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5' 농협금융 생존 해법은] 은행·보험 주축…‘시장 안착’ 우선

미래 전략 핵심 포인트는

농협법 개정안이 드디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야 간 합의에 따라 상정된 농협법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의결된 후 본회의를 통해 발효됐다. 이로써 농협은 2012년 3월부터 농축산물의 유통과 판매를 관장하는 경제지주회사와 은행·보험·증권 등 신용 부문을 담당하는 금융지주회사로 나뉘게 된다.


농협의 ‘신·경(신용·경제) 분리’는 금융권 판도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은행 200조 원, 공제(보험) 30조 원 등 자산 규모만 230조 원에 이르는 대규모 금융지주사가 등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KB·우리·신한·하나 등 기존의 ‘빅4’ 체제가 농협 금융지주의 가세로 ‘빅5’ 시대로 접어들게 됐다.

농협의 사업 구조 개편 작업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건 2008년 10월 ‘농협 지속 성장을 위한 경영전략’ 연구가 진행되고 이듬해 사업 구조 개편 기본안 마련 작업이 시작되면서부터다.

별도의 자본금이 없이 신용 사업에서 자금을 빌려 많은 이자를 부담해야 했던 경제 사업의 만성적인 적자 구조는 구조 개편 논의를 불러온 시발점이었다. 경제 사업 부문의 차입금 이자는 2007년 1092억 원, 2008년 1073억 원, 2009년에는 1211억 원에 이르렀다.

신용 사업 역시 성장의 한계에 부닥친 것은 마찬가지다. 2007년 농협 신용 부문의 당기순이익은 1조4363억 원을 기록했지만 2년 뒤인 2009년 들어선 5209억 원으로 3분의 1이 날아갔다. 경쟁 금융 기업들이 과감한 인수·합병(M&A)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글로벌 투자에 매진하는 동안 농협은 변화하는 금융 환경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었던 셈이다.

현재 농협은 중앙회 조직을 축으로 교육지원·농업경제·축산경제·신용 부문으로 나뉘어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구조 개편이 마무리되면 중앙회를 축으로 경제지주와 금융지주로 나뉘게 된다.

금융지주는 자연히 자산 200조 원 수준인 농협은행이 주축이다. 은행을 중심으로 NH생명보험·NH손해보험·NH투자증권 등이 주축 자회사로 편입된다. 기존의 NH캐피탈·NH선물·NH-CA자산운용 등도 자회사로 들어가며 NH카드 부문은 중·장기적으로 분사 여부가 논의될 전망이다.

농협금융지주의 탄생은 ‘금융권 빅뱅’으로 불릴 만큼 그 위력이 상당할 전망이다. 지주사 전체의 자산 총액이 200조 원을 웃도는 수준이고, 여기에 은행·보험·카드 등은 이미 업계 수위권에 들 정도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말 기준으로 1158개에 이르는 전국 지점망은 은행·보험 등 각 금융 자회사별 시너지를 끌어낼 수 있는 최고의 인프라로 꼽힌다.

지주사 개편 이후에도 중앙회는 각 지주사의 지배권을 100% 보유하게 된다. 지주사와 이에 속한 자회사는 ‘농협’이라는 브랜드를 공유하면서 브랜드 사용료를 중앙회에 지급하고 중앙회는 이를 농·축산업 지원과 교육 사업 등에 활용할 방침이다.


NH은행

초기 농협의 은행 사업은 농민 지원 사업에서 시작됐다. 농업 정책 자금 등을 기반으로 한 농협은행은 일반 은행 부문이 성장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농협은행의 가장 큰 자산은 역시 전국에 실핏줄처럼 뻗어 있는 지점망, 즉 영업 네트워크다. 1158개에 이르는 숫자는 은행권 1위인 국민은행의 1138개를 훌쩍 뛰어넘는다. 농어촌 구석구석의 지역 본소까지 합치면 2500개에 육박한다.

농협이라는 브랜드 파워가 갖는 이미지도 농협은행의 힘이다. 한 번 거래를 시작한 후에는 거래처를 바꾸지 않는 고객의 충성도가 가장 높은 금융 기업 역시 농협이다. 무디스나 스탠더드앤드푸어스 같은 국제 신용 평가사는 2011년 2월 현재 농협의 신용 평가 등급을 각각 ‘A1’, ‘A’ 등 최상위로 설정한 상태다. 농협이 갖는 공익적 성격과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했을 때 국가 신용 등급과 같은 수준으로 평가한 것이다.

각 지역 지점을 바탕으로 서울과 수도권 지역까지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각 계열사들의 고객 정보를 공유한다면 단숨에 국민은행을 제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정책금융이 특화돼 있는 조직의 특성상 농협의 은행 부문은 수익성이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약점도 있다. 지난해 신한은행은 1조6484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해 은행권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에 비해 농협은행은 5662억 원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농협 관계자는 “현재는 신용 부문이 아니라 중앙회 차원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시중은행과의 직접적인 비교는 무리”라며 “지주사 설립 후에는 일반 은행과 동일한 구조의 재무구조를 갖추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은행이 지주사의 주력 자회사가 된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영업 방식을 한꺼번에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 때문에 농협 내부적으로도 공공 부문이나 기관 등 지금까지 강점을 보였던 부문에 대해선 중앙회와 협력 관계를 계속 유지할 방침이다.

농협 관계자는 “순수한 국내 자본으로 200조 원의 금융그룹이 처음 생긴다는 데 의의가 있다”라며 “본격적인 출범 후에는 상대적으로 영업 기반이 취약한 서울과 수도권 공략에 나서겠다”라고 말했다.

NH생명보험

사실 은행 외에 더욱 관심의 초점이 되는 곳은 보험이다. 현재 농협의 보험(공제) 부문 총자산은 2010년 말 현재 32조1761억 원에 이른다. 삼성·대한·교보생명 등 이른바 ‘빅3’ 바로 다음이고 수입 보험료도 7조5000억 원으로 업계 4위권이다. 전국적인 지점망을 통해 공격적인 영업에 나선다면 기존 보험사들의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시중 보험사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농협보험 출범에 따른 정책적 특혜 때문이다. 은행에서 특정 보험사의 상품을 25% 이상 팔 수 없게 한 방카슈랑스 규제를 5년간 유예받기 때문이다.

이 밖에 농협은행 및 단위조합을 금융회사 보험 대리점으로 인정하는 것, 점포당 모집 인원 2인 규제 및 아웃바운드 영업(점포 이외 장소에서 모집하는 행위) 허용, 공제상담사에게 2년 동안 보험 모집 자격을 부여하는 방안 등이 농협보험에 부여된 주요 특례다.

반면 기존 입법예고안에 들어 있던 방카슈랑스 유예 기간 10년은 5년으로 단축됐고 변액보험과 자동차보험 판매의 당국 허가 후 영업, 퇴직연금 5년간 판매 제한 등의 규제 장치도 마련됐다.

농협 측은 기존 보험사의 견제가 억지라는 입장이다. 공제 사업이 보험 사업으로 변신하면서 오히려 기존에 받았던 특혜들이 축소됐다는 것. 그동안 농협 공제는 보업업법이 아닌 농협업법의 적용을 받아왔다.

보험사 영업 채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설계사 비중이 약한 만큼 지점을 활용한 방카슈랑스의 원조 격이었던 공제 사업이 보험업법 적용을 통해 오히려 새로운 규제를 받게 됐다는 주장이다.

농협은 퇴직연금 사업 5년 유예 규제를 ‘변액보험’ 판매를 통해 돌파한다는 구상이다. 농협 금융구조개편본부 보험전략팀 이재근 차장은 “구체적인 상품과 전산화 작업 등 인프라가 구축되는 대로 판매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지주 개편 작업이 1년 이상 걸릴 것을 감안한다면 법인 설립 직후부터 변액보험 판매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변액보험은 생보 업계의 주력 상품 가운데 하나다. 설계사 기반이 약한 NH생보가 초기 사업 확장을 위해 설계사 영입에 나서면 업계 인력 쟁탈전도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손해보험

농협의 공제 사업에서 손해보험 부문의 수입보험료는 5678억 원에 불과하다. 공제 전체로 보면 7.6% 수준이다. 하지만 생보사 못지않게 손보사들도 농협보험의 등장에 잔뜩 긴장하고 있다.

당장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생보 영업에 집중하겠지만 이후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신규 사업 진출 측면에서 봤을 땐 오히려 손보 업계에 더 큰 영향을 미치리라는 전망 때문이다. 손보 영업력이 강화될수록 중소형 손보사들을 중심으로 시장점유율을 잠식해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해 이재근 차장은 “당장 손해보험에 대한 어떠한 신규 계획도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더욱이 손해보험은 자동차보험이 주력 시장이 될 수밖에 없는데, 현재 자동차보험 시장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농협 내부적으로는 ‘전국적인 자동차보험 조직을 구성해야 하는 비용 구조를 따져보면 적자가 거의 확실하다’는 판단이 서 있는 상태다. 농협보험으로 분류되는 농작물재해·농기계·가축보험 등은 현행대로 유지하되 신규 사업 진출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진하겠다는 것이 NH손해보험의 전략이다.

생보와 손보를 망라하고 농협보험이 업계를 긴장시키는 또 다른 ‘히든카드’는 ‘보험료 인하’다. 농협은 “지금도 인하된 상품을 팔고 있는데, 보험사 출범 후에도 이를 그대로 가져가는 것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7~8%에 이르는 보험료 인하 정책은 기존 보험사들엔 파격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몇몇 특례와 영업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농협보험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HMC투자증권 박윤영 연구원은 “변액보험과 자동차보험은 당국의 인가가 필요하고 퇴직연금 5년 유예 규제, 신·경 분리 시기가 일러야 내년 3월인 점 등을 고려하면 보험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당분간 미미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저가 보장형 상품이나 저축형 상품 판매 위주 전략은 중소형 생보사들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도 있다. 농작물재해보험 등과 같은 재난보험 시장이 제도권 내에서 확대될 수 있는 가능성은 손해보험 시장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기타 자회사

은행과 보험 부문을 제외한 주요 금융지주 자회사는 NH투자증권(총자산 3조1600억 원), NH-CA자산운용(수탁액 9조8000억 원), NH투자선물(예탁 자산 523억 원), NH캐피탈(대출 자산 7512억 원) 등이다.

NH투자증권 역시 농협중앙회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안정적 이익 기반을 확보하고 있다. NH증권은 채권시장에서 자본 규모 대비 월등한 시장 지배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NH투자증권의 채권 관련 이익은 117억 원(2010년 2분기 기준)으로, 당기순이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5.3%에 이른다. 2010 회계연도 예상 자기자본이익률(ROE)은 11.9%에 달해 중형사 중 최상위권이다.

약점도 있다. 리테일 부문이다. 증권사는 보험업과 마찬가지로 인적 네트워크 구성이 중요한데, 현재 이 부문이 NH투자증권의 가장 큰 취약점이다. 지주사 개편 후 ROE 증가 등 경영 성과가 나타나면 당연히 투자를 늘린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다.

선물·자산운용·캐피탈 등은 설립 초기의 인큐베이팅 단계다. 농협 금융구조개편부 금융총괄팀 김강훈 차장은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된 후 시장의 판도 변화에 따라 포지셔닝을 정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적은 인원으로 흑자를 내고 있는 만큼 향후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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