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참모들의 잇단 기밀 사항 ‘발설’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지난 3월 말 출입 기자들 몇 명과 점심을 같이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우리나라가 심혈을 기울여 개발해 수출을 추진해 온 T-50 고등훈련기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이르면 다음 주 우리나라를 고등훈련기 우선협상대상자로 정하는 인도네시아 국방부 장관 명의의 편지가 T-50을 생산하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도착할 예정이다. T-50의 인도네시아 수출이 성사되면 미국 시장도 본격 겨냥할 것”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청와대는 “기사화되면 우리나라가 우선협상대상자에서 제외될 수 있다. 아직 확답을 받지 못했다”라며 보도 자제 요청을 했지만 때는 늦었다. 국가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지만 T-50의 해외 첫 수출이 가시화되는 기사거리를 놓칠 수 없었다.

그 며칠 전 또 다른 고위 참모는 군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군의 합동성 강화를 골자로 하는 ‘국방개혁 307계획’에 반대하는 일부 현역 및 예비역 장성들을 겨냥했다. 그는 “(군)일부에서 예비역 장성 등을 통해 자신의 얘기를 대신하려는 게 아닌가, 의심을 사는 대목이 있어 주의 깊게 보고 있다.

국방 개혁과 관련해 국방부 내 누구도 다른 건의를 하거나 지연하거나 방해하는 세력은 그 자리에서 인사 조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역이 반발하면 ‘항명’으로 간주하겠다고 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발언은 내부적으로 조율되지 않았고 이명박 대통령과도 교감을 갖고 나온 게 아니었다. 그의 이 한마디로 청와대와 군이 자칫 정면으로 맞서는 국면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판단한 청와대는 수습에 나섰다.

이 대통령은 “국방부가 장관을 중심으로 국방 개혁을 잘해 나갈 것으로 본다. 청와대는 이를 적극 뒷받침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은 국방 개혁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시종일관 김관진 장관에게 대단한 신뢰와 기대를 갖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김 장관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다.

집권 4년 차 맞아 이래저래 뒤숭숭

28일 청와대에서 이명박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2011.2.28/청와대제공
이 두 사안에 대해 청와대 내부에선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임태희 대통령 실장이 ‘항명’ 논란과 관련, 해명하기 위해 기자실을 직접 찾으려고 했던 데서 이런 분위기를 알 수 있다.

고위 참모들이 ‘기밀 사항’에 해당하는 것까지 발설한 것은 기강 해이를 넘어 정권 말 레임덕의 징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일선 기관이 청와대에 정면으로 반발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법인과 단체의 정치자금 지정 기탁을 허용하는 내용의 정치자금법 개정 검토안에 청와대가 ‘개악’, ‘청부 입법’이란 표현을 쓰며 반대하자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인데 청와대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표현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예비역 장성들은 청와대 관계자의 ‘항명’ 발언과 관련, 청와대의 진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군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다. 군복 입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할망정 그거(군복) 벗기를 겁낼 현역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라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동남권 신공항이 백지화되자 여당 일부 의원들은 “대통령이 당을 떠나라”라고 요구했다. 더욱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에 대해 “국민과 약속을 어겨 유감스럽다”라며 “지금 당장 경제성이 없더라도 동남권 신공항은 필요한 것이라고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는 정권 출범 이후에도 한반도 대운하와 세종시 수정안 등 굵직한 국책 사업을 두고 갈등을 빚었다. 현 정부의 주요 정책이 박 전 대표의 반대로 좌절됐다. 그러다가 2010년 8월 회동 이후 두 사람 간 화해 무드가 조성됐지만 7개월 만에 동남권 신공항으로 또다시 대립하게 됐다.

한반도 대운하와 세종시 수정안이 좌절된데 이어 과학비즈니스벨트 충청 유치 원점 재검토, 동남권 신공항의 백지화에 따른 공약 파기 논란 등이 겹쳐 청와대는 여전히 사방에서 공격을 받고 있다. 집권 4년 차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청와대는 이래저래 뒤숭숭하다.

홍영식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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