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물가 상승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정말 이 힘든 짐을 내려놓고 싶다.”(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금리 인상 시기를 놓쳤다고 보지 않는다. 물가는 다 알 수 없다. 노력한다.”(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지난번 임시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는 역시 물가가 핵심 이슈였다. 2월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4.5% 올라 2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한 상황에서 국회의원들과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의 관심은 온통 물가에 쏠렸다. 국회의원들은 물가 관리에 실패한 정부와 통화 당국을 강도 높게 질타했다. 하지만 답변에 나선 당국자들의 답변은 실망스러웠다.
윤 장관의 발언은 3월 7일 재정위 전체 회의에서 나왔다. 전병헌 민주당 의원이 “물가 폭등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에 대해 주무 당국자인 장관께서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묻자 윤 장관은 “제게 책임을 묻는다면 저도 정말 이 힘든 짐을 내려놓고 싶습니다”라고 답했다.
“금리 인상 시기 놓쳤다고 보지 않는다”
윤 장관은 이어 “중동 사태에 따른 국제 유가 급등과 기상 악화에 따른 곡물 가격 상승 등 우리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공급 측 문제가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해결책을 내놓지는 못할망정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말을 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윤 장관의 국회 답변에 대해 청와대에서 불편하게 생각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인사권자인 대통령과 한마디 상의도 하지 않은 채 일종의 ‘사의 표명’을 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윤 장관의 국회 답변 다음날인 3월 8일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물가 상승은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다”라며 물가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 대통령은 이날 “물가 문제는 기후변화,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고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가 고통을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 총재는 3월 9일 국회 재정위 업무 보고에서 물가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이날 한은 업무 보고에서는 ‘기준금리 인상 시기를 놓쳐 물가 상승세가 증폭됐다’는 국회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이에 대해 김 총재는 “금리 인상 실기 주장에 동의할 수 없으며 금융통화위원회는 적절히 대응해 가고 있다”라고 반박했다.
그간 한은의 기준금리 결정이 적절하게 이뤄졌는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여러 정황을 살펴볼 때 한은이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금리를 독립적으로 결정하지 못한다는 혐의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윤 장관은 지난해부터 “기준금리는 한은이 결정한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경기 회복 기조가 굳어질 때까지는 기준금리를 올리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지난해 7월 한은이 기준금리를 1년 5개월 만에 연 2.0%에서 2.25%로 올렸을 때는 윤 장관이 청와대에서 열린 회의에서 김 총재를 강한 어조로 비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은은 또 지난해 11월부터 주요 경제 현안에 대한 보고서를 이 대통령에게 정기적으로 보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의 독립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하는 대목이다.
대통령과 물가·통화 당국 수장들의 발언은 물가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최근 물가 상승의 성격상 정부로서도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는 것을 토로한 것이다. 1월과 2월 두 달 연속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4%를 넘은데 이어 앞으로도 한두 달은 4%대 물가 상승률이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정치 불안이 계속되면 유가가 추가로 상승하면서 물가 상승률이 5%대를 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당국자들이 어쩔 수 없다거나 자신의 책임은 아니라는 식으로 피해 갈 만한 상황은 아니다.
유승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