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살 소녀 한나(시얼샤 로넌 분)는 지난 14년간 세상과 격리된 채 핀란드의 깊은 숲속에서 아버지 에릭(에릭 바나 분)과 단둘이 살았다.
전직 CIA 요원인 아버지는 “잠잘 때도 깨어 있어라. 그러지 않으면 너는 죽는다”며 혹독한 훈련을 통해 그녀를 완벽한 살인 병기로 키운다.
그녀의 첫 임무는 또 다른 CIA 요원 마리사(케이트 블란쳇 분)를 제거하는 것. 마리사는 한나가 상상을 뛰어넘는 치명적인 위험 분자라는 사실을 직감하고 그녀를 없애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10대다운 일상은 모두 삭제당한 채 인간 병기로 키워지는 소녀의 이야기. 이 전제만 듣고 누군가는 뤽 베송의 1990년 작 ‘니키타’, 누군가는 히트 걸이 등장하는 ‘킥 애스’를 떠올릴 것이다.
‘한나’는 굳이 비교한다면 ‘니키타’에 가깝지만 그보다 좀 더 서정적인 성장 스토리가 결합되며 일종의 동화로 바뀐다. 바깥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소녀가 늑대 혹은 마녀의 사악한 힘에 맞서 싸운다는 전제는, ‘한나’를 ‘인어 공주’라든가 ‘빨간 두건’, ‘라푼첼’ 등의 동화에 기대어 바라보기에 충분하다.
모종의 특별한 이유 때문에 살인 병기로 거듭난 소녀가 백과사전을 탐독하며 바깥세상에 대한 모든 지식을 습득하지만 정작 실제로 부닥치게 된 바깥세상은 더 많은 아름다움, 더 많은 공포와 슬픔으로 가득했다.
시각적으로는 16세 소녀가 어른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리는 액션 신의 호사스러움이 더 크게 어필하지만, 심정적으로는 처음 만난 세상의 경이로움에 떨리는 소녀다운 영혼에 더 많이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어톤먼트’, ‘오만과 편견’으로 단숨에 영국 영화의 신성으로 떠오른 조 라이트가 야심적으로 만든 액션 블록버스터. ‘어톤먼트’에서 키이라 나이틀리의 뒤틀린 여동생으로 등장해 불과 열네 살의 나이로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으며 피터 잭슨의 ‘러블리 본즈’에서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었던 소녀 시얼샤 로넌이 주연을 맡았다.
‘트로이’, ‘헐크’의 에릭 바나와 ‘엘리자베스’, ‘반지의 제왕’의 케이트 블란쳇이라는 더할 나위 없는 조연진에 더해 일렉트로닉 뮤직의 제왕 케미컬 브러더스가 음악을 맡았다. 소녀 버전 ‘본 아이덴티티’라고 칭해도 무방할 ‘한나’는 일급 스태프들이 만들어낸 시크한 스릴러다.
김용언 씨네21 기자 eun@cine21.com
무산일기
125로 시작되는 주민등록번호는 북한에서 남한으로 건너온 사람들에게 붙여주는 낙인과도 같은 숫자다. 탈북자라는 이유로 일자리를 얻기 힘든 승철(박정범 분)은 벽보를 붙이는 일로 근근이 먹고산다.
그의 유일한 낙은 주일마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숙영(강은진 분)을 만나는 것. 이창동 감독의 조감독 출신인 박정범 감독은 이 데뷔작으로 부산국제영화제·로테르담국제영화제·도빌국제영화제 등을 차례로 휩쓸었다.
안티 크라이스트
눈 오는 날 밤, 부부는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어린 아들이 문득 잠에서 깨어나 창가에서 눈을 바라보다 추락사한다.
아내(샤를로트 갱스부르 분)는 자식의 죽음을 방조했다는 슬픔과 죄책감으로 점점 병들고, 남편(윌렘 데포 분)은 그녀를 구원하기 위해 그들만의 에덴으로 향한다. 성경에 대한 도발적인 해석, 하드 코어와 하드 고어를 넘나드는 극단적인 표현이 거센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클로즈드 노트
여대생 카에(사와지리 에리카 분)는 이사 도중 전 주인이 놓고 간 노트 한 권을 발견한다. 그녀는 짝사랑하는 남자에게 고백할 용기를 내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중, 잊고 있던 노트를 펼쳐보게 된다.
노트의 전 주인인 초등학교 선생 이부키(다케우치 유코 분) 역시 카에와 비슷한 상황에서 고민하는 내용을 적어두었다. 카에는 점점 그 일기장과 자신의 삶을 동일시하기 시작한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유키사다 이사오의 신작.
전직 CIA 요원인 아버지는 “잠잘 때도 깨어 있어라. 그러지 않으면 너는 죽는다”며 혹독한 훈련을 통해 그녀를 완벽한 살인 병기로 키운다.
그녀의 첫 임무는 또 다른 CIA 요원 마리사(케이트 블란쳇 분)를 제거하는 것. 마리사는 한나가 상상을 뛰어넘는 치명적인 위험 분자라는 사실을 직감하고 그녀를 없애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10대다운 일상은 모두 삭제당한 채 인간 병기로 키워지는 소녀의 이야기. 이 전제만 듣고 누군가는 뤽 베송의 1990년 작 ‘니키타’, 누군가는 히트 걸이 등장하는 ‘킥 애스’를 떠올릴 것이다.
‘한나’는 굳이 비교한다면 ‘니키타’에 가깝지만 그보다 좀 더 서정적인 성장 스토리가 결합되며 일종의 동화로 바뀐다. 바깥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소녀가 늑대 혹은 마녀의 사악한 힘에 맞서 싸운다는 전제는, ‘한나’를 ‘인어 공주’라든가 ‘빨간 두건’, ‘라푼첼’ 등의 동화에 기대어 바라보기에 충분하다.
모종의 특별한 이유 때문에 살인 병기로 거듭난 소녀가 백과사전을 탐독하며 바깥세상에 대한 모든 지식을 습득하지만 정작 실제로 부닥치게 된 바깥세상은 더 많은 아름다움, 더 많은 공포와 슬픔으로 가득했다.
시각적으로는 16세 소녀가 어른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리는 액션 신의 호사스러움이 더 크게 어필하지만, 심정적으로는 처음 만난 세상의 경이로움에 떨리는 소녀다운 영혼에 더 많이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어톤먼트’, ‘오만과 편견’으로 단숨에 영국 영화의 신성으로 떠오른 조 라이트가 야심적으로 만든 액션 블록버스터. ‘어톤먼트’에서 키이라 나이틀리의 뒤틀린 여동생으로 등장해 불과 열네 살의 나이로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으며 피터 잭슨의 ‘러블리 본즈’에서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었던 소녀 시얼샤 로넌이 주연을 맡았다.
‘트로이’, ‘헐크’의 에릭 바나와 ‘엘리자베스’, ‘반지의 제왕’의 케이트 블란쳇이라는 더할 나위 없는 조연진에 더해 일렉트로닉 뮤직의 제왕 케미컬 브러더스가 음악을 맡았다. 소녀 버전 ‘본 아이덴티티’라고 칭해도 무방할 ‘한나’는 일급 스태프들이 만들어낸 시크한 스릴러다.
김용언 씨네21 기자 eun@cine21.com
무산일기
125로 시작되는 주민등록번호는 북한에서 남한으로 건너온 사람들에게 붙여주는 낙인과도 같은 숫자다. 탈북자라는 이유로 일자리를 얻기 힘든 승철(박정범 분)은 벽보를 붙이는 일로 근근이 먹고산다.
그의 유일한 낙은 주일마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숙영(강은진 분)을 만나는 것. 이창동 감독의 조감독 출신인 박정범 감독은 이 데뷔작으로 부산국제영화제·로테르담국제영화제·도빌국제영화제 등을 차례로 휩쓸었다.
안티 크라이스트
눈 오는 날 밤, 부부는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어린 아들이 문득 잠에서 깨어나 창가에서 눈을 바라보다 추락사한다.
아내(샤를로트 갱스부르 분)는 자식의 죽음을 방조했다는 슬픔과 죄책감으로 점점 병들고, 남편(윌렘 데포 분)은 그녀를 구원하기 위해 그들만의 에덴으로 향한다. 성경에 대한 도발적인 해석, 하드 코어와 하드 고어를 넘나드는 극단적인 표현이 거센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클로즈드 노트
여대생 카에(사와지리 에리카 분)는 이사 도중 전 주인이 놓고 간 노트 한 권을 발견한다. 그녀는 짝사랑하는 남자에게 고백할 용기를 내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중, 잊고 있던 노트를 펼쳐보게 된다.
노트의 전 주인인 초등학교 선생 이부키(다케우치 유코 분) 역시 카에와 비슷한 상황에서 고민하는 내용을 적어두었다. 카에는 점점 그 일기장과 자신의 삶을 동일시하기 시작한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유키사다 이사오의 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