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점포 잇따라 폐쇄…인플레가 발목 잡아

까르푸와 베스트바이가 코너 몰린 이유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외국계 유통 업체. 세계 2위 할인점 운영 업체 프랑스 까르푸에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세계 최대 가전 유통 업체는 미국의 베스트바이다. 이 두 업체가 중국에서 위기에 직면했다.

까르푸는 1995년 중국 진출 이후 처음으로 매장 문을 대거 닫았고, 베스트바이도 중국에서 독자 브랜드 간판 매장 문을 일제히 닫기로 했다. 중국의 성장 동력이 수출과 투자에서 소비로 옮겨가고, 이 때문에 중국의 내수 시장을 공략하는 외국계 유통 업계에 커다란 비즈니스 기회가 오고 있다는 통념을 깨는 행보다. 도대체 지금 중국의 유통시장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YONHAP PHOTO-2473> A customer waits outside a closed Best Buy Co. store in Shanghai, China, on Tuesday, Feb. 22, 2011. Best Buy, the world's largest consumer electronics retailer, said it will close its nine Best Buy branded stores in China and two in Turkey and restructure operations in those markets. Photographer: Kevin Lee/Bloomberg /2011-02-22 21:19:09/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세상에 영원한 비즈니스 모델은 없다

중국의 대문호 루쉰(魯迅)의 고향인 저장성의 샤오싱. 까르푸가 이곳에서 유일하게 운영해 온 매장 영업을 5월 1일 이전에 중단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린성 창춘에 있는 까르푸 매장도 최근 재고 쌓는 것을 중단해 곧 문을 닫을 것임을 예고했다.

글로벌타임스 등 중국 언론들이 최근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외국계 유통 업체로 꼽히는 프랑스 까르푸가 2개 매장을 추가로 폐쇄할 것이라며 보도한 내용이다. 창춘 매장은 면적이 8000㎡로 창춘에서 두 번째로 큰 까르푸 매장이다. 문을 닫게 된 샤오싱과 창춘 매장 모두 2년여 전 문을 열었다.

이로써 지난해 7월 이후 까르푸가 문을 닫는 중국 매장은 6곳으로 늘어난다. 까르푸가 1995년 중국에 진출한 이후 16년 만에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점포 문을 닫은 것은 처음이다. 폐쇄된 까르푸 점포는 다롄·시안·자오쭤·포산 등 중국의 전역에 걸쳐 있어 일부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까프루의 점포 확장 속도도 크게 둔화됐다. 2007년에만 중국 전역에 112개의 매장이 문을 열었지만 지난해엔 30여 개에 그쳤다.

위기에 몰린 까르푸 중국 사업은 세상에 영원히 통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없다는 것을 확인해 준다. 중국에서의 사업 여건이 바뀌면서 과거 성공 모델이 더 통하기 힘들게 됐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얘기다. 까르푸는 중국에서 182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외국계 유통 업체 중 가장 많다.

하지만 최근 중국에서 사회문제로까지 불거지고 있는 인플레이션이 까르푸의 발목을 잡았다. “까르푸는 중국에서 높은 입점료와 판매 수수료로 많은 이익을 내왔다.”(화룽증권 리전위 애널리스트) 문제는 중국 당국이 인플레를 억제하기 위해 유통 업체에 가격 동결 압박을 가한 반면 공급 업체들은 원자재 가격 상승을 이유로 납품 가격 인상을 요구하면서 유통 업체들의 마진이 줄어들게 됐다는 데 있다.

지난해 말 중국 최대 라면 업체인 캉스푸는 10% 가격 인상 요구를 까르푸가 거부했다는 이유로 납품을 일시 거부하기도 했다. 중량그룹이 식용유 납품을 거부한 것도 마찬가지다.

정부와 여론은 유통 업체의 과도한 입점료를 문제 삼았고 까르푸가 타깃이 됐다. 중국 상무부의 야오젠 대변인은 까르푸의 사례를 들며 유통 업체의 입점비 등에 대한 규범을 만들기로 했다고 밝혔다. 광저우일보는 까르푸의 입점비 문제를 계기로 입점비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중국 상무부 등 5개 부처가 2006년 말 공동으로 유통 업체와 공급 업체의 공정거래 관리 방법을 발표하면서 유통 업체의 입점비를 금지했고 2008년 4월 국가공상총국이 유통 업체의 판촉 행위를 규범하는 규제를 만들었지만 유통 업체가 규정을 위반하며 입점비를 챙기는 관행이 여전하다고 지적한 것. 공급 업체가 20만 위안(3400만 원)을 부담하지 않으면 할인점 진열대에 올라가기도 힘든 게 현실이라는 볼멘소리도 터져나왔다.

왕셴칭 광둥경영대학원유통경제연구소장은 “유통 업체와 공급 업체는 같은 부가가치 사슬에 있기 때문에 윈-윈 관계”라며 “유통 업체가 입점비를 받는 것에 반성 해야 공급 업체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까르푸는 고수익을 보장해 온 입점료와 판매 수수료를 내릴 수밖에 없게 됐고, 이는 채산성이 떨어지는 매장에 대한 구조조정을 가속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지적이다.

소비자 권익이 강화되는 추세를 읽지 못하고 가격 조작 관행이 부각된 것도 문제로 꼽힌다. 지난 2월 중국 내 11개 까르푸 매장이 원가를 속이거나 표시된 가격보다 비싸게 제품을 팔았다는 이유로 최고 50만 위안의 벌금을 부과받은 것. 더욱이 3월 초엔 가격 시비가 붙은 고객을 경비원이 폭행한 사실까지 중국 언론에 보도돼 반(反)까르푸 정서가 형성됐다.

성장보다 분배에 무게를 두기 시작한 중국 거시 정책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것도 까르푸 성공 모델의 한계를 보여준다. 가격 조작 관행이 불거진 시점에 관영 신화통신은 까르푸의 노동 착취를 문제 삼고 나섰다.

상하이 20개 까르푸 매장에서 근무하는 6000명의 근로자들 임금이 1998년 이후 거의 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같은 기간 상하이 근로자들의 평균 임금은 3배 올랐다.

중국에서 까르푸에만 가면 살 수 있는 물건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까르푸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주요인으로 꼽힌다. 까르푸 진출 초기만 해도 까르푸의 매력이 강했지만 중국 토종 기업은 물론 외국계 유통 업체들이 매장을 공격적으로 확대하면서 까르푸 물건의 차별화가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베스트바이는 최근 중국명 ‘바이스마이(百思買)’ 간판을 단 매장 9개 전부와 상하이에 있는 중국 본부를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쑤저우와 항저우에 새 매장을 열었던 베스트바이 중국 사업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중국 언론들은 세계 1위의 가전 유통 업체가 중국 현지화에 실패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베스트바이는 그러나 완전 철수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2006년 인수한 중국 유통 업체 우싱전기의 매장을 2012년까지 50여 개 추가하는 식으로 진출 전략을 바꾼다는 것이다.

이마트·롯데마트 역시 자유롭지 못해

베스트바이의 어려움은 후발 주자의 핸디캡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2003년 상하이에 사무소를 연 베스트바이는 2007년 첫 매장을 오픈했다. 까르푸나 월마트에 비해 10년이나 뒤진 출발이었다.

문제는 가전 유통 업종에선 쑤닝과 궈메이와 같은 중국의 토종 대기업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데 있었다. 중국 최대 온라인 소비자 가전 쇼핑몰 ALL3C.COM의 줘잉제 총경리(CEO)는 “베스트바이가 중국에서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늦은 확장 속도”라고 지적했다. 베스트바이가 5년 전 인수한 우싱전기는 당시 136개이던 매장이 지금은 168개로 늘어나는데 그쳤다. 반면 쑤닝은 지난해에만 200개 매장을 새로 열었다.

외국 기업이기 때문에 중국 공급 업체와의 가격 협상에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가격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규모의 경제’를 갖추지도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중국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온라인 쇼핑 문화도 후발 주자로서 자리 잡기 힘들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베스트바이의 납품 체계도 중국에선 불리하게 작용됐다. 우선 물건을 사면서 공급 업체에 대금을 치른 뒤 매장에서 판매해 왔다. 반면 쑤닝과 궈메이는 공급 업체로부터 제품을 납품받은 뒤 대금 지급 시기를 뒤로 미뤄 상대적으로 베스트바이에 비해 자금 부담이 적은 전략을 구사해 왔다.

까르푸와 베스트바이가 중국에서 직면한 도전에 이마트와 롯데마트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해 11월 이마트의 한 중국 매장에서 보존 기한이 지난 한국 된장을 매입한 소비자의 불만을 미숙하게 처리한 것을 중국질량신문망 등이 보도한 게 대표적이다.

롯데마트 역시 기존 업체와 차별화되는 상품이 많지 않아 성장에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베이징 왕징에 있는 까르푸 매장 건너편에 뒤늦게 운영을 시작한 롯데마트 점포는 까르푸에 비해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는데 실패했다는 평을 듣는다. 중국의 성장 방식 변화와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하는 치열한 경쟁이 현지 진출 외국계 유통 업체에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오광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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