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 vs 캐머런, IMF 총재 자리 놓고 설전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자리를 노리던 고든 브라운 전 총리의 꿈을 좌절시켰다. 최근 가디언 등 영국 언론에 따르면 캐머런 총리는 브라운 전 총리에 대해 “IMF의 수장으로 적합한 인물이 아니다”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캐머런 총리는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재정 적자 및 부채 문제와 관련해 영국이 스스로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 문제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 전 세계 부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며 “브라운 전 총리는 IMF 총재로 적합한 인물은 아닌 듯하다”라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IMF가 오늘날과 같은 막강한 위상을 갖게 된 것은 설립 후 수십 년간 ‘특별히 탁월하고 능력 있는’ 리더가 이끌어 왔기 때문”이라며 “스트로스칸 현 총재도 자신의 업무를 훌륭히 수행해 왔다”고 덧붙였다. 영국 정부 관계자도 “브라운 전 총리가 유력 후보로 거론될 때 전 세계가 영국을 비웃었다”라고 거들었다.


브라운, 자국 총리 비토로 총재 꿈 무산

최근 2012년 프랑스 대선 출마설이 도는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가 사임하면 차기 IMF를 이끌 인물로 유력시되던 브라운 전 총리로선 후임 정부 수장에게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IMF 총재직 경선 후보로 나서기 위해선 해당국 정부 추천이 있어야 하는 만큼 브라운 전 총리로선 사실상 IMF 총재의 꿈을 접어야 하게 됐다.

영국 역사상 연속 재임으로는 최장인 10년 2개월간 재무장관을 지낸 브라운 전 총리는 최근 국제회의에서 금융 개혁을 주창하며 IMF 수장 자리에 대한 욕심을 내비쳐 왔다. 그는 특히 노동당 집권기에 재무장관과 총리 등 요직을 역임하며 IMF와 미국 정재계에 막강한 인맥을 구축했기 때문에 가장 유력한 차기 IMF 총재 후보로 꼽혔었다.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둔 IMF와 세계은행(WB) 양대 국제 금융기구 중 IMF는 전통적으로 유럽 출신이, 세계은행은 미국인이 이끌어 왔다.

하지만 캐머런 총리의 비토 발언으로 브라운의 꿈은 물거품이 될 처지가 됐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캐머런 총리가 IMF를 노리던 브라운의 꿈을 땅속에 묻어버렸다”고 평가했다. 브라운 전 총리가 속한 노동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에드 밀리반드 노동당 대표는 “브라운 전 총리는 글로벌 금융 위기의 파고를 현명하게 넘기는 등 IMF를 이끌 자질을 이미 증명했다”며 “캐머런 총리가 사적인 감정 때문에 경솔한 행동을 했다”고 비판했다.

주요 국제기구 수장 중 영국인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나온 캐머런 총리의 발언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데이비드 블랜치플라워 전 영국중앙은행 통화정책위원은 “지난 50년간 영국 총리가 한 것 중 가장 보복적이고 옹졸한 발언”이라고 일갈했다. 이 같은 반발에 브라운 전 총리 측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캐머런 총리는 지난해 정권 교체 이후에도 브라운 전 총리와 대립각을 보여 왔다. 캐머런 총리는 과거 노동당 정권의 부실한 경제정책이 영국의 재정 위기를 심화시켰다고 비판했고 브라운 전 총리는 “영국의 아프가니스탄 개입 작전이 실패했다”며 보수당 정권을 꾸준히 비판했다.

한편 브라운 전 총리가 차기 IMF 총재 경쟁에서 낙마하면서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중앙은행 총재와 크리스틴 라가르드 프랑스 재무장관,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 등이 차기 후보군으로 부상하고 있다. 일각에선 제3세계가 IMF에서 차지하는 지분이 늘어난 만큼 제3세계 출신이 IMF 총재를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김동욱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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