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권의 부동산 나침반] ‘에스크로’ 도입해 거래 불안감 없애야

부동산 사기 예방

서민들이 일생에서 가장 비싸게 사고파는 상품은? 수억 원이 넘는 돈을 서로 믿고 주고받으며 사고파는 상품은? 정답은 ‘집’이다. 우리는 매매든 전세든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 심지어 수십억 원짜리의 상품(집)을 아무런 담보도 없이 오로지 ‘믿음’ 하나로 사고판다. 전세난이 한창일 때의 일이다. 언론에 안타깝고 괘씸한 뉴스가 나왔다. 내용은 이렇다.

서울 역삼동에서 2억7000만 원에 아파트를 전세로 얻은 이모 씨는 월세가 밀렸으니 집을 비워달라는 황당한 통보를 받는다. 이 아파트를 월세로 계약한 최모 씨가 집주인인 척하면서 진짜 집주인의 신분증에 자신의 사진을 붙여 다시 이 씨와 전세 계약을 해 벌어진 일이다.

집 없는 설움도 서러운데 사기로 평생 번 돈을 날려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격이다. 사기는 전세에만 그치지 않고 매매 현장에도 판친다. 신분증과 등기권리증을 위조해 돈을 들고 도망가거나 실제 집주인이 여러 명과 이중삼중 계약해 돈을 가로채는 등 유형도 여러 가지다.

서울 송파구 신천동 공인중개업소 밀집지역. 전세값 상승세가 주춤해진 가운데 시민들이 전세 시세표가 붙어 있는 공인중개업소 앞을 지나가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
정부는 부동산 사기가 극성을 부릴 때마다 내뱉은 말이 있다. 전세 임차인은 거래 상대방의 신분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해당 시·군·구청 중개 업무 담당 부서를 통해 중개업자의 신분을 확인한 후 계약하라는 것이다.

누가 몰라서 그럴까. 일반인이 신분증 위조 유무를 가려낼 방법이 없는데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내걸고 하는 부동산 중개업소를 어떻게 일일이 확인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현재와 같은 공급자 위주의 전세 시장에서는 임차인이 까다롭게 따지면 어렵게 찾은 전셋집을 놓칠 우려도 있다.

집을 사고팔 때도 계약금과 중도금 잔금으로 수억 원이 넘는 돈을 달랑 계약서 한 장만 보고 건넨 뒤 등기가 넘어올 때까지 노심초사한다. 결국 중개업자와 매매 당사자의 말만 믿고 거래할 수밖에 구조로, 사고는 여기서 터진다.

등기 후 모든 계약서 첨부 의무화해야

해결 방법은 없을까. 미국은 집의 소유권이 A→B→C→D로 넘어갔다면 A→B, B→C, C→D와 거래한 3장의 매매계약서가 항상 붙어 다닌다. E가 D로부터 집을 구입할 때 D는 3장의 매매 계약서를 제시해야 하고 이를 변호사가 검토해 소유자를 확인해 준다.

등기권리증과 같은 ‘집 이력(원인 서류)’을 통해 진짜 소유주가 누구인지 밝혀주는 시스템이다. 우리도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 또 에스크로(escrow)의 의무화도 검토할 때다.

에스크로는 매수인이 계약금을, 매도인이 권리증을 에스크로(에스크로 회사, 변호사, 은행, 권원보험 회사 등)에 예치하면 변호사 등이 ‘부동산의 법적 하자, 매매대금 지급 여부’ 등을 확인한 뒤 문제가 없다고 판단될 때 거래를 끝내는 것이다.

에스크로를 처음 고안한 미국은 주로 에스크로 회사가 제3자의 중립적 입장에서 부동산 거래에 관한 모든 사무 수속 서비스를 제공한다. 영국은 이를 변호사가 대신한다. 매수인이 내는 계약금과 중도금 잔금이 모두 변호사 계좌로 입금되고 거래에 하자가 없을 때 매도인 측 변호사의 계좌로 자금이 이체된다.

현재 에스크로는 전자상거래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옥션 등에서는 구매자의 결제 대금을 가지고 있다가 상품이 정상적으로 배송되면 그 대금을 판매자에게 지급한다.

물론 에스크로를 도입하면 추가 거래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나 지자체가 취득·등록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 거래 때 발생하는 세금으로 공단을 세워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다. 아니면 4대강 비용을 조금 줄여 공단을 설립해 서민들의 재산을 지켜주는 방안도 있다. 서둘러야 할 때다.

김문권 편집위원 m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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