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 마케팅’에 열광하는 사회

2007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신정아 학력 위조 사건’의 주인공 신정아 씨가 다시 돌아왔다. 그해 10월 논문 대필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1년 6개월 뒤 보석으로 풀려난 신 씨는 자신의 수인번호 ‘4001’을 책 제목으로 삼아 다시 한 번 세상에 충격파를 던졌다.

신 씨는 지난 3월 22일 서울 시내 고급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책 출간 소식을 알렸다. 이 자리에서 그녀는 “수인 번호를 제목으로 단 건 뼈아픈 고통의 시간을 통해 참회의 뜻을 표현한 것”이라고 밝혔다.

책은 사건 직후부터 3년간 써두었던 일기를 토대로 했다고 한다. ‘사건 전후’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일종의 고백서인 셈이다. 하지만 단순히 지난 삶과 자신의 과오를 참회하려는 고백보다 ‘폭로서’에 가깝다는 게 책을 접한 대다수의 느낌이다.

책에는 그녀가 주장하는 예일대 박사학위 수여의 전말, 연인 관계였던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만남과 연애, 동국대 교수 채용 과정과 정치권 배후설에 대한 진실,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문화일보 누드 사진 오보 소동 등이 자세히 묘사돼 있다.

송사 휘말릴만한 민감한 내용 수두룩

신 씨는 “변 전 실장과의 관계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오히려 구차하다”라고 밝혔다. 이미 다 아는 내용을 굳이 숨기려 들지 않겠다는 뜻. 하지만 책이 불러온 파장은 변 전 실장 이야기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당시 서울대 총장이었던 정운찬 전 총리가 교수직과 서울대 박물관장직을 제안하며 지분거렸다는 주장, 유력 일간지 기자였던 C모 씨가 택시 안에서 성추행을 시도했다는 내용 등 경우에 따라 송사에 휘둘릴만한 민감한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

처음 책이 출간되자 한 개인, 특히 여성의 몸으로 밝히기 힘들었을 경험까지 디테일하게 폭로했다는 사실에 세상은 또 한 번 들썩였다. 하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파격적인 내용보다 ‘왜 책을 냈느냐’는 출간 의도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2000~3000부만 팔려도 ‘선전했다’는 소리가 나오는 곳이 요즘의 출판계이지만, 신 씨의 책을 낸 출판사는 초판을 5만 부나 찍어냈다. 그만큼 베스트셀러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는 뜻. 예상대로 5만 부 전량이 출고됐고, 서점가에서도 출간 당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출판사는 신 씨의 인세가 10%라고 밝혔다. 책값이 1만4000원이니 한 권이 팔릴 때마다 신 씨가 얻는 돈은 1400원이다. 초판 5만 부가 다 팔리면 7000만 원의 인세를 받게 되고 이런 기세로 10만 부 이상 팔리면 인세로만 1억4000만 원을 챙길 수 있다. 출간을 결정하고 받았다는 계약금은 ‘플러스알파’다.

신 씨는 책 출간과 동시에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보통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인사가 언론을 피하는 것과는 무척 대조적이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모습에서 ‘모니카 르윈스키’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탄핵 위기까지 몰고 갔던 스캔들의 주인공 르윈스키는 이후 ‘모니카의 이야기(Monica’s story)’라는 책을 펴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유명 토크쇼에 출연하거나 명성(?)을 이용한 의류 사업에 진출해 대박을 터뜨리는 등 ‘노이즈 마케팅’의 전형적인 사례로 꼽힌다.

출판 전문가들은 신 씨의 폭로전이 이제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찾기 어려웠던 노이즈 마케팅, 혹은 ‘치부 마케팅’의 효시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가 많다. 기자회견을 통해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 것 또한 앞으로의 대외 활동을 예고하는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한편 신 씨가 기자회견장에 들고 나온 300만 원 짜리 명품 가방도 화제다. 브랜드 관계자에 따르면 이 가방은 아시아 시장에서는 팔지 않는 제품이라고 한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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