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지갑을 열어라] ‘내가 어디서 무얼 하는지 모르게 하라’

일반인은 모르는 부자들의 마인드

국내 굴지의 그룹 총수의 부인 A 씨가 스파 서비스를 받기 위해 서울 시내 한 호텔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녀가 타고 있는 차는 호텔 입구를 지나쳐 일반인이 모르는 작은 출입구 앞에 선다. 마침 기다리고 있던 직원이 문을 열어주며 그녀를 안내한다.

아무도 없는 계단을 오른 뒤 1인실 스파에 들어선다. 그녀를 전담하는 직원은 간단한 문진과 체중계, 체지방 측정기, 혈압기 등으로 최근 그녀의 몸 상태를 측정한다. “다리 근육이 좀 뭉친 것 같아.”

이날 그녀는 다리 부분에 특화된 마사지 서비스를 받았다. 고가의 로션과 오일로 피부 관리를 받는 것은 물론이다. 2시간 뒤 그녀는 다시 전용 통로를 이용해 유유히 호텔을 빠져나갔다.

대한민국 최고의 상류층을 위한 이른바 ‘귀족 마케팅’의 넘버 원 철칙은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아무도 모르게 하라’라는 것이다. 일거수일투족이 언론과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이들이다 보니 아무리 많은 돈을 들이더라도 일반인들에게 노출되는 스트레스를 최대한 줄이도록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초특급 VIP들의 세계는 점점 더 일반인들의 세계와 단절된 ‘그들만의 세계’가 되어 간다.


일반인 노출 꺼리는 ‘그들만의 세계’

서울 밀레니엄 힐튼 호텔에 들어선 스위스퍼펙션(Swiss Perfection)의 스파는 입점 단계부터 고객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프라이빗’ 출구를 별도로 만들었다. 여타의 호텔에 입점한 스파는 로비를 통해 들어가야 하지만 그러면 일반인들의 시선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

피부 관리를 받는 곳도 철저히 1인실만 운영된다. 입구에서부터 마사지 룸까지 갈 때, 서비스를 받고 출구로 나올 때 다른 고객과 마주치지 않도록 에스코트 서비스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 스파의 연간 회원권은 3000만 원에 육박한다. 스위스의 명품 화장품 업체인 스위스퍼펙션의 전용 로션과 오일을 쓴다고는 하지만 그보다 프라이버시를 철저하게 유지해 주는 프라이빗 서비스 때문에 국내 대기업 회장 부인, 고위 공무원의 부인 등이 애용하고 있다.

이들 외에도 일반인의 시선을 피해야 하는 연예인들의 문의도 많이 오지만 연예인들은 오히려 이들 업체들에 기피 대상이다. 그 이유는 ‘사모님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좋은 이미지의 연예인은 고객으로 받아들인다고.

스위스퍼펙션의 스위스 몽뚜르 본사에는 이미 엘리자베스 여왕,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부부가 매년 방문하고 있고 오드리 헵번, 찰리 채플린이 생전에 애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국내에는 1999년 오픈하면서 유명 인사들의 관심을 받았다.

이런 브랜드들은 대중적 이미지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인을 상대로 하는 광고나 홍보를 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상류층에 타기팅된 마케팅을 하는데, VIP 중에서도 오피니언 리더에 해당하는 고객에게서 좋은 평판을 얻는 것이 관건이다.

예를 들어 ‘모 그룹 회장 부인이 가는 곳’으로 알려지면 그를 추종하는 커뮤니티의 관심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대중이 VIP를 추종하듯, VIP 내에서도 급수에 따라 추종 마케팅이 벌어지는 것이다.

귀족 마케팅의 또 다른 원칙은 ‘오더 메이드(order made: 개인별 맞춤 서비스)’다. VIP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누군가가 나와 똑같은 옷을 입은 것, 나와 똑같은 가방을 든 것’이기 때문이다.

샤넬과 불가리 등 대중화된 명품 업체들이라고 할지라도 VVIP를 위한 오더 메이드 제품을 만든다. 이때 제품 주문은 일반적인 숍이 아니라 호텔 스위트룸을 빌려 고객을 초청한다. 본사에서 디자이너가 직접 비행기를 타고 와 직접 고객으로부터 상담과 주문을 받는 시스템이다.

제품 가격은 물론 억대를 넘는다. 한 업계 관계자는 “불가리는 해외 디자이너가 직접 호텔에서 고객을 만나 원석의 색이나 크기를 골라주고 디자인까지 주문받는다. 3억~4억 원짜리 8캐럿 다이아몬드 반지가 이렇게 팔리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구매자의 이니셜이 새겨진 오더 메이드 명품은 금방 발각되기 때문에 도난의 우려마저 적은 편이다.

최고급 명품 자동차들도 오더 메이드로 주문을 받는다.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의 후속 기종으로 올해 선을 보인 ‘아벤타도르’는 가죽의 종류와 색상뿐만 아니라 바느질한 실(stitch)의 색상까지 선택할 수 있다.

심지어 외장색도 기본 색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객이 원하는 색을 만들어서라도 칠해 줄 정도다. 이 또한 타인과 똑같은 것을 갖기 싫어하는 VVIP들의 취향을 고려한 것이다.

오더 메이드가 아니더라도 이에 준하는 ‘한정판(limited edition)’도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최근 뉴욕을 갔다 온 패션 업계 종사자는 “평범한 시장 아줌마처럼 보이는 한국 여성 주위를 명품 업체 직원 2명이 에스코트하고 있기에 ‘도대체 뭔가’하고 자세히 봤더니 그 업체에서 한국에 딱 하나만 출시한 한정판 백(bag)을 그녀가 들고 있더라”는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한정판을 구매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프리미엄인 것이다.

따라서 이들 VVIP들은 백화점을 갈 이유가 없다. 진짜 고가의 초특급 명품은 백화점에 없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 명품이 발달한 나라에서의 마케팅은 철저히 ‘부티크(boutique) 문화’다.

하루 종일 지켜봐도 손님 한두 명이나 올까 싶은 가게들이 유럽에 많은 이유다. 그러나 한국도 점차 이런 부티크 문화가 도입되고 있다. 옷은 물론이고 보석이나 가방 외에도 화장품이나 향수도 오더 메이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해외 본사의 조향사가 직접 방문해 고객이 원하는 향을 직접 만들어 내는 것이다.

타인이 같은 ‘백’ 드는 것 극도로 싫어해

타인에게 노출되기 싫어하는 VVIP들의 특성은 구매 형태에서도 차별화를 이룬다. 수억 원대의 명품을 사더라도 철저하게 현금으로만 구매하는 것이 특징이다. ‘사과상자’가 필요한 만큼 본인이 직접 들고 오지 않고 추후에 비서를 시켜 여행 가방에 담아 오는 식이다.

지난해 총리로 지명된 한 후보의 신용카드 사용액이 0원인 것이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었는데, 카드를 만들면 개인 정보가 유출되고 구매 내역이 공개될 수도 있으며, 또 다른 여타의 이유로 VVIP들은 신용카드 사용을 꺼린다.

수억 원대를 호가하는 초특급 명품인 만큼 제품의 관리와 수리도 일반인이 상상하는 이상의 일이 벌어진다. 최근 SBS 드라마 ‘마이더스’에서 김희애가 입고 나온 모피코트로 유명한 펜디(Fendi) 모피는 10억 원이 넘는 제품도 있다.

만약 이 코트를 세탁해야 한다면 어디에 맡겨야 할까. 국내에는 신라호텔·하얏트호텔 등에 세탁 장인이 있어 주로 이곳에 맡긴다고 전해진다. 어느 날 펜디의 모피코트를 산 고객이 세탁을 의뢰했는데 시내 호텔 세탁소에서 “이건 우리가 세탁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잘못되면 수억 원을 물어내야 하는 부담 때문이었다.

고객이 “그럼 본사에 보내 세탁해 달라”고 요구하자 난감해진 국내 판매처가 본사에 의뢰한 결과 “한국에 이탈리아제 ‘퍼크(Perc)’ 머신이 있는 세탁소가 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회신이 왔다.

전국에 수배한 결과 서울의 ‘크린웰’이라는 명품 전문 세탁 업체가 그 기계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 확인돼 결국 국내에서 세탁이 가능했다. 기계 자체도 희귀하지만 고가의 수입산 기름을 단 1회만 사용해 세탁할 정도로 고가 명품은 관리가 까다롭다. 크린웰에 따르면 한 국내 대기업 회장은 잠옷, 침구류까지 맡기는데 그것들이 모두 세탁이 까다로운 명품이었다고 한다.

여행을 가더라도 이들은 대중을 상대로 하는 여행사를 이용하지 않는다. VVIP를 위한 별도의 여행 업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도 일반인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등 최고급 차로 픽업해 이동하고 쇼핑도 백화점보다 부티크 숍 위주로 간다. 심지어 명품 업체의 유명 디자이너들이 직접 나와 식사를 제공하기도 한다.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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