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수(數)의 달인’…파생 분야서 두각

증권가 ‘파워 인맥’ KAIST맨 뜬다

증권가 새 ‘파워 인맥’으로 카이스트(KAIST) 출신이 떠오르고 있다. 이들은 이공계 특유의 논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인문계 출신이 대부분인 증권업계에 ‘새로운 관점’을 선보이며 각광을 받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기존에 강점을 보이던 금융공학이나 파생상품 부문은 물론 리서치 부문 등에서까지 두각을 나타내는 카이스트 출신들이 크게 늘어나는 상황이다. 증권가 카이스트 출신 1세대는 허용 한국투신운용 차장, 김성하 미래에셋증권 이사, 김길환 우리투자증권 차장, 김상준 미래에셋증권 부장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중 허용 한국투신운용 팀장은 카이스트 1기(86학번), 김성하 미래에셋증권 이사는 카이스트 2기(87학번)로 카이스트 인맥의 맏형 격이다.


이들이 증권가에 첫발을 내디뎠던 1990년대 후반만 해도 이공계 출신은 업계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 국내에 도입되기 자산유동화증권(ABS) 등 ‘파생상품’이라는 새로운 금융 상품은 ‘숫자라면 도가 튼’ 카이스트 출신들의 장기를 발휘할 수 있는 장이 됐다.

김성하 미래에셋증권 이사는 이러한 변화의 한복판에 있던 인물이다. 그는 카이스트 졸업 후 기아차에서 7년간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그러다가 지난 2000년 주택은행으로 자리를 옮기며 금융권에 첫발을 디뎠다.

이후 메리츠증권·제일투자증권·미래에셋투신운용에서 구조화 상품 개발에 힘을 쏟았다. 특히 2005년 미래에셋증권에서 국내 최초로 ‘하이브리드DLS’ 상품을, 2010년 국내에 첫 재간접 헤지 펀드를 선보이며 시장에서 파생상품 전문가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95학번 이후로 크게 늘어

허용 한국투신운용 차장 역시 출발은 산업 분야였다. 생물학과 졸업 후 제약회사에서 근무하던 그는 1997년 말 애널리스트로 금융업에 진출했다. 그는 “상경계열 출신이 대부분인 금융권에서 카이스트 출신만의 독특한 시각이 업계에서 좋은 평가를 하는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산업 분야의 경력을 바탕으로 증권가에 진출했다면 최근의 트렌드는 졸업 후 바로 금융권에 도전하는 것이다. 이들은 주로 95학번 이후 ‘신세대’들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국내 파생 분야 인력 확충이 마무리되면서 카이스트 졸업생들의 채용도 줄었다”라며 “하지만 2000년대 중반 리서치 및 투자은행(IB) 부문에서 큰 성장이 이뤄지며 이 분야에서 자연스럽게 카이스트 출신들이 늘어났다”라고 말했다.

송흥익 대우증권 애널리스트, 황승택 하나대투증권 애널리스트, 이다솔 한화증권 애널리스트, 우리자산운용 김상미 매니저, 푸르덴셜자산운용 민생균·박정준 매니저, 한화투신운용 윤준길 매니저, 에이스투자자문 문찬웅 매니저, 삼성증권 채권운용팀 김진수 매니저, 한가람투자자문 박정준 매니저, 한국투자공사 고승필 매니저 등이 바로 이들 신세대 카이스트맨들이다.

이들 신세대 카이스트맨들의 특징은 학부 시절부터 금융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송흥익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그저 석사·박사를 거친 뒤 대기업 연구소에 들어가는 게 전부인 줄 알았다”라며 “하지만 복학 후 여러 선배들이 금융권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보니 뭔가 새로 눈을 뜬 기분이었다”라고 말했다. 이다솔 한화증권 애널리스트는 “학교에서도 금융전문대학원·테크노경영대학원 등이 생기는 등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학도 출신 금융맨들은 장점이 많다는 평가다. 인문계 출신 애널리스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IT나 바이오 분야의 최첨단 기술들을 이들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또 파생상품이나 IB 분야의 복잡한 수치 분석이라도 계산기를 끼고 살던 공학도들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다. 김성하 이사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힘들다”라고 말했다.

즉 경영 마인드, 문화적·예술적 소양을 갖춰야만 한다는 것이다. 또한 공학도 특유의 고집을 접고 소통 능력을 더 길러야 조직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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