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용 재원 총동원’…아이디어 백출

대지진 복구비 어떻게

중요한 건 이제 재건 작업이다. 일본 경제는 천재와 인재가 겹친 충격 여파로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향후 그 영향은 보다 복잡·다양화될 수 있다. 전후 최대의 경제 쇼크라는 평가에 걸맞게 아직은 불확실한 게 많다.

스톡(stock)의 손실은 10조 엔의 시설 붕괴(주택·공장·사회자본 등)가 있었던 1995년 고베대지진보다 더 클 게 확실시된다. 플로(flow)와 관련된 경제활동도 물류 장벽과 심리 압박 등으로 힘들어질 전망이다.

더욱이 이번엔 원전 사고까지 발생해 불확실성을 높였다. 올 상반기 마이너스 성장을 점치는 시각도 생겨났다. 그만큼 향후의 대응 전략이 일본 경제의 향방을 좌우하는 중대 변수가 됐다.

자금 마련 여력 별로 없어

벌써부터 재건 작업과 관련된 시나리오가 하나둘 소개된다. 공통점은 정상 궤도에서의 이탈 범위(충격)가 넓었던 만큼 재건 효과도 클 것이란 기대감이다. 전후 최대의 위기는 전후 최대의 기회와 같은 말인 까닭에서다.

손실 금액이 커질수록 회복을 위한 투자 규모는 자연스레 늘어난다. 재건 방향은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가 채택될 전망이다. 1930년대 대공황을 이겨낸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대규모 공공 투자 정책과 유사한 정책 채용이 그렇다.

<YONHAP PHOTO-1321> People who were left inside a building ride on a container as they are rescued in Kesennuma, northern Japan Saturday, March 12, 2011 after Japan's biggest recorded earthquake slammed into its eastern coast Friday. (AP Photo/Kyodo News) MANDATORY CREDIT, NO LICENSING ALLOWED IN CHINA, HONG KONG, JAPAN, SOUTH KOREA AND FRANCE/2011-03-12 10:48:37/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게다가 부흥 과제는 일본 경제에 변신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주장도 있다. 고미네 다카오 일본경제연구센터 연구 고문은 “이제부터가 중요한 국면으로 원활한 복구 추진뿐만 아니라 새로운 일본 경제를 잉태하는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때 중요한 변수는 세 가지다. 부흥 재원, 지역 정비, 사회자본(Social Capital) 등이다.

관건은 부흥 재원이다. 가뜩이나 부족한 재원 고갈을 극복할 새로운 자금줄을 확보할 필요성이 있다. 실제 재정 확보와 관련해선 다양한 목소리가 나온다. 부족한 재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의 문제다.

먼저 민주당의 대선 공약이었던 복지 재원을 돌려 재건 자금으로 쓰자는 주장이 있다. 아동 수당, 고속도로 무료화, 고교 무상화 등의 경비가 그렇다. 어차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지출 항목이었기에 이번에 대폭 갈아타자는 얘기다. 실리와 함께 대의명분이 장점이다. 시간이 없기에 서둘러 전용한 뒤 추후의 보정 예산으로 버티자는 계산이다.

지역 정비를 통해 새로운 거주 환경을 만드는 것도 재건 작업의 승패를 가를 주요 이슈다. 이번 대형 재난에서 확인된 것처럼 안전·효율적인 도시 건설의 필요성이 한층 높아졌다. 자연재해의 반복 피해를 줄일 근본적인 방지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듯 일본은 고령화로 거주 환경의 성격이 크게 변했다. 이 때문에 이번 복구 과정의 핵심 방향을 지방 지역의 성장 전략에 맞춰 일석이조의 장기·구조적 자생 능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 수도권으로의 집중을 막을 지역 부활 시나리오를 재건 과정에 넣으면 자연스러운 수요 회복과 맞물려 지역 상권의 맞춤별 활력 재생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본 고유의 사회자본을 되살리는 것도 필요한 과제다. 사회자본은 생활 주체의 협조 체제를 통해 사회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필요한 신뢰·규범·네트워크 등을 일컫는다. 일종의 사회 조직이자 무형 스톡이다.

이를 활성화하면 경제활동은 물론 커뮤니티 형성에 상당 부분 기여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일본의 사회자본은 이미 탄탄하다. 지진 이후 화제를 모은 냉정하고 규범적인 재난 대응이 대표 사례다. 이를 부흥 과정에서 한층 되살린다면 새로운 성장 에너지가 될 수 있다.

사회자본이 1990년대 이후 잃어버린 일본의 자신감과 적극성을 되찾을 둘도 없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위기 이후의 단결이 갖는 긍정적 의미다. 또 경제란 게 심리라면 그간의 폐색감(閉塞感)이 옅어지는 것 자체가 일본엔 장기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눈앞의 장애 돌파다. 재원 확보가 그렇다. 현재 일본 정부로선 재정 여력이 바닥 상태다. 자금 마련 여력 자체가 없다. 오죽하면 엔화를 찍어 뿌리는 발권력 동원 카드가 힘을 얻을 정도다.

실제 이 방안은 현실성이 높다. 부흥국채(10조 엔)를 발행하면 이를 중앙은행이 인수할 계획인데, 이때 돈줄은 돈을 찍어내는 발권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애초 계획처럼 예산 전용도 필요 자금 전액을 조달할 수 없다는 한계에 직면했다.

부흥국채도 문제가 적지 않다. 시장에 쏟아내면 물량 증가로 국채 가격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추후 변제 부담도 크기 때문이다. 국가 부채가 1000조 엔이란 점도 부담거리다. 그래서 선택한 게 발권력이다. 통화량이 늘어나 물가 상승 우려가 높지만 아직은 일본 경제가 인플레이션 압박이 낮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YONHAP PHOTO-1976> <日 강진> 폐허 속 구조되는 남성 (게센누마 교도=연합뉴스) 일본 동북부 지방을 강타한 지진으로 피해가 확산되는 가운데 12일 미야기현 게센누마시의 고립된 주택에 갇힌 한 남성이 육상자위대 대원들로부터 구조되고 있다. 2011.3.12 kane@yna.co.kr/2011-03-12 16:37:27/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복지·연금 재원 쓰자는 목소리도 나와

한편에선 비교적 넉넉한 최후 곳간인 연금 재원을 활용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물론 현실성은 낮다. 연금의 기본 취지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경계감이 높다. 같은 맥락에서 일본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내다 팔아 복구 자금으로 쓸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9000억 달러에 달하는 국채 보유분 중 일부를 현금화하면 비교적 무난하게 재원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가능성은 낮다. 여파가 생각보다 클 수 있는데다 악순환 고리의 최초 빌미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국채 매도가 가격 폭락(금리 폭등)을 낳으면 미국 경제뿐만 아니라 글로벌 전체에 동반 침체의 불씨를 던질 수 있다는 논리다. 또 국채 매도는 당연히 엔고 심화와 함께 일본의 수출 경쟁력을 훼손시킨다는 점도 반론 근거다.

또 다른 재원 카드도 속속 선뵈고 있다. 다이와증권은 가칭 ‘동일본대진재부흥기금’을 창설하자고 제안했다. 참화 이후의 복구 사업에 용도를 한정해 피해 지자체와 피해 사업자, 개인의 융자원을 제공하자는 아이디어다.

기금 재원은 정부 보증채(부흥기금채권)를 발행해 기관 및 개인 투자자로부터 조달하는 구조다. 이는 무엇보다 정부의 재정 압박을 경감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괜찮은 선택이다. 게다가 1500조 엔에 이르는 막대한 개인 금융자산이 있다는 점도 우호적인 환경 변수다.

설득 과정을 통해 전체 국민이 재난 극복에 동참한다는 식의 참가 의식을 고무시킨다면 개인 차원의 채권 매입 실현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 상환 재원은 재건 사업 성공 이후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정상 회복 후라면 세수 확보도 가능하고 지방 교부금의 우선 할당도 생각해볼 수 있다. 독일 통일 때 통일 비용을 연대 부가세란 이름으로 조달한 경험을 빌린다면 가칭 ‘부흥연대세’를 마련할 수도 있다. 소비세 1% 정도(부흥연대세)를 추가 징수하면 5년 안에 12조 엔이나 모을 수 있어 효과는 적잖이 파워풀하다.

연대감을 강조하는 이들 재원 마련 루트는 갈수록 힘을 얻는다. 미증유의 대참사를 극복하기 위해 피해자와 연대하는 것은 일본적 가치 추구와도 맥이 닿아 설득력이 높다. 이 때문에 재원 갹출 차원의 부흥기금·연대세가 경제적 합리성을 넘어 정치적 합리성을 실현할 것이란 기대감이 높다. 동시에 이것이 실현되면 장기적으로는 재정 지속성을 위한 개혁 과제로 자연스레 연결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복구 재원은 도대체 얼마나 필요할까. 여전히 정확한 피해 규모 집계가 힘들고 원전 사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규모 추정이 불확실하다는 게 중론이다. 다만 고베대지진 등 선행 경험을 통해 추정하면 적어도 10조 엔 이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물론 야권에선 10조~20조 엔 정도로는 부족할 것이라는 비관론도 쏟아낸다. 국내총생산(GDP)의 5%에 해당하는 25조 엔에 이를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도 나왔다. 공통점은 엄청난 거액이 들 것이란 사실이다.

이 때문에 재원 조달도 한두 방안의 선택이 아니라 각종 가용 재원을 총동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분석도 힘을 얻는다. 민주당정권이 야당과의 대연정을 촉구하고 나선 점도 이를 위한 선제 작업으로 해석된다.

전영수 게이오대 경제학부 방문교수 change4drea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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