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로 이탈’ 지방 공항의 진실

동남권 신공항 계획이 결국 백지화로 결론 났다. 경제성 부족이 가장 큰 이유다. 이는 현재 운영 중인 지방 공항들이 대부분 안고 있는 공통된 문제이기도 하다.

국내 14개 지방 공항 중 김포·제주·김해를 제외한 11개 공항이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5년간만 따져도 누적 적자가 2122억 원에 달한다.

건설비로 수천억 원을 날린 인적이 끊긴 ‘유령 공항’은 해외 언론에 ‘올해의 황당 뉴스’로 소개될 정도다. 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거나 책임지지 않는다. 뚜렷한 대안도 없다. 그런데도 신공항 요구는 끊이지 않는다.


공항 수로만 보면 한국은 이미 항공 선진국이다. 일찍부터 항공교통이 발달한 미국은 현재 400여 개의 지방 공항을 갖고 있다. 반면 1인당 국민소득이 낮고 땅 넓이도 미국의 98분의 1에 불과한 국내에 지방 공항이 14개나 들어서 있다. 미국은 2만4567㎢, 한국은 7158㎢당 1개꼴이다. 단위면적당으로 계산해 한국의 지방 공항이 미국보다 3.4배나 많은 셈이다.

많은 지방자지단체들이 공항을 지역 발전의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지역 공항이 없는 지자체는 수도권(경기·인천)이나 수도권에 인접해 자체 공항이 불필요한 충남·대전뿐이다. 나머지 12개 시·도 가운데 전남(무안·여수)과 강원(양양·원주)이 각각 두 개, 나머지는 한 개씩의 지방 공항을 갖고 있다.

전국을 촘촘하게 연결한 지방 공항 네트워크는 그 자체만 보면 흠잡을 데가 없어 보인다. 유일하지만 치명적인 약점은 경제성이다. 현재 14개 지방 공항 중 수익을 내는 곳은 김포·제주·김해공항 등 3곳뿐이다.

나머지 11개 공항은 매년 10억~70억 원대의 적자만 내고 있다. 지난해 14개 지방 공항을 운영하는 한국공항공사가 국회 국토해양위원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5년간 지방 공항의 누적 적자액은 2122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에 공항운영권 넘겨주는 방안 검토해야

2009년 감사원 감사 결과는 더 충격적이다. 1년 내내 공항을 운영해도 직원 월급조차 벌지 못하는 곳이 수두룩했기 때문이다. 2008년 울산·여수·사천·포항·군산·원주·청주·양양·무안 등 9개 공항의 운영 수익은 인건비를 훨씬 밑돌았다.

양양국제공항은 지방 공항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3567억 원을 투입해 연간 여객 수용 능력 317만 명 규모의 국제공항으로 지어진 이 공항은 지난 2002년 문을 열었다. 기존 속초공항과 강릉공항의 수요를 흡수해 ‘영동권 신공항’으로 안착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런 기대는 개항 첫해부터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영동고속도로 4차로 확장, 미시령터널 개통, 국도 44호선 확장 등 도로 사정이 크게 개선되면서 이 지역 항공 수요가 급감했다. 지난 9년간 양양국제공항의 누적 적자만 740억 원에 이른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첫째는 사업 타당성 검토가 엉터리였기 때문이다. 이는 감사원 감사에서 여러 차례 지적된 문제다. 무안국제공항은 공항 임대 수익 등을 변칙적으로 편익 항목에 포함해 0.49에 그친 ‘비용 대비 편익 비율’을 1.49까지 끌어올려 경제성을 부풀렸다. 고속철도(KTX) 개통 영향을 의도적으로 축소 평가해 수요 예측을 조작한 곳도 있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연합 국책사업감시단 국장은 “신공항은 당초 중·장기 계획에 포함된 것은 별로 없고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선거용으로 내놓은 것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선거 공약으로 출발하다 보니 타당성 검토를 맡은 전문가들도 정치권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김 국장은 “정치인이 공약으로 제안할 수는 있지만 실제 시행은 다른 문제”라며 “국책 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책임질 수 있는 별도의 독립적인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방 공항을 추진할 때는 지역 여론이 똘똘 뭉치지만 일단 완공되면 적자가 나든 말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지역 공항이 수요 부족으로 천문학적인 적자를 내도 한국공항공사가 모든 부담을 떠안기 때문이다. 이영혁 한국항공대 교수는 “공항공사는 적자 공항의 문을 닫는 것이 유리하지만 정치권과 지역 반발 때문에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허종 한국항공정책연구소 소장은 “지방 공항의 운영권을 아예 지방에 넘겨주자”고 제안한다. 지역에 꼭 필요한 공항이라면 자기 책임으로 운영하라는 것이다. 허 소장은 “무한정 중앙에만 기댈 게 아니라 지방 스스로 경영 개선 등 다양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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