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와 IMF의 때아닌 ‘일본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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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장기 침체를 불러온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위안화 환율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중국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이 때아닌 일본 경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 경제의 몰락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위안화 정책이 180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그동안 일본 경제는 엔화 가치 절상으로 기울기 시작했다는 논리로 위안화 절상 공세를 피해 왔다.

1985년에 선진국들이 모여 엔화의 대달러 가치 절상을 용인하는 플라자 합의를 한 뒤 일본 경제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엔화 가치가 빠르게 오르면서 일본 수출 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화됐고 이 때문에 경기 침체가 가속화됐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중국은 위안화 가치 절상론이 불거질 때마다 “국제사회의 압력에 굴복한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며 거부감을 표시했다. 실제 리다오쿠이 인민은행 자문위원은 인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장기 불황은 플라자 합의로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IMF “과도한 경기 부양책으로 일본 불황 시작”

최근 IMF는 중국의 위안화 절상을 거듭 촉구하면서 이례적으로 일본의 장기 불황 원인을 분석한 3쪽짜리 리포트를 따로 발표했다. 중국의 이런 논리에 대해 작심한 듯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IMF는 이 리포트에서 일본 경제의 불황은 정부의 과도한 경기 부양책 때문이라고 적시했다. 정부가 일시적인 경기 둔화에 너무 과민하게 반응해 버블을 키웠고, 결국 장기 침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1985년 일본의 무역 흑자가 지속되자 선진국 재무장관들은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 모였다. 이들은 엔화가 지나치게 저평가돼 있다며 달러에 대한 가치 절상에 합의했다. 막대한 무역 흑자를 내던 일본은 마지못해 엔화 절상에 동의했다.

그러나 엔화 가치 상승으로 1986년 상반기에 일본의 성장률이 둔화됐다. 일본 정부는 바로 경기 부양책을 추진했다. 1987년에 대규모 재정지출 프로젝트가 시행됐고 정부는 금리를 2%포인트 내렸다. 그 덕분에 1987년 일본 경제는 성장률이 회복됐지만 신용 규모가 급증하고 자산 가격이 뛰기 시작했다. 주식과 도시의 주택 가격은 1985년부터 1989년까지 4년간 3배나 올랐다.

IMF는 “일본 경제는 이미 1986년 하반기에 회복 기미를 보였는데도 정부가 1989년까지 부양책을 밀어붙이면서 자산 버블을 키웠다”고 평가했다. 결국 1990년 1월에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하면서 일본 경제는 장기 침체에 빠졌다.

IMF는 한 발 더 나아가 이런 1980년대 후반 일본의 상황이 지금 중국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과 홍콩에서의 신용 규모 팽창과 부동산 가격 급등 등이 거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이다.

IMF는 “중국과 같은 신흥 경제는 경기 과열을 방지하는 데 화폐 고평가와 고금리가 도움이 되며, 이는 또 세계경제 불균형을 완화하는 데도 효과적”이라며 위안화 절상이 중국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최근 위안화 가치는 연일 달러에 대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달러당 6.5위안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관리형 변동환율제를 도입한 이후 약 4.6%가 올랐다. 원자바오 총리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위안화 환율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위안화 가치가 올해 달러 대비 5~7%포인트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와 관련, “IMF 등은 중국에 위안화의 완전한 변동환율제 도입을 주장하면서 급격한 가치 절상을 주장하고 있다”며 “그러나 중국의 막대한 외화보유액과 환율 통제 능력 그리고 자본 규제 등을 감안할 때 일본과 같은 급격한 절상은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태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tw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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