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인터뷰] "제주에 '아시아의 다보스 포럼' 만든다"

한태규 제주평화연구원장

‘세계 평화의 섬.’ 제주가 갖고 있는 아름다운 이름 중 하나다. 그 연원은 1991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제주 정상회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냉전의 벽을 허문 이 역사적 사건을 필두로 지금까지 20여 명의 세계 정상들이 남도의 섬을 찾았다.

또한 2000년대 들어 북한 고위급 인사의 잇단 방문으로 남북 화해와 교류의 중심 무대가 되면서 제주를 평화운동의 중심으로 키우자는 아이디어가 무르익었다. 마침내 2005년 정부가 제주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공식 지정하고 각종 지원 사업에 나서기 시작했다.

푸른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제주 중문단지에 제주평화연구원이 만들어진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동아시아 국제 협력과 교류의 허브를 지향하는 강소 연구소다. 이공계를 제외한 국내 주요 싱크탱크 가운데 수도권 밖에 있는 곳은 제주평화연구원이 유일하다.

개원 5년째를 맞는 이 연구원은 올해 야심찬 도전에 나선다. 간판급 행사인 ‘제주평화포럼’의 명칭을 ‘제주포럼’으로 바꾸고 규모도 대폭 키우기로 한 것이다. 한태규(62) 제주평화연구원장은 “외교안보 이슈 중심에서 벗어나 경제 관련 세션을 크게 늘렸다”라며 “중국 등 아시아 기업인들을 적극 유치해 ‘아시아의 다보스 포럼’으로 키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제주 중문 지역에 연구원을 만들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2002년 만든 제주국제자유도시법에도 제주를 국제 교류와 국제 외교의 중심으로 발전시킨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제주, 특히 중문 지역을 국제회의나 정상회담 장소로 적극 활용하자는 아이디어죠.

현재 건설 중인 서귀포혁신도시에도 국제 교류 기능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2012년까지 국제교류재단과 재외동포재단이 이전해 내려오도록 돼 있지요. 그렇게 되면 제주평화연구원과 제주국제평화센터,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이들 재단과 국제학교로 이어지는 ‘국제 교류 클러스터’가 완성되는 겁니다.

‘평화연구원’이라는 명칭이 특이한데요.

거기에는 정치적인 배경이 약간 들어 있습니다.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평화운동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지요. 그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주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선포했어요.

그 과정에 외교안보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문정인 연세대 교수가 큰 역할을 했지요. 이 때문에 새 정부 들어 보수층의 달갑지 않은 시선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이제는 정권 교체와 관계없는 중립적인 연구원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평화’라는 말에 더이상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어요.

어떤 방식으로 운영됩니까.

우리 연구원은 네트워크형 싱크탱크를 지향합니다. 수도권에서 떨어져 있어 연구원을 늘리기가 쉽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지난 5년간 경험을 통해 ‘아웃소싱’을 통한 연구가 굉장히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지요.

주로 한반도 평화와 아시아 지역의 다자 협력 문제를 다룹니다. 특정 이슈가 생기면 그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전문가를 찾아 연구를 위촉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는 형태죠.

제주에 떨어져 있어 어려움은 없습니까.

장단점이 있어요. 연구원을 확보하기가 어렵고 주변에 우수한 인력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죠. 서울에서 떨어져 있다 보니 교류도 쉽지 않아요.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이런 지리적인 문제점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제주라는 휴양지에 있는 것이 네트워크에 도움이 되기도 해요. 회의와 연구, 휴양을 겸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와이 동서문화센터도 휴양지에 있으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모두 커버합니다. 수도권 밖에 있는 유일한 연구소라는 자부심도 있지요.

올해부터 제주평화포럼이 달라진다고 들었습니다.

2001년부터 격년제로 제주평화포럼이 열리고 있습니다. 외교통상부를 비롯해 여러 기관이 참여하고 예산도 많이 투입되는 대규모 행사지만 평화 문제에 중점을 두다보니 국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어요. 소비성 포럼이라는 지적도 많았지요.

그래서 올해부터 포럼을 매년 개최하는 것으로 바꾸고 경제·사회·환경 같은 대중적 관심이 큰 주제를 대폭 늘리기로 했습니다. 자주 바뀌던 포럼 개최 시기도 5월 말로 고정했어요. 계절적으로 제주가 가장 아름다운 시기죠.

포럼 명칭도 바뀝니까.

아무래도 ‘제주평화포럼’으로 하면 다루는 주제에 제약이 생깁니다. 그래서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약칭 제주포럼)’으로 공식 명칭을 바꿨지요. 글로벌 금융 위기나 아시아의 성장 기업, 중국의 부상, 한반도 통일 등 대중적 관심을 반영한 의제를 계속 개발해 나갈 겁니다.

이번에도 의제 수로 보면 경제와 경영, 환경 분야 세션이 훨씬 더 많을 거예요. 제주포럼을 다보스포럼이나 보아오포럼처럼 세계적인 행사로 키울 겁니다. 아시아 지역 기업인들을 끌어오는 것이 최우선 목표죠.

기업인 유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올해 포럼은 중국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한국과 한국 기업에 관심이 많은 중국 기업인들을 유료 참가자로 대거 유치할 계획이에요. 현재 200명 이상의 참가가 예상됩니다. 이 부분은 서울과학종합대학원이 맡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주를 찾는 중국인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데요.

중국인들은 제주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깨끗한 바다가 있기 때문이죠. 베이징이나 상하이에서는 바다라고 나가봐야 뿌연 황해밖에 볼 수 없어요. 청정한 바다를 보려면 비행기를 3~4시간 타고 남쪽 지방까지 가야 해요.

상하이에서 1시간, 베이징에서 2시간 거리인 제주가 오히려 훨씬 가깝죠. 제주는 국제자유도시로 지정돼 중국인에게 비자도 면제해 줍니다. 중국인이 제주에 50만 달러 이상 부동산에 투자하면 사실상 영주권을 주는 인센티브도 있지요.

연구원의 재정 상태는 어떻습니까.

국제평화재단이 연구원 상위 조직으로 있습니다. 외교통상부가 150억 원, 제주도가 50억 원을 출연해 조성한 기금이 모태죠. 현재 기금 운용 소득과 정부 보조금, 민간 후원금이 연구원 재정으로 들어옵니다. 정부 보조금이 단계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연구원의 자립이 필요한 상황이죠.

민간 기업 후원금은 제주에 규모 있는 큰 기업이 없어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울에 있는 연구소들은 그나마 정부 용역 사업을 통해 수익을 내고 있지만, 우리 연구원은 제주에 있어 쉽지 않아요. 이자율이 떨어지면 기금 이자 수익으로 인건비도 충당하기 어려운 구조죠.

오랫동안 외교관으로 활약하셨는데, 과거와 비교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입니까.

외교관 생활을 하던 초창기만 해도 한국의 국력이 약해 대외적으로 힘이 없었지요. 민주화가 안 된 상태여서 세계무대에서 발언력도 약했어요. 지금은 한국 외교관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지요. 1990년대 북방 외교에 성공하면서 한국 외교의 지평이 엄청나게 넓어졌습니다.

한소, 한중 수교가 이어졌죠. 그러나 지난 40년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이 있어요. 바로 남북 관계에요. 남북 관계만 해결되면 우리 외교의 지평은 또 한 번 확대될 겁니다. 지금 중동에서 일어나는 민주화 바람을 보면서 한반도에서도 조만간 통일이 이뤄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약력 : 1949년 충남 부여 출생. 1971년 서울대 법대 졸업. 1970년 외무고시 합격(4회). 1995년 외무부 구주국장. 1999년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 2001년 주그리스 대사. 2004년 외교안보연구원장. 2006년 주태국 대사. 2008년 제주평화연구원장(현).


제주=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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