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골드미스 결혼 시장의 ‘불편한 진실’

‘욕하면서도’ 결혼 정보 회사에 가입한다?

올해 35세인 프리랜서 번역가 김지혜 씨는 최근 결혼 정보 회사의 주선으로 만난 상대 남자 때문에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남자는 그녀가 원하는 ‘조건’에 대체로 부합하는데다 집도 가까워 며칠 간격으로 자주 만났었다.

대놓고 ‘결혼을 위해 만난 사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게 못마땅하긴 했지만 지난해 가입한 이후 모처럼 ‘괜찮다고 생각하는’ 남자였기에 교제 여부를 두고 고민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만난 며칠 후 남자로부터 한 통의 문자 메시지가 왔다.

며칠 생각해 보니 인연이 아닌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만 해도 결혼 운운했던 터라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녀의 예측은 이랬다.

주말을 지나는 사이 남자가 다른 여자 회원을 소개받아 그쪽으로 마음을 정한 것 같다는 것. 본격적인 교제가 시작되면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보류’할 수 있지만 그전까지는 ‘중복 미팅’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괜찮은’ 남자 만나기는 하늘의 별 따기?

금융권에서 일하고 있는 이미정 씨는 37세의 골드미스다. 안정된 직장에 억대의 연봉을 받고 있지만 바쁘게 일하느라 혼기를 놓쳐 결혼 정보 회사에 가입한 게 벌써 두 번째다. 좋은 조건 때문에 남자들로부터 교제 신청을 많이 받았지만 결혼까지 가는 데는 늘 실패했다.

한번은 결혼 정보 회사에서 만난 남자와 1년 넘게 교제하며 결혼을 꿈꿨지만 결국 남자는 이별을 선언했다. 나중에 전해 들은 결별의 이유는 여자의 집안과 가정 형편이 썩 좋지 않아 결혼까지 하기는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만일 두 번째 가입에서도 결혼 상대를 찾지 못한다면 세 번째 가입까지 고려하고 있다. 업체를 통하지 않고서는 본인이 희망하는 ‘조건’의 남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건 김지혜 씨도 마찬가지다. 지인들에게 소개팅을 해달라고 조르는 것도 자존심이 상하고, 그나마 결혼 정보 업체에서 만남이 가능한 나이대의 남자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씨는 “남자의 직업을 최우선 조건으로 걸었는데 업체가 보내주는 프로필을 보면 직업만 괜찮고 나머지는 다 별로인 경우가 많다”라며 “요즘에는 남자가 워낙 귀해 웬만한 스펙 이상만 되면 무료로 가입시켜 주겠다는 전화가 자주 걸려온다는 얘기도 들었다”라고 하소연했다.

이런 불만 사항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이 결혼 정보 업체 가입에 대해 문의해 올 때마다 가입을 권유한다는 그녀는 “300만 원이라는 거액을 들였고 횟수 제한도 있지만 그래도 ‘검증된’ 남자를 소개받을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있다”라며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내 나이 또래 중 이런 업체에 가입한 여성들이 생각보다 많은 편”이라고 했다.

그나마 두 사람은 나은 편이다. 비싼 가입비가 부담스러워 가입을 망설였던 36세 학원 강사 서은경 씨는 지난해 ‘싼 가입비, 성혼 성사까지 무제한 만남’을 내세운 한 결혼 정보 업체에 가입했다가 고스란히 돈을 떼였다.

미팅 주선을 차일피일 미루던 커플 매니저 때문에 몇 달간 한 차례도 맞선을 보지 못했는데, 올 초 이 업체가 ‘야반도주’한 것이다. 한국소비자원 소비자상담센터에 따르면 서 씨처럼 결혼 정보 업체 때문에 피해를 본 사례는 증가 추세다. 지난해 총 2408건이던 것이 올 들어 1월부터 3월까지만 해도 벌써 793건을 기록하고 있다.

결혼을 꿈꾸는, 정확하게는 결혼 시장에 나온 골드미스들이 ‘속병’을 앓고 있다. 저마다 이유는 다르지만 결국은 하나다. ‘돈까지 들여 사람을 만나야 하나’라는 구태의연한 생각은 차치하더라도 ‘베스트’가 아닌 그냥 ‘괜찮은’ 정도의 남자를 만나 결혼에 성공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결혼 시장서 남녀 균형이 맞지 않는 이유

그러나 결혼 정보 업체 관계자들은 바로 그 ‘괜찮은’이라는 말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회원 중 30% 이상이 골드미스인 ‘부티크’ 결혼 정보 회사 아띠클럽 송미정 대표는 “골드미스들이 ‘남자가 없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남자가 없는 게 아니라 그녀들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상위 1%의 남자가 부족한 것”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싶어 하는데, 소위 ‘진짜’ 골드미스들이 바라는 ‘골드미스터’의 프로필을 30대 초·중반 이상의 모든 여성들이 원하기 때문에 시장의 균형이 맞지 않는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인다.

“‘괜찮은’ 남자의 기준이 알고 보면 그냥 ‘괜찮은’ 정도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회원 가입 상담을 받으러 오는 분들 중 절반을 돌려보내는 이유가 그 부분에서 현실적으로 설득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냉정히 말해 골드미스들이 바라는 남자들은 그녀들을 원하지 않아요. ‘돌싱남’도 초혼인 골드미스보다 차라리 ‘돌싱녀’를 원하는 경우도 있어요. 정말 ‘괜찮은’ 남자들에겐 기회가 너무 많은 게 현실이에요.

그러니 여자들이 더 절실할 수밖에 없죠. 그나마 결혼 정보 업체에서 만난 남자들은 결혼에 대해 적극적입니다. 많은 골드미스들이 ‘욕하면서도’ 결혼 정보 업체에 가입하는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여성들의 사회 활동이 많아지면서 골드미스 결혼 시장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500억 원대의 결혼 정보 업체 시장 중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듀오 측은 “35세 이상 회원 수가 계속 증가 추세”라며 “2000년 5.4%에 불과했던 35세 이상 여성 회원 수가 2010년 기준으로 여자는 16.8%까지 늘었다”고 밝혔다.

듀오의 윤영준 팀장은 “2만3000여 명의 회원 중 남녀 성비가 49 대 51로 비슷하고, 성혼 커플 중 14.7%가 만혼 커플”이라며 “나이가 많을수록 만날 수 있는 상대 남자 풀(pool)이 적어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이보다 더 큰 제약은 역시나 골드미스들이 생각하는 ‘괜찮은 남자’의 기준이 변했다는 것.

“과거에는 얼마든지 괜찮은 남자였던 사람들이 여자들의 지위 상승과 함께 ‘괜찮지 않은 남자’가 되었어요. 웬만한 직장은 물론이고 학력과 가정 형편까지 두루 갖춰야 하는 거죠. 결혼에 대한 골드미스들의 모호한 가치관도 걸림돌입니다. 지금까지 누렸던 싱글 라이프를 그대로 즐기고 싶으면서도 사회 통념상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한 거죠.”

아띠클럽의 송 대표도 “결혼 시장은 경쟁의 원리가 적용되는 곳”이라며 “자기가 원하는 스펙의 남자를 만날 확률이 적다는 사실을 빨리 인정해야 결혼의 가능성이 커진다”라고 조언했다. 이와 함께 “원하는 남자 이상형을 듣고 무조건 ‘예스’ 하는 업체는 피해야 한다”라며 “야단치고 설득하는 회사가 좋은 회사”라는 말도 덧붙였다.

한편 듀오의 윤영준 팀장은 결혼 정보 업체의 소비자 피해 사례를 줄이기 위해서는 가입할 때부터 해당 회사에 대해 꼼꼼히 따져볼 것을 권한다. 기업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 한국신용평가정보 기업 정보 포털 등을 통해 재무구조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 회원 가입 시 신원 인증 절차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환불 규정은 제대로 이행되는지 등을 확인하라는 것. 또한 “실제 대형 업체는 등급표와 점수표가 없다”며 “‘특별히 상위 등급으로 가입시켜주겠다’는 업체는 일단 의심해 보라”고 말했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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