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운명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바꾸는 것

‘킹스 스피치’

1939년 조지 5세의 아들 앨버트 왕자(콜린 퍼스 분)에겐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일상생활에선 문제없지만 사람들 앞에만 서면 말을 더듬는다. 그때는 막 라디오가 보급된 시기, 왕실의 권위는 방송 전파를 타고 영국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때였다.

앨버트는 아내 엘리자베스(헬레나 본햄 카터 분)와 괴짜 언어 치료사 라이오넬 로그(제프리 러시 분)의 도움을 받지만 전진과 좌절을 되풀이한다. 게다가 아버지 조지 5세가 숨을 거두고 형 에드워드 8세(가이 피어스 분)가 심슨 부인과의 사랑 때문에 왕위를 포기하자 앨버트는 원하지 않지만 조지 6세에 즉위한다.


‘킹스 스피치’는 비밀스러운 왕실에 속한 개인을 들여다본다는 관음증적 재미뿐만 아니라 말더듬증이 억압된 성장기를 거친 이들에게 후천적으로 생기는 증후일 수 있다는 것을 일깨운다.

부모의 품에 안겨 따뜻한 사랑을 받기보다 유모와 가정교사의 손에서 예의범절부터 배우며 자라난 조지 6세는 단지 로열 패밀리라는 이유로 왼손잡이에서 오른손잡이로 전향해야 했다. 안짱다리에 보철을 대어 쭉 폈고 부모 형제간의 갈등을 감히 누구에게 터놓고 고백할 수도 없었다.

그는 모든 고민을 혼자 짊어지고 가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러나 그가 문명의 발달 때문에 국민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들려줘야 하는 시기에 맞닥뜨렸을 때, 그는 도망치지 않고 왕위를 성실하게 받아들이며 마침내 “나도 말할 수 있으니까!”라는 절박한 외침에 스스로 답하게 된다.

더욱이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국민들의 단합을 호소하는 클라이맥스에서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는 감동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조지 6세는 개인적인 두려움을 떨쳐버린 채 뛰어난 연설로 관중을 사로잡았던 히틀러의 광기에 맞서 국민들에게 말을 건다.

그는 전쟁의 참화로부터 비켜간 안전한 곳에 숨지 않았고 기꺼이 국민들과 같은 위치에서 싸우기로 맹세한다. 그리고 국민들은 조지 6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중간급 규모의 제작비를 들여 만들어진 이 영화에서 코스튬 드라마에 기대하는 호사스러운 비주얼은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콜린 퍼스라는 탁월한 배우가 조지 6세의 내면 깊숙이까지 침잠해 들어가는 놀라운 연기, 심리 묘사의 스펙터클이 펼쳐진다. 2011년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각본상·남우주연상을 휩쓴 화제작.


달빛 길어올리기

7급 공무원 필용(박중훈 분)은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내 효경(예지원 분)의 수발을 들며 비루하게 살고 있다. 그는 새로 부임한 상사가 한지에 관심이 있는 걸 알고 승진을 위해 시청 한지과로 전과한다.

필용은 ‘조선왕조실록’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전주사고 보관본을 전통 한지로 복원하는 계획에 동참하고 한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는 지원(강수연 분)과 미묘한 관계를 형성한다.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영화.


카무이 외전

닌자의 법도에 따라 카무이(마쓰야마 겐이치 분)는 자신을 쫓는 다른 닌자들과 끝없이 싸워야만 한다. 우연히 영주를 피해 달아나던 어부 한베이의 목숨을 구하고 그 가족과 함께 지낸다.

외딴섬에 정착한 카무이는 처음으로 타인에게 마음을 여는 법을 배우고 어렴풋한 사랑에도 빠진다. 하지만 추격 닌자들의 마수가 섬까지 뻗쳐오기 시작한다. 재일 한국인 2세이자 일본의 거장 반열에 오른 최양일 감독의 신작.


굿모닝 에브리원

지방방송국 PD 베키(레이첼 맥애덤스 분)는 해고된 뒤 어렵게 메이저 방송국 IBS에 취직한다. 그녀가 맡은 프로는 동시간대 시청률 최저를 기록하는 모닝쇼 ‘데이 브레이크’.

무슨 짓을 해서라도 시청률을 올리라는 상사의 명령 앞에 그녀는 전설적인 시사 앵커 마이크 포메로이(해리슨 포드 분)를 영입하지만 곧바로 자신의 선택이 실수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방송국 버전.


김용언 씨네21 기자 eun@cine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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