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품질 최우선·발로 뛰는 영업…전국 시장을 장악하다

니치마켓 1인자들의 성공 비밀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승산이 낮을 수밖에 없다. 가능하면 싸우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손자병법’에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고 했다. 여기 모범 사례가 있다.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덤비지 않는 틈새시장을 파고들어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식품 중소기업들이 있다. 이들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대기업들이 주도하는 약육강식의 시장에서 ‘중소기업이 사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식품 대기업들의 식탐은 가공할만하다. 막대한 자금력과 조직력, 가격 파괴 등을 통해 전방위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 때문에 중소 식품 기업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한때 명성을 떨쳤던 중소기업들도 대부분 도산하거나 대기업에 인수됐다. 식품 기업 특성상 소비자들이 브랜드 인지도를 중시하는데다 자금력을 앞세운 대기업의 공세를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대기업의 파상 공세에도 불구하고 전국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있다. 이들 기업의 CEO들은 대기업이 뛰어들어 총력전을 펼치기에는 비교적 규모가 작고 영세하기 그지없는 틈새시장을 발굴해 전력을 기울여 경쟁 우위를 확보했다.

움트리의 김우택 사장은 고추냉이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1위 기업 CEO다. 일부 대기업이 도전장을 던졌지만 움트리의 벽을 넘지 못했다. 김 사장은 수입에 의존해 오던 고추냉이를 직접 재배했고 제품의 질을 높이는 한편 고급 일식당을 집중 공략하는 전략으로 선두에 올랐다.

한라식품의 이재한 사장은 다용도 액상 조미료로 신시장을 개척하며 역시 시장점유율 전국 1위를 달리고 있다. 수암의 이용진 사장은 묵이라는 단일 제품으로 전국을 제패했다. 2007년 묵 업계 최초로 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 인증을 받을 정도로 위생에 신경을 썼고, 제품의 질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면서 영세한 경쟁 업체들을 압도했다.

이들 3인의 CEO가 걸은 길은 절묘하다. 우선 대기업이 가기에는 길이 좁다. 덩치가 큰 사람이 좁은 미로를 걷듯이 불편하다. 경쟁 중소기업들의 역량은 고만고만하다. 같은 체급과의 경기에서는 노력하는 자의 승리 확률이 높다.

대기업 천하인 식품 시장에서 품질 최우선주의, 발로 뛰는 영업으로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며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위상을 확보한 중소기업 CEO 3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김우택 움트리 사장
“최고의 제품으로 승부했다”

움트리는 향신료와 장류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규모는 작지만 어지간한 외풍에는 끄떡도 하지 않을 정도로 탄탄하다. 해찬들·순창고추장 등 대표적인 장류 기업들이 대부분 대기업에 인수됐지만 움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연매출이 200억 원으로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적자를 낸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재무구조도 탄탄하다. 이 회사 김우택(63) 사장은 1977년 다 쓰러져가는 업체를 인수한 뒤 알토란같은 강소기업으로 키운 주인공이다.

대상·청정원 등 대기업이 판치는 장류 시장에서 움트리가 뿌리 깊은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고 있는 비결은 뭘까.

정답은 바로 고추냉이(와사비)다. 250여억 원의 국내 고추냉이 시장에서 40%에 가까운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다. 당당히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김 사장이 고추냉이 시장에 뛰어든 것은 1987년이다. 생선 요리에 빠지지 않는 천연 향신료인 고추냉이로 승부를 걸었다. 당시만 해도 시중에 유통되는 고추냉이는 일본 수입산이 대부분이었다. 국내 생산 업체도 있었지만 영세한데다 품질도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대기업들은 시장 규모가 너무 작아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김 사장은 “최고의 품질로 승부를 건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해외시장 공략도 가능해 보였다. 장류 수출을 위해 세계 각국을 돌아다녀보니 고추장과 김치보다 고추냉이의 인지도가 훨씬 높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예 직접 재배에 나섰다. 경기도 철원에 재배 단지를 마련했다. 김 사장은 원자재에서부터 생산까지 제조 공정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챙겼다. 최고의 품질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신념이 확고했다.

이는 고추냉이뿐만 아니다. 장류 제품도 천연 원료를 사용하고 공법도 정통 공법을 고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고추장은 기존에 밀가루와 밀쌀 등 전분질 원료만 사용하는 것과 달리 콩만을 사용하는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했다. 이는 발효 식품인 고추장의 깊은 맛을 내기 위한 것이다.

마케팅에서도 차별화를 꾀했다. 일반 소비자 시장을 파고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움트리’라는 브랜드 인지도가 낮아 제품력을 인정받기 어려웠다. 대신 고추냉이가 대량 소비되는 일식당을 집중 공략했다. 음식 전문가들인 일식당 주방장들이 맛을 보면 움트리의 고추냉이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움트리 고추냉이를 사용해 본 일식 주방장들이 입소문을 내면서 서서히 일식당 고추냉이 시장을 장악하게 된다.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하자 일반 유통에서도 서서히 기반을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김 사장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그는 고추냉이 시장이 생고추냉이 시장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내에선 시작 단계지만 이미 일본에선 생고추냉이 시장이 전체의 50%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움트리는 ‘움’과 ‘트리(Tree)’의 합성어다. ‘움이 돋기 시작하는 나무’라는 뜻이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지속적으로 발전해 식품 제조 업계를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는 것이 김 사장의 설명이다. 김 사장은 “중소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갖고 품질에 만전을 기하는 길밖에 없다”며 품질 최우선주의 철학을 전했다.


이재한 한라식품 사장
“트럭 몰고 전국을 다녔다”

‘한라식품’을 아는 소비자들은 별로 없다. 하지만 ‘한라 참치액’를 아는 이는 적지 않다. 한라 참치액은 요리에 관심이 많은 주부들 사이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한라참치액은 참치를 훈연, 발효해 훈연 참치로 만든 후 무·다시마·감초 등을 첨가해 만든 다용도 액상 조미료다. L-글루타민산나트륨(MSG)·보존료·화학색소 등을 전혀 넣지 않았다.

직원 50여 명의 중소기업인 한라식품이 이 천연 액상 조미료 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참치액으로 시장을 좁히면 ‘지존’으로 불러도 무방하다.

국내 조미료 시장을 들여다보면 천연 액상 조미료는 3세대에 속한다. 1960~1970년대 조미료의 대명사로 통했던 ‘미원’이 1세대고, 2세대는 1980년대 선을 보인 ‘다시다’를 꼽을 수 있다.

현재 조미료 시장은 약 1600억 원 규모로 알려져 있는데, 이 중 분말 시장이 1400억 원, 천연 액상 조미료 시장이 200억 원이다. 참치액 조미료 시장은 약 50억 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한라식품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동원F&B 등 대기업과 이마트 등 대형 마트가 참치액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한라식품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한라식품을 액상 조미료 시장의 강자로 만든 이가 바로 이재한(38) 사장이다. 이 사장은 부친이 세운 회사를 물려받은 2세 경영인이다. 1999년 말단 사원으로 입사해 생산·영업 등을 두루 거치며 참치액 시장을 키운 주인공이다.

이 사장이 참치액 시장을 개척한 이유는 이렇다. 한라식품은 원래 라면 스프나 우동 등에 들어가는 훈연 참치 생산 업체로 출발했다. 대다수 제품은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방식으로 대기업에 납품했다.

대기업의 속박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았다. 더구나 일본 훈연 참치는 일본 음식으로 한국 고유의 음식에 접목하는데 근본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전통 음식에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조미료를 연구하다가 참치액을 개발하게 됐다.

제품 개발에 3년이 소요됐다. 이 사장은 “훈연 참치와 다시마·무 등 3대 재료를 이용해 제품 개발에 들어갔다”며 “이후 잡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인삼 추출액을 사용하는 등 추가 재료를 이용하면서 개발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제품은 개발했지만 판로가 없었다. 그렇다고 광고비를 펑펑 쓸 여력도 없었다. 할 수 없이 이 사장이 직접 제품을 트럭에 싣고 홍보에 나섰다. 아파트 부녀회를 찾아다니며 시식회를 열었다. 푸대접도 받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대형 마트도 집중 공략했다. 처음에는 담당자를 만나는 것조차 어려웠다. 이 사장은 “가서 부딪치고, 안 되면 또 부딪쳤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승부수는 시식회였다. 제품력에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시식회로 높은 벽을 무너뜨렸다. 한 대형 마트를 뚫을 때의 일이다. 수십 번을 찾아갔지만 제품을 넣지 못한 이 사장은 마트 측에 이색 제안을 했다.

900ml 한 병으로 우동 100인 분을 만들어 제공할 테니 직원들이 맛을 보고 판단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한번 해보라”는 답을 들은 그는 우동 50인분, 메밀 소바 50인분을 만들어 직원들에게 야식으로 제공했다. 맛을 본 직원들이 하나같이 “맛있다”는 반응을 보인 덕분에 입점할 수 있었다.

참치액이 인기를 끌면서 일부 대기업들이 뛰어들었지만 한라참치액을 넘어서지 못한 이유는 뭘까. 이 사장은 “(대기업들이) 제품력을 따라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라식품은 태국 현지에서 잡은 싱싱한 참치를 바로 공장으로 옮겨와 제품을 만든다.

더구나 단일 품목으로 수작업을 통해 모든 정성을 쏟는 반면 대기업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대기업은 액상 조미료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데다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섬세한 맛을 내기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 사장은 참치액 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사람이다. 대형 마트에서 프라이빗 브랜드(PB) 납품을 제안했지만 끝내 듣지 않았다. 중소기업이 대형 마트의 제안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일부 대기업은 인수·합병(M&A)을 제안했지만 이 또한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 사장은 “10여 년을 피와 땀으로 일군 사업인데 어떻게 (대기업에)넘길 수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사장의 목표는 단순하다. 매년 신제품을 내놓고 동네 슈퍼마켓까지 제품을 진열하는 것이다. “반품을 받더라도 제품이 없어서 못 샀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이 사장의 얘기다.


이용진 수암 사장
“웰빙 트렌드 파고들었다”

빼어날 수(秀), 바위 암(岩)자를 쓰는 (주)수암은 묵 전문 브랜드 ‘산해찬’으로 전국 묵 시장을 제패한 챔피언이다. 전국 묵 시장 규모는 약 200억 원 정도로 이 중 30%를 산해찬이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회사 이용진(49) 사장은 1999년 묵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전에는 음료·통조림 유통을 했던 이 사장이 갑자기 묵 공장을 설립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유통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업이 수월할 것으로 예상했다. 어떤 제품이라도 유통망을 개척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컸다. 따라서 제품력만 갖추면 묵 제품도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둘째, 대기업이 뛰어들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묵은 두부·콩나물 등과 달리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제품”이라며 “시식 행사 등 대면 판매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시장규모도 작고 대면 판매가 필수적인 업종인데 대기업이 전면적으로 뛰어들 수 있겠느냐는 설명이다.

실제로 자체적으로 묵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다가 실패한 대기업들이 적지 않다. 시작은 미약했다. 그가 묵 사업에 뛰어들 때만 해도 가내수공업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1999년 경기도 안산에서 공장을 세우고 묵을 생산했는데 공장 직원이 겨우 4~5명에 불과할 정도로 영세했다.

그러나 품질만은 최우선시했다. 원자재도 최고급을 고집했다. 물암·상수리·떡재롱이·쌀재롱이 등 4개의 도토리 종류 중 가장 비싸다는 쌀재롱이로 묵을 만들었다. 쌀재롱이는 물암·상수리보다 3배 이상 비싸다.

품질을 높이면서 가격도 기존 중소기업 제품보다 3배 이상 높게 받았다. 대기업 브랜드 제품과 비교해서도 20~30% 비싸게 책정했다. 처음부터 고급화 전략을 고집했던 것이다. 웰빙 트렌드도 주목했다. 클로렐라묵·블루베리묵·검정깨묵·올방개묵 등 기능성 제품 개발에도 적극 나섰다.

특히 올방개묵은 수암이 최초로 내놓은 제품이다. 이처럼 몸에 좋고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되는 저칼로리 묵 제품이 소비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산해찬 브랜드는 웰빙 제품으로 자리 잡게 됐다.

마케팅 전략은 따로 없었다. 오직 시식 행사에 올인했다. 이 사장은 “소비자들이 직접 맛을 보면 산해찬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굳게 믿었다”고 말했다. 대형 마트 입점도 시식 프로모션으로 뚫었다.

그의 예상대로 한 번 맛을 본 소비자들은 대부분 재구매할 정도로 제품력을 인정받았다. 이 과정에서 이 사장은 전국 백화점과 대형 마트를 다 돌아다닐 정도로 발품을 팔았다.

1997년에는 HACCP 인증을 받기 위해 30억 원을 들여 공장도 다시 설립했다. 묵 사업을 시작한 첫해인 1999년 매출은 3억 원, 다음해인 2000년에 15억 원으로 늘어났고 지난해에는 85억 원을 올렸다. 이 사장은 “다른 것은 다 버려도 품질만은 고수했다”며 “중소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고의 품질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취재=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 사진= 서범세·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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