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지갑을 열어라] 단기 이익 ‘No’…타깃층 세분화 ‘필수’

‘핵심 고객’ 잡기 전쟁서 이기는 법

2010년의 경제 성적표를 보면 불황의 늪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행의 집계에 따르면 2010년 국민 1인당 국민소득은 3년 만에 다시 2만 달러를 돌파했으며 경제성장률 또한 6.1% 성장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든다.

주력 품목의 수출도 증가하고 있고 일부 대기업은 사상 최고의 매출을 기록하는 등 지표로만 보면 경기는 완연히 상승 국면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반 대중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좋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물가 상승의 압박이나 대기업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의 어려움, 대형 마트로 인한 서민 경제를 대변하는 중소형 자영업자들의 몰락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하지만 소득과 소비의 양극화에 따른 소비 패턴의 변화와 스마트 라이프의 정착과 같은 거대한 트렌드, 그리고 글로벌 경제의 동조화로 아프리카 민주 혁명, 일본 지진 같은 해외 변수의 영향 등이 경제적인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귀족 마케팅의 명분과 당위성

일반적으로 귀족 마케팅은 경기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다. 이 때문에 불황에 강한 것을 가장 중요한 강점으로 꼽는다. 또한 매출 상위 20%가 80%의 매출을 일으킨다는 파레토의 법칙으로 볼 때 상위 고객의 점유율을 높임으로써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명품 산업은 두 자릿수의 성장을 하고 있고 장기적으로 하위 계층은 상위 계층의 문화를 모방하기 때문에 판매 확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귀족 마케팅의 명분과 당위성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2000년대 초반부터 귀족 마케팅, 명품 마케팅을 표방한 상품과 서비스가 우후죽순 격으로 등장했지만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고 할 수 있다. 귀족 마케팅은 많은 시간 고객과 신뢰를 쌓아야 하는데 우리나라 기업은 단기간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웬만한 자본력과 뚝심이 아니고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흔히 귀족 마케팅을 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명품에 비유하는데 지난 10여 년간 명품에 대한 고객의 관념에도 변화가 생겼다. 명품 소비에 관한 인식이 과거에는 명품을 남에게 과시하고 나의 이미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구매했다면 현재는 자신의 형편에 맞춰 개성을 표현하고 격조 높은 문화를 누리기 위해 구매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가격 비교를 통해 보다 저렴하게 생활필수품을 구매하고 자신이 좋아하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물품에 대해서는 정서적 만족감을 얻기 위해 기꺼이 많은 돈을 지불하는 소비의 양극화가 일반화되고 있다.

이러한 개념은 명품에 대한 정보가 일반화되면서 일반 계층의 사치품 구매에 대한 명분과 구매 가능성을 높이는 메커니즘으로 활용됐다. 그만큼 명품이 대중화됐고 명품을 즐기는 소비 패턴이 과거에 비해 성숙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시장 상황에서 단순히 소득 상위 1%를 대상으로 하는 상품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최근의 귀족 마케팅은 상위 계층뿐만 아니라 상위 고객을 적극적으로 모방하려는 대다수의 계층을 대상으로 일종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분화되고 있다.

첫째, 프레스티지 마케팅(Prestige marketing)은 상위 1%를 대상으로 기존의 명품 브랜드가 더욱 더 특별한 가치를 만들어 희소성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전략으로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춤형으로 제공되는 최고가의 테일러 메이드(Tailor made) 서비스나 유명한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한 한정 생산(Limited edition) 등의 형태를 보인다.

예를 들면 남성복 슈트 브랜드인 제냐(Zegna)의 여러 제품 중 이탈리아 장인이 직접 방문해 진행하는 수미주라(Sumizura) 라인은 일반 기성 제품에 비해 많게는 10배 이상의 가격 차이를 보인다. 또한 카테고리 내에서 최고가의 제품 역시 경쟁적으로 시장에 등장하고 있다.

차병원그룹의 차움 멤버십은 개인이 약 1억7000만 원의 보증금을 내고 멤버에 가입하면 줄기세포 보관 및 맞춤형 건강관리를 원스톱으로 제공한다. 한화건설의 갤러리아포레는 한 채에 최소 27억 원에서 최고 52억 원대의 주상복합 아파트를 분양하고 있다. 이러한 상품은 명품이 대중화되는 시기에 부유층에게 보다 특별한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지속적으로 희소성을 강조하게 된다.


고객 계층을 분화하는 최근 마케팅 트렌드

둘째, 프리미엄 마케팅(Premium marketing)으로 구매력이 높은 상위 20%를 대상으로 한다. 명품의 대중화로 일반 대중을 흡수하기 위한 프리미엄 마케팅은 럭셔리 제품의 세컨드 라인으로 대상 연령과 가격을 낮춘 별도 브랜드를 출시하거나 일반 제품 중에서 특별한 가치를 더해 고가 라인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계적인 자동차 그룹 폭스바겐은 대중적인 브랜드로는 폭스바겐을, 프리미엄 브랜드로는 아우디를, 럭셔리 라인으로는 벤틀리·포르쉐·부가티·람보르기니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더욱이 아우디와 폭스바겐의 일부 모델은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차체를 공유하고 있지만 브랜드의 이미지는 철저하게 별도로 관리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의 럭셔리 버전을 2010년 유럽의 부자박람회(Millionaire Fair)에서 발표했다. 부유층을 한정적으로 초청한 행사에서 프리미엄의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셋째, 칩시크 전략(Cheap-chic strategy)은 상위 70%를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이다. 단순화된 가치의 차별화를 통해 가격이 저렴하지만 스타일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패스트 패션으로 대변되는 자라(Zara)·H&M·유니클로와 같은 브랜드의 매출 성장률은 기존의 명품 브랜드에 비해 월등히 높다. 이들은 사업 초기에 가격 경쟁력만 갖췄지만 이후 디자인·품질·브랜드·유통 등을 강화하고 유명 디자이너와의 협업(Collaboration)이나 첨단 소재의 도입 등을 통해 가격에 비해 높은 가치를 고객에게 주면서 성장했다.

2003년에 설립된 저가 화장픔 유통 브랜드인 더페이스샵은 업계 매출 3위까지 성장했지만 LG생활건강에 2010년 인수·합병됐고, 2005년에는 국내에도 저가 항공사가 설립됐는데, 독립 항공사도 있지만 대한항공은 진에어를 아시아나는 부산항공을 설립하는 등 메이저 프리미엄 브랜드의 수직 계열 확장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 2008년 미국에서 촉발된 금융 위기는 큰 충격이었다. 세계의 1등 국가 미국의 몰락은 시장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기존 경제 질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는 시발점이 됐다.

심각한 자산 디플레이션을 경험한 소비자는 합리적인 가치 소비를 통해 적극적인 위기관리 모드로 들어가게 됐다. 자산 비중이 부동산이 많은 국내의 부유층 역시 보다 신중하게 합리적인 소비 경향을 보이고 있다.

고급 주택이나 고가의 골프 회원권은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보다 신중하게 구매를 결정하지만 잔존 가치가 정확하게 매겨지는 수입 자동차나 보석·시계 등의 구매는 더 활성화되고 있다.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과 안목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지갑을 연다. 나를 표현하기 위해 특정 브랜드가 내포하고 있는 고유의 이미지와 스타일을 구매해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벤츠를 타는 사람은 전통적인 가치를, BMW·재규어·벤틀리를 타는 사람은 역동적이고 스포츠를 즐기는 도전적인 가치를, 아우디·렉서스를 타는 사람은 합리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적인 귀족 마케팅을 위해서는 브랜드가 고객에게 줄 수 있는 특별한 가치를 어떻게 하면 뚜렷하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이기훈 SERI 사이버포럼 귀족마케팅연구회 운영자 lascana@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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