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 약세…장기적으론 상승론 우세

“왜 떨어지는 거지?” 국제 원자재 투자자들은 요즘 금 선물 시세 움직임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일이 많아졌다. 당연히 오를 것이란 시장 재료에도 웬일인지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난 3월 11일 터진 일본 대지진 참사 이후 나타난 금값의 연속 하락 행보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투자자들도 적지 않다. ‘유사시에는 금’이라는 세간의 공식을 무색하게 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금값은 리비아 사태가 악화일로를 치닫던 3월 초만 해도 온스당 1437달러까지 치솟는 등 거침이 없었다.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장중 기준으로는 한때 1445달러까지 오르기도 했다. ‘비상시 안전 자산은 역시 금’이라는 속설이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다.

대지진 발생 당일만 해도 이런 공식은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당시 금 선물 값은 고점 부근임에도 온스당 9.3달러(0.7%) 올랐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후쿠시마 원전에서 원자로 3기가 잇따라 폭발해 방사능 유출 우려가 고조됐던 지난 3월 15일 금값은 한참 더 올랐어야 정상이다.

문제는 이 이후의 움직임이다. 금값은 일본 대지진 이후 연속 하락하다가 3월 15일에는 무려 32.1달러(2.25%) 폭락했다. 적지 않은 투자자들이 갸우뚱했다. 주가 폭락→국제 유가 하락→금값 폭등의 공식을 떠올린 투자자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위기 이후 오히려 값 떨어져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오히려 정상적 위험 회피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달러나 금 등 안전 자산을 사들이지만, 사태가 더 심각한 상황으로 악화되는 이른바 ‘임계점’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안전 자산을 매각해 현금을 확보하려는 심리가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시장 분석 전문 매체인 마켓워치는 “불확실성이 극도로 높아지면 투자자들은 금·은 같은 실물 자산보다 당장 쓰기 편한 현금을 더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공포 심리가 커지면서 ‘현금이 왕’이라는 생각에 금마저 팔고 있다는 얘기다. 일본의 금 전문가 도시마 이쓰오는 “‘유사시의 금’은 결국 평화시에 금을 사뒀다가 유사시에 팔아 자금화하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지적한다.

국제사회에서 이런 사례는 꽤 있었다. 이라크전이 대표적이다. 2002년 8월 미국과 이라크 간 전쟁 분위기가 고조되자 금값은 400달러 가까이 폭등했다. 하지만 정작 미군이 바그다드를 폭격하기 직전인 2003년 4월에는 금값이 325달러 선까지 폭락했다.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팔아라’는 투자 격언이 금시장에서도 고스란히 통용됐다는 얘기다.

마크 헐버트 미국 금 투자 전문가 역시 “대형 사고가 터졌을 때에는 일단 팔고 질문을 던져라”라고 조언한다. 단기적으로는 상승 하락을 거듭하는 등 변동성이 커지는 만큼 일단 현금 확보에 주력하라는 뜻이다.

비상시에는 개인 투자자와 마찬가지로 정부도 금을 팔 수 있다.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일본 정부가 보유한 금을 내다 팔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세계 금위원회(WGC)에 따르면 일본은 765.2톤의 금을 확보한 세계 5위의 금 보유국이다. 국가 차원의 금 대량 매각은 단기적으로 금값 추가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상승 동력이 더 크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초대형 재난 발생이라는 돌발 변수와 상관없이 인도·중국 등 신흥국의 장신구 제작용 등 금 실수요가 증가하고 있지만 채굴량이 줄어들고 있어 금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한마디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 것이란 관측이다. 온스당 1400달러대가 이미 ‘버블’수준이라는 지적이 없는 게 아니지만 식품이나 생활용품 등의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마이클 얀센 JP모건 원자재 애널리스트는 “올해 금값은 1465달러를 넘어서고 연말께에는 1500달러까지 오르게 될 것”이라며 아예 하락기에 적극적인 투자를 권하기도 한다.

이관우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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