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 ‘전성기’ 끝…주가 줄줄이 하락

해외뉴스

세계적 제약 업체인 화이자는 벌써부터 내년 매출 걱정이 태산이다. 이 회사의 블록버스터(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히트 상품)인 ‘리피토(Lipitor)’의 특허 기간이 올해 11월에 끝나기 때문이다.

리피토는 콜레스테롤을 억제하는데 특효가 있는 의약품으로 화이자에 매년 100억 달러의 매출을 안겨줬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다른 기업들도 이 약을 만들 수 있게 돼 화이자의 리피토 매출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글로벌 제약 업체는 화이자뿐만이 아니다. 베링거인겔하임의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인 플로맥스, 머크의 고혈압 치료제 코자르, 아스트라제네카의 유방암 치료제 아리미덱스, 로체의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치료제 인비레이즈,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난소암 및 폐암 치료제 하이캠틴, 바이엘의 신경안정제인 클리마라, 아리셉트의 치매 치료제인 아리셉트 등 모두 11개의 블록버스터 의약품의 특허 기간이 올해 만료된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이들 11개 의약품의 판매량을 합치면 연간 500억 달러나 된다”며 “제약 산업의 황금시대가 막을 내리게 됐다”고 보도했다.

11개 ‘블록버스터’ 올해 특허 종료

실제 제약 산업은 불과 수년 전만 하더라도 수익성이 좋은 산업으로 꼽혔지만 지금은 혁신 없이는 생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세계 제약 업계는 2009년에 6만1000명을 감원한데 이어 지난해에도 5만3000명을 줄였다.

반면 지난 10년간 연구·개발비를 2배로 늘리며 신약 생산에 매달렸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화이자와 엘리릴리는 치매약 개발에 수억 달러를 쏟아 부었지만 결국 실패했고 머크도 셰링 플라우를 인수하면서까지 혈액 희석제 개발을 추진했지만 임상 단계에서 꿈을 접어야 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을 통과하는 신약의 수는 지난 1996년 53개를 고점으로 해마다 줄어 지난해에는 15개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이들 약의 특허 기간이 종료된 후 쏟아지게 될 제네릭(복제약)의 가격은 본래 약의 30% 수준에 불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소비자들은 약값 하락에 따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블록버스터 신약 개발을 포기하는 업체들이 잇따르면서 환자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약이 개발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화이자의 새 대표로 선임된 이안 리드 최고경영자(CEO)는 “블록버스터 신약보다 암·염증·신경과학·제네릭(복제의약품) 등의 틈새 시장에 초점을 맞추겠다”며 “향후 2년간 연구·개발비를 30% 삭감하고 이익이 날 수 있는 부문에 연구를 집중하겠다”라고 말했다.

제약 업체들은 기존 약값의 인하 압박도 받고 있다. 미국은 제약 업체에 정부의 건강관리 프로그램 등에 따라 약값을 내리고 보상 조건을 개선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위의 의약품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은 일반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수백 개의 약품 가격을 평균 40%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제약 업계의 현실은 주식시장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화이자는 매년 주식 배당과 자사주 취득 등으로 투자자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주가는 3월 9일 19.88달러로 약 10년 전인 2001년 11월 30일의 43.19달러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된다.

머크의 주가도 지난 2000년 이후 60% 빠졌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유럽에 있는 다국적 제약사들에 대한 투자 등급을 모두 ‘신중’으로 낮추면서 “제약 업계의 경영 환경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스트라제네카·바이엘·글락소스미스클라인·노바티스·노보·노르디스크·로체 등 대형 업체들의 투자 등급이 모두 강등됐다. 그러나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제약 산업의 현 상황을 오히려 투자의 기회로 본다.

대부분의 회사가 이익은 많이 나지만 주가가 싸 주가수익률(PER)이 낮게 형성된 반면 배당률은 평균 4%에 이를 정도로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제약 산업의 성장성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태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tw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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