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길 다른길] "양복에 대한 고집만은 서로 지지 않죠"

수제 양복점 비앤테일러샵 박정열 대표 & 박창우 실장

한 땀 한 땀에서 장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건 현빈의 트레이닝복만은 아니다. 100% 수작업으로 한 벌, 한 벌에 각별한 정성과 노력을 담고 있는 맞춤 양복에서도 어렵지 않게 장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종로 4가에 있는 수제 양복점 ‘비앤테일러샵’은 오랫동안 한길을 걸어 온 장인의 정성에 현대적인 감각이 더해져 ‘양복 좀 까다롭게 고른다’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이다.

아버지인 박정열 대표가 전체적인 운영을 맡아 직접 제작과 디자인에 힘을 쏟고 아들인 박창우 실장은 디자인 제시와 마케팅, 고객 상담 등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1980년 종로에서 처음 보령양복점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으니 문을 연 지도 30년이 훌쩍 넘었네요.”(박정열) 박정열 대표가 양복 일을 배우기 시작한 건 약 45년 전의 일이다. “원래 어렸을 때부터 눈썰미와 손재주가 있다는 이야기를 곧잘 듣곤 했었죠.

외숙모가 혼수품으로 들고 오신 가정용 재봉틀을 사용법도 모르면서 혼자 끙끙대며 바짓단을 접고 꿰맬 정도로 옷에 대한 관심도 남달랐고요.(웃음)”(박정열) 양복 일을 배우기로 한 건 ‘양복’에 대한 선망의 시선이 있었기 때문이다.

숯불 아이론(다리미)을 달구고 식혀 적절한 온도를 맞추는 일부터 시작해 한 벌의 양복을 만들 수 있게 되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힘들고 어렵게 배운 일인 만큼 그 일에 대한 자부심은 남달랐다.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최고의 양복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수십 년을 한눈팔지 않고 솜씨를 갈고닦았다. 요즘도 시간 날 때마다 외국에 나가 최고급 브랜드의 양복을 사와 분해해 패턴이나 원단을 연구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아버지의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다 보니 당연히 아주 어려서부터 양복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죠. 언젠가는 양복을 멋지게 소화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요.”(박창우)

아버지의 솜씨에 아들의 감각을 더하다

하지만 박창우 실장이 양복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그 자신의 옷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언제나 아버지를 존경하긴 했지만 아버지처럼 양복을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제 마음에 드는 옷을 찾기가 어렵더라고요. 직접 만드는 게 성이 찰 것 같았죠.(웃음)”(박창우)

원래 박 대표의 양복 짓는 솜씨야 안다 하는 사람들은 다 아는 유명한 솜씨였다. 더욱이 클래식한 디자인의 ‘딱 떨어지는 손맛’이 살아 있는 수제 양복을 짓기 위해 양복점을 찾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다 박 실장이 합류하면서 클래식한 분위기에 현대적인 감각이 더해졌다는 평들이 나온다.

고교 시절부터 틈틈이 아버지의 곁에서 양복 만드는 일을 배웠던 박 실장은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것을 살려 홈페이지를 다채롭게 꾸미고 일반인들이 알기 어려운 다양한 슈트 정보들을 제공하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드라마 협찬 등 마케팅적인 부분에도 힘을 쏟았다.

평범한 이름이었던 ‘보령양복점’이란 상호를 ‘비앤테일러샵’으로 바꾸고 전체 매장 분위기를 유러피언 스타일의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바꾸는 데도 박 실장의 공이 컸다.

“확실히 젊은 만큼 디자인을 선별하는 눈이나 패션에 대한 감각이 남다른 것 같아요. 아직 옷은 저만큼 못 만들지만(웃음)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후배인 셈이죠.”(박정열)

“아버지는 아직도 끊임없이 양복에 대해 공부하고 노력하는 분이세요. 그리고 비앤테일러샵의 대표로서, 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양복을 만든다는 것에 대해 책임감이 투철하신 분이죠.”(박창우)

이렇듯 서로를 인정하고 존경하는 돈독한 부자 관계이지만 양복에 대한 고집만은 서로에게 결코 지지 않는다. “저는 체형을 많이 중시해요. 세상 모든 사람들은 각각 자신만의 체형을 가지고 있죠. 그 어느 사람도 같은 체형이 없어요. 그런 체형들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살리기 위해 디자인을 고민하죠.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슬림하게 입는데, 너무 슬림한 것보다 어느 정도 여유를 두고 몸에 흐르듯 떨어지는 디자인을 지향하죠.”(박정열)

“우리 숍에는 20~30대의 고객들이 많이 오는데요, 요즘은 세미슈트라든가, 슬림한 슈트를 원하는 고객들이 많아요. 그분들의 취향을 살리면서도 양복 자체가 가진 힘과 균형이 무너지지 않는 선에서 적정선을 찾아 디자인을 제시하려고 노력하죠.”(박창우)

라펠(접은 옷깃)이나 포켓·버튼·라인 등 디테일한 부분을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전체 디자인이 달라지는 게 바로 양복이다. 그 때문에 종종 옷을 만들다 보면 의견 충돌도 적지 않게 생긴다.

“허리 쪽의 라인을 좀 더 살리자”, “아니다, 입는 이의 체형을 고려하면 조금 더 여유가 있는 편이 낫다”, “포켓을 하나 더 달면 어떨까” 등등. 이렇듯 의견이 대립될 때는 아버지와 아들, 대표와 실장, 스승과 제자…, 어느 면으로 봐도 아들인 박 실장이 질 수밖에 없는 관계이지만 의외로 박 실장의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대를 이어 ‘좋은’ 양복을 만들고 싶어

사실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기성 양복들은 많다. 그에 비해 맞춤 양복은 예약과 상담을 거쳐 스타일을 결정하고 사이즈를 재고 가봉을 한 후에 또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손에 넣을 수 있다.

“100% 수작업으로 하다 보니 한 벌의 양복을 만드는데 약 2주일에서 20일의 시간이 소요돼요. 게다가 가격도 만만치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원단을 써서 내 몸에 딱 맞춰 몸을 타고 흐르는 양복의 느낌을 알게 되면 왜 맞춤 양복을 선호하게 되는지 알게 될 거예요.”(박정열)

그래서 보통 솜씨 좋은 맞춤 양복점에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찾아주는 고객들이 많다. 청년에서 장년이 된 고객이 장성한 아들을 데려와 한 벌의 양복을 맞춰주는 훈훈한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오는 7월이면 현재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양복 공부를 하고 있는 둘째 아들이 귀국해 합류할 예정이어서 박 대표의 든든함과 뿌듯함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동생이 함께하는 만큼 앞으로 더 좋은 양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좋은 원단과 좋은 패턴, 좋은 바느질 등 삼위일체가 이뤄져야 좋은 양복을 만들 수 있다고 말씀하시거든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최고의 양복을 만들기 위한 도전을 계속하려고 합니다.”(박창우)

박정열(1951년생) 대표는 1967년부터 양복을 배우기 시작해 1980년 종로에서 보령양복점을 개업했다. 1999년부터 아들인 박창우(1980년생) 실장이 합류한 뒤 2004년 상호를 비앤테일러샵(B&Tailorshop)으로 바꿔 오늘에 이른다. 2001년 온라인 주문 홈페이지 오픈으로 ‘신지식인’에 선정되는 한편 2002년 아시아 맞춤 양복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2005년에는 한국 맞춤 양복 기술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김성주 객원기자 helieta@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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