea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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