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Ⅲ] 락앤락, 365일 현장 경영이 '신화' 일궜다
입력 2011-03-29 11:09:26
수정 2011-03-29 11:09:26
중국 현지 취재 - 락앤락 해외 사업 성공 비결
한국 경제는 어려워도 한국 대기업은 잘나간다. 한국 대기업이 농사짓는 밭이 해외에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은 해외 매출 비중이 80%를 넘나든다. 문제는 한국 시장에서 ‘천수답’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중소·중견기업들이다.이들은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는 옛 농사꾼처럼 하늘(경기)만 바라본다. 중소·중견기업들도 해외시장에서 농사를 지어야 하지만 불행히도 경험·인력·자금력 등의 여건이 부족한 형편이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멋지게 성공한 기업들이 있기 때문이다. 락앤락이 대표적이다.
주방 용품 업체 락앤락의 성장세가 눈부시다. 지난해 매출액(연결기준)은 3880억 원, 영업이익은 851억 원이다. 매출액은 전년 대비 38.6%, 영업이익은 31.2% 늘어났다. ‘반짝 성과’가 아니다. 해마다 고속 성장하고 있다.
락앤락은 어엿한 글로벌 기업이다. 내수 시장 매출액은 40% 정도에 그치고 있다. 중국과 베트남 등 해외 매출 비중이 60% 선이다. 더욱이 중국에서의 성장 속도는 초고속이다. 최근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무려 156.8%다.
최근 해외시장 개척에 성공한 중소·중견기업으로는 아모레퍼시픽·이랜드·오리온·락앤락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가운데 규모가 가장 작은 기업이 락앤락이고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기업도 락앤락이다. 중소·중견기업의 해외 진출은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 경험이 없고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데다 전문 인력도 부족하고 네트워크도 미흡하기 때문이다.
락앤락이 중국에 진출한 것은 2002년 10월 만산생산법인을 설립하면서부터다. 락앤락은 1999년 ‘완벽한 밀폐 용기’로 일컬어지는 4면 결착 밀폐 용기를 개발해 큰 성공을 거두면서 2003년 처음으로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김준일 락앤락 회장은 안심하지 못했다. 성공에 안주하기보다 더 넓은 시장으로의 진출을 꾀했고 바쁜 시간을 쪼개 중국어 학원에서 중국어를 배웠다. 김 회장은 진출 첫해부터 중국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시장 개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중국 상하이 푸둥공항에서 자동차로 1시간쯤 달리면 쑤저우공업원구가 나온다. 쑤저우공업원구 안에 락앤락 공장이 자리 잡고 있다. 중국과 싱가포르가 공동으로 개발한 공업원구 안에는 3700여 개의 기업이 들어서 있다.
이 중 락앤락 공장에만 볼 수 있는 게 있는데, 바로 춘추전국시대의 초나라 정치가이자 군인인 오자서의 동상이다. 오자서는 쑤저우시의 초석을 다진 인물로 지금까지도 지역 주민들로부터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다.
오자서의 동상 제막식에는 지역의 유력 인사 대부분이 참석했다. 쑤저우 지방 매스컴의 집중 조명도 받았다. 그들은 “중국인의 동상을 세운 외국 기업은 락앤락이 유일하다”라며 박수를 보냈다. 해외 진출 때 현지화는 기본이다.
현지화는 현지 실정에 맞게 현지 기업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오자서 동상은 중국인들에게 락앤락이 ‘중국을 진심으로 대하고 있다’라는 메시지를 던져준 셈이다.
현장 교육으로 인재 육성 성공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데 역량을 집중한 것도 현지화의 좋은 사례다.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해외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가 거의 없다. 제품의 질이 아무리 좋아도 브랜드 인지도가 낮으면 헛일이다.
이 점을 간파한 락앤락은 우선 대대적인 광고로 브랜드 알리기에 나섰다. 드라마 ‘대장금’의 한상궁으로 출연했던 탤런트 양미경 씨를 광고 모델로 활용했다. 2005년 중국을 강타했던 ‘대장금’ 덕분에 한국 음식과 주방 용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던 때 ‘대장금’ 출연자를 내세운 광고는 중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면서 ‘락앤락’ 브랜드를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또 중산층 소비자를 겨냥한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플래그십 스토어를 대도시의 가장 좋은 A급 상권에 개장한 것도 효과를 톡톡히 봤다. 1호 직영점이 들어선 상하이 중심가인 화이하이루는 루이비통·까르띠에 등 명품 브랜드가 밀집해 있는 상하이에서 임차료가 가장 비싼 중심가다. 1호점 임차료만 연간 5억 원이지만 그 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 락앤락 측의 설명이다.
현지화는 현장 경영과 직결된다. 현장 사정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현지화가 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락앤락 경영진은 현장 경영의 표본으로 삼아도 무방할 정도다. 락앤락이 중국에 진출한 후 위하이와 쑤저우 등에 생산 법인을 세웠지만 역발상으로 전략을 짰다.
중국에서 만든 제품을 전부 한국에 가져와 팔았다. 대신 한국에서 만든 제품을 중국에 가져가 판매했다. 베이징 올림픽이 열린 2008년까지 그랬다. 현장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락앤락 경영진은 중국인들이 전통적으로 외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이에 따라 한국산 제품을 비싼 값에 중국 시장에서 팔고 중국산을 한국으로 수입한 것이다. 하지만 올림픽을 계기로 소비자들의 심리가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도 존중하는 분위기로 변했다. 자존감이 높아진 덕분이다.
이에 따라 락앤락은 중국에서 만든 제품을 중국에서 팔았다. 물론 이전 한국산을 팔던 가격을 그대로 유지했다. 중국 진출 초기 대도시를 집중 공략한 것도 현장 경영을 통해 얻은 지혜였다. ‘근공원교(近攻遠交)’의 전략이 그것이다.
‘근공원교’는 ‘가까운 곳은 공략하고 먼 곳은 교제를 두터이 한다’는 뜻이다. 락앤락은 베이징·상하이·선전 등 대도시는 법인과 직영점을 세워 직접 공략하고 그 외 2선에 있는 도시는 도매상을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중소기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인재다. 대기업 선호사상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중소기업이 우수한 인재를 얻기가 쉽지 않다. 해외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인데, 좋은 인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거리는 중소기업이 적지 않다.
락앤락의 성공은 인재 육성에도 성공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락앤락의 중국 주재원은 100여 명. 이 중 50여 명이 상하이 법인에 근무한다. 현장 경영을 중시하는 락앤락은 현장 교육을 강조한다. 중국 진출 초기 김 회장은 아파트를 얻어 주재원들과 함께 생활했다.
함께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전수 교육을 한다. 영업 현장에도 늘 함께 다니면서 직접 교육했다. 최근에는 동남아 법인이 늘어나면서 상하이에서 별도의 주재원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현재 16명의 예비 주재원들이 상하이에서 3개월간 집체 교육을 받고 있다. 이와 함께 해외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현지 채용한 외국인 직원들 때문에 고민한다.
생산 공장은 책임감이 부족한 현지인 직원들 때문에 속을 썩인다. 그렇지만 락앤락은 이 같은 고민이 거의 없다고 한다. 기자가 방문한 쑤저우 생산 법인은 생산 직원들에게 아파트를 제공한다. 생산 현장도 깨끗하게 정리정돈이 잘돼 있고 직원들의 모습에서 규율이 느껴졌다.
락앤락은 중국 현지에서 4개의 영업법인과 3개 생산 공장, 9개의 물류 창고를 운영하고 있다. 직영점 100여 개와 백화점·할인점·TV홈쇼핑·특판 등 유통 채널 2316개점에 입점해 있다. 락앤락 제품뿐만 아니라 한국산 제품을 팔고 있는 ‘타오바오 쇼핑몰 한국관’에 입점하는 등 사업 다각화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상하이 중국 법인에는 50여 명의 한국 주재원이 있다. 한 주재원은 “50인의 결사대”라고 표현했다. 이들은 또 대다수가 다른 한국 기업에서 전입해 왔다. 누군가는 “2군 출신의 외인부대”라고 칭했다. 이들은 로열티가 강하고 중국어에 유창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이 락앤락의 기적을 만들어 가고 있다.
상하이·쑤저우=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