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사태보다 더한 일 벌어질 겁니다”

생생 리포트-뉴타운 현장을 가다

“제2의 용산 사태가 발생할 겁니다.” “용산 사태는 세입자들이었지, 이건 소유주들 아닙니까. 용산 사태보다 더한 일이 발생할 겁니다.”

“내가 일제강점기, 6·25전쟁, 4·19 다 겪어 봤지만 이건 공산당보다 더한 놈들입니다. 헌법에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고 되어 있는데, 보호하기는커녕 빼앗고 있으니 말이 됩니까?”

지난 4월 20일 서울시 용산구 보광동에 있는 ‘한남뉴타운개발반대모임’ 사무실에서는 10여 명의 주민들이 모여 뉴타운 정책을 성토하고 있었다. 개발반대모임에 따르면 조합원 중 70~80%가 몇 십만 원에서 몇 백만 원까지의 임대료에 생계를 의존하고 있다.

이런 조합원들은 기존 건물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나 임대료 수입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우려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취소소송 결과 ‘주목’

한남뉴타운은 2003년 2차 뉴타운지구로 지정된 후 2009년 10월 결정고시가 발표됐다. 그러자 개발반대모임은 결정고시 직후 전 구역에 대해 취소소송을 냈다. 개발반대모임은 “현재 재판 진행 중이며, 실측이 다시 진행되는 등 재판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 일부 추진위원회에서 재판 결과를 겁내 자금을 집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1구역은 정비업체가 부도가 나면서 조합원들의 동의를 받지 못해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지 않은 상태다. 5구역은 추진위원회가 처음 서울시의 공공관리를 거부하면서 잡음을 빚었으나 현재 공공관리를 받아들이기로 한 상태다.

비교적 정상적으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4구역은 4월 29일 서울시의 융자 결정이 내려졌다. 4구역 추진위원회 측은 “이자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융자 신청을 천천히 낸 것뿐인다. 정비업체와의 계약도 용역 단가를 낮추기 위해 사업안을 수차례 재검토하라고 반려하는 상황인데, 사업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쳐져 안타깝다”고 전했다.

최근 재개발반대모임은 모든 구역에 대해 시민감사청구를 제기해 5월부터 2~3개월에 걸쳐 시민감사가 청구될 예정이다. 그 사이 사업은 일시 중지된다. 시민감사청구는 조합원 200명 이상의 동의를 받으면 가능한데, 반대모임에서 450명의 동의를 받았으나 자격과 절차상의 문제로 250명의 효력이 인정돼 감사청구가 받아들여졌다.

개발반대모임의 한재규 대표는 이날 시민감사에 동의한 조합원의 문의 전화를 받느라 바빴다. 감사청구에 동의한 조합원의 명단을 파악한 뉴타운추진위원회가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동의를 취소하라는 ‘작업’에 나섰기 때문이다.

250명 중 50명 이상만 동의를 철회하면 시민감사를 취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화를 끊은 한 대표는 “시민감사에 동의한 사람들에게 나중에 분양할 때 동·호수 지정에서 불이익을 주겠다는 식으로 협박하면서 철회를 종용하고 있다. 조합원 분양은 법에 정해진 대로 하는 것인데 무슨 권한으로 불이익을 주겠다는 건가.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통화 내용을 설명했다.

한편 인근 보광동 신동아아파트에는 ‘멀쩡한 17년 새 아파트, 뉴타운 개발 결사반대한다’라는 쓰인 현수막이 크게 걸려 있었다. 한 주민은 “살던 아파트를 허물고 똑같은 평수를 받아도 분담금을 내야 하는데 뭣하러 찬성하겠느냐”며 목청을 높였다.

그 옆 상가 건물 5층에 월세로 살고 있는 한 주민은 “월세 사는 사람 쫓아내면 우리는 어디로 가란 말이냐. 새로 지으면 전세나 월세가 다 비싸질 텐데, 여기서 밥 벌어 먹으려면 어디 갈 데도 없다”며 역시 목청을 높였다.

개발반대모임 한재규 대표는 “지금 찬성하는 사람들은 뉴타운 발표 이후 들어온 외지인·투기꾼들이고 정작 조합원과 세입자가 다 반대하는 뉴타운은 도대체 누굴 위한 거냐. 정부도 이것이 재앙임을 알고 지자체가 일괄 취소하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지자체는 ‘주민 50%가 반대하면 취소하겠다’고 책임을 주민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50%도 말이 안 된다. 조합 설립은 75% 동의를 받아야 하니까 30%의 반대만 받아도 취소가 가능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4월 20일 오후 2시 의정부 자금동 주민센터 인근. 한적한 주택가 사이로 확성기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의정부 뉴타운 반대 주민 대책위’에 참여한 주민 30여 명이 모여 집회를 열고 있었다.

대책위에서 가능지구를 맡고 있는 김기석 위원은 마이크를 잡은 뒤 “내 재산의 가격도 모르고 사업성도 모르고 분양가도 모르고, 추가 비용도 모르고 무조건 조합 설립에 동의하고 인감도장을 찍고 나서 ‘모르고 인감도장 찍었다’고 나중에 울고불고 해도 법은 여러분의 편에 서주지 않는다”며 “도시정비법에 따르면 추진위 설립 동의서는 조합 설립 동의로 간주하며 추진위가 조합을 설립하지 못하면 그동안 사용한 어마어마한 돈을 추진위원장·임원·추진위원과 동의한 사람이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

하루 일당 수십만 원짜리 OS(아웃소싱) 요원을 동원해 동의서 징구에만 열을 올려도 절대 속아 넘어가지 말아 달라”며 주민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주변에 택지개발지구 5곳…사업성 낮아

대부분 60대 이상의 노인들이 모인 이날 집회는 주민 발언과 구호 합창에 이어 골목을 돌며 이웃들에게 전단을 돌리는 순서로 진행됐다. 마침 사진을 찍고 있는 기자에게 한 할머니가 다가와 “누구냐?”며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주민 대책위 목영대 위원장이 “기자다”라고 얘기하자 그 할머니는 “난 또 찬성 쪽에서 사진을 찍어가는 줄 알았다. 찬성 쪽 사람들이라면 가만 두지 않으려 했다”고 얘기했다.

의정부 가능·금의지구는 지난 4월 1일 결정고시가 발표됐다. 이후 대책위가 시청 로비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다 업무 집행 방해로 고발되기도 했고 반대 전단을 돌리던 주민과 찬성 쪽 주민 간에 시비가 붙어 상해에 대한 고소가 이뤄지기도 했다.

목영대 위원장은 “의정부 뉴타운은 실패가 뻔히 보이는 사업이다. 주변에 옥정·광석·회천·별내·민락2 지구가 개발 중인데, 민락2지구는 보금자리고 나머지는 택지개발지구로 이들의 분양가는 시세의 90% 이하로 예정돼 있다.

그곳들은 나대지를 개발하는 곳이고 이미 살고 있는 집을 부수는 방식의 의정부 뉴타운은 미분양이 불을 보듯 뻔하다”며 반대 이유를 설명했다.

한편 ‘(가칭)가능7재정비촉진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 추진설립위원회’는 “의정부가 지금 양주나 동두천보다 더 낙후됐다. 길도 좁고 집도 오래돼 물이 새도 언제 허물지 몰라 수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뉴타운 사업을 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개발해야 할 것 아닌가. 그걸 지금 하자는 거다. 뉴타운이 해제되면 블록별로 각자 재개발을 할 텐데, 그러면 도로 정비도 안 되고 의미가 없다”며 찬성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대해 대책위원회는 “재개발을 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세입자·집주인·상인을 다 내쫓고 보상금·분담금에 대한 확정도 없이 도장 찍고 나면 나중에 비용이 얼마나 들든 모두 주민이 부담해야 하는 뉴타운 방식을 반대하는 것이다.

투기꾼, 정비 업체와 소수의 조합 간부들만 이익 보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필요에 의한 방식으로 하자는 것이다. 서울시의 휴먼타운, 주거지 종합관리계획에 따른 현지 개량·자가 개발,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국토해양부가 12곳에서 시범 사업 중인 거점 확산형 주거 환경 개선 사업, 은평구의 두꺼비 하우징, 국토부의 해피 하우스 등 다양한 대안들이 있다”고 반박했다.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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