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직의 재발견] ‘걸어 다니는 지점’…자산관리 ‘핵’

금융권 PB 영업이 뜬다

금융권의 ‘귀하신 몸’은 초고액 자산가들이다. 이들이 가진 막대한 자산은 금융사의 수익성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한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10억 원 이상 자산가는 약 12만 명으로 이들이 보유한 자산은 270조 원이나 된다.

이는 전체 개인 금융자산 2100조 원의 10%가 넘는 규모다. 게다가 고액 자산가들은 금융시장 동향에 민감하고 기타 일반 투자자들 재테크의 바로미터가 된다는 점에서도 이들 시장에 대한 선점이 전체 자산관리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액 자산가들을 ‘모시는’ 프라이빗뱅커(PB)들의 몸값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실제로 유능한 PB들은 수천억 원대의 고객 돈을 관리하며 ‘걸어 다니는 지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따라 PB 관련 업무를 맡으려는 영업 파트 직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증권업계는 성과급이 적용돼 타 직원들보다 높은 보수를 받을 수 있으며 은행업계는 국내외 연수 등의 인센티브나 인사 등에서 가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한다고 누구나 PB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각 금융사의 PB가 되기 위해서는 치열한 선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례로 하나은행의 PB 선발 과정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하나은행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연 2회 공모해 PB를 선발한다. 선발은 마치 신입 사원을 뽑듯 자기소개서와 자격증 등을 통한 1차 서류 심사를 거친 뒤 2차 심층 면접을 통해 이뤄진다.

이렇게 선발된 인원은 ‘예비 PB’로 분류되며 현업에 종사하면서 PB가 되기 위한 교육을 병행한다. 교육과정을 마치고 평가를 통과하면 비로소 PB로 데뷔할 수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이게 끝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나은행 PB는 자산 1억 원 이상을 관리하는 VIP PB와 자산 30억 원 이상을 관리하는 골드 PB로 나뉜다. 즉 메이저리거 골드 PB가 되기 위해서는 VIP PB들 간에도 경쟁을 거쳐야 한다.

신한은행은 은행 내 공모(필기시험·면접 등)를 통해 예비 PB 팀장과 주니어 PB 팀장을 선발하고 이들을 예비 PB 풀(pool)로 활용한다. 이들은 금융 전문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금융연수원·국제재무설계사(CFP)·자산관리상담사·마켓리더 등의 교육을 받는다. 이들 중 역량이 갖춰지면 일선 PB센터의 PB로 발탁된다.


‘업계 내 위상 더 높아질 것’

우리은행은 아예 2009년 금융권 최초로 PB 양성 전문 교육과정인 ‘PB사관학교’를 만들었다. PB를 체계적으로 양성해 최고 PB 서비스를 위한 영업 기반을 다지려는 의도다. PB사관학교에서 자산관리 기법을 체계적으로 배운 졸업생들은 ‘PB MBA’, ‘스타 PB’ 과정을 거쳐 재무 설계 전문가로 양성되고 현장에서 고객들과 만난다. 1기 PB 사관학교의 경쟁률은 20 대 1에 달했다.

앞으로 금융사에서 PB의 위상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유는 아직 국내 PB 영업이 걸음마 단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직 국내 PB 영업은 수익증권·방카슈랑스 등 금융 상품 판매를 중심으로 수익을 내고 있으며 이런 가운데 고객과의 관계(relationship) 유지를 위해 각종 라이프 케어 서비스, 세무·법률·부동산 상담 등 비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중점을 두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유럽과 미국 등 금융 선진국은 투자 일임(자문), 패밀리 오피스(가문 자산관리 서비스) 등을 통해 종합 자산관리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PB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다. 상품 판매 수수료에 의존하는 국내 PB와 달리 해외의 PB는 관리하는 자산에 기반한 수수료 수익을 추구한다.

PB 영업으로 유명한 UBS와 HSBC 등은 투자 자문, 일임형 포트폴리오 계좌 관리, 투자 컨설팅 등의 부문에서 ‘자산 규모의 일정 비율’을 ‘연간 수수료’ 형태로 받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국내서도 작년 말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자문형 랩’의 등장을 시작으로 투자 자문 형태의 서비스가 조금씩 도입되고 있다. 한 증권사의 PB는 “기존의 PB가 관계 관리 영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점차 자산관리 영업 중심으로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면서 “향후 PB의 전문성이 더 중시되면서 업계 내 위상도 지금까지와는 차원을 달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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