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를 배려해 약자가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고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주장이지만 이를 맹목적으로 따르면 자칫 우리 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막을 수 있다.
재산이든 지식이든 혹은 신앙이든 가진 것이 서로 평등하지 않은 사회에서 서로 더불어 사는 이상적인 모습은 어떤 것일까.사도 바울이 기술한 신약성경의 ‘고린도전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과연 이렇게 하는 것이 더불어 사는 사회의 이상적인 모습일까. 의무교육 현장에서 전면 무상 급식을 주장하는 진보주의자들은 형편이 어려운 집 아이들에게만 무상 급식을 하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집 아이들에게는 유상으로 급식을 하면 어려운 집 아이들이 마음에 수치심과 상처를 입게 되니 전면적인 무상 급식을 하자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일견 인간적이고 그럴듯해 보이지만 우리 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막을 수 있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것은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한정된 자원을 보다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데 왜 형편이 괜찮은 집 아이들의 급식에 사용해 자원의 효율성을 저해하느냐는 항변보다 더 심각하고, 전면적인 무상 급식은 결국 세금을 인상할 수밖에 없어 국민들의 부담을 늘릴 것이라는 주장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약자를 배려해 약자가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고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주장이지만 이를 맹목적으로 따르면 자칫 우리 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막을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약자와 강자가 더불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서로 평등한 모습을 가져야 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주장은 기회의 평등을 넘어서 결과의 평등을 원하는 것이다.
기회의 평등만 주어지면 되지 결과의 평등까지 바라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지만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더라도 우리가 선택한 자유시장주의 하에서 일단 시장 원리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사람의 능력과 자질의 차이, 환경과 기회에 따라 결과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시장주의를 따르면서도 결과의 차이 혹은 불평등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 세상은 사람 살맛이 날 수도 없고 발전할 수도 없다. 돈 있는 사람은 돈이 없어 함께하지 못하는 이웃을 배려해 모든 걸 참고 자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돈이 있더라도 골프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배려해 골프도 자제해야 하고 돈이 없어 해외여행을 못하는 이웃을 생각해 해외여행도 자제해야 한다.
진보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는 상처받을 약자를 위해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하고 들어가더라도 조심해서 다녀야 한다. 스포츠나 예술, 혹은 문학에 훌륭한 재능이 있더라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조심해서 자기의 재능을 나타내야 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돈이 있다고 한들, 훌륭한 재능이 있다고 한들, 뛰어난 지식이 있다고 한들 무슨 재미로 살겠는가. 아니 나아가 그렇다면 무슨 재미로 돈을 벌려고 노력하겠는가. 무슨 이유로 서울대와 같은 명문대에 진학하려고 애를 쓰고, 무슨 동기로 스포츠나 예술이나 문학의 힘든 수련 과정을 마치겠는가. 이런 사회가 도대체 어떻게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겠는가.
나는 사람들이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복지는 궁핍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하고, 명예는 그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 정치적인 힘은 도덕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직책은 적임자들에게, 사치품은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능력과 의향이 있는 사람들에게, 신의 은총은 독실한 사람들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면적 무상 급식을 통해 없는 집 아이들의 상처를 감싸고 보듬어 주려는 마음은 갸륵하지만 그것으로 엄연히 존재하는 불평등한 현실을 호도하고 감춘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어려운 집 아이들에 대한 무상 급식을 통해 그들이 스스로 자기들이 처한 곤란한 상황을 서서히 직시하고 보다 행복한 미래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도록 깨우치고 격려하는 것이 오히려 더 교육적이다. 어린이들로 하여금 분발해서 노력하도록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야말로 참교육이다.
박상수 경희대 경영대학원장·한국재무학회장
1954년생. 77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86년 미국 시카고대 경영학 석사·박사. 90년 미국 뉴욕주립대(버팔로) 조교수. 95년 경희대 경영대 교수(현). 2001년 기획예산처 연기금투자풀 운영위원(현). 2009년 경희대 경영대학원장(현).
재산이든 지식이든 혹은 신앙이든 가진 것이 서로 평등하지 않은 사회에서 서로 더불어 사는 이상적인 모습은 어떤 것일까.사도 바울이 기술한 신약성경의 ‘고린도전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과연 이렇게 하는 것이 더불어 사는 사회의 이상적인 모습일까. 의무교육 현장에서 전면 무상 급식을 주장하는 진보주의자들은 형편이 어려운 집 아이들에게만 무상 급식을 하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집 아이들에게는 유상으로 급식을 하면 어려운 집 아이들이 마음에 수치심과 상처를 입게 되니 전면적인 무상 급식을 하자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일견 인간적이고 그럴듯해 보이지만 우리 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막을 수 있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것은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한정된 자원을 보다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데 왜 형편이 괜찮은 집 아이들의 급식에 사용해 자원의 효율성을 저해하느냐는 항변보다 더 심각하고, 전면적인 무상 급식은 결국 세금을 인상할 수밖에 없어 국민들의 부담을 늘릴 것이라는 주장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약자를 배려해 약자가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고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주장이지만 이를 맹목적으로 따르면 자칫 우리 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막을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약자와 강자가 더불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서로 평등한 모습을 가져야 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주장은 기회의 평등을 넘어서 결과의 평등을 원하는 것이다.
기회의 평등만 주어지면 되지 결과의 평등까지 바라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지만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더라도 우리가 선택한 자유시장주의 하에서 일단 시장 원리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사람의 능력과 자질의 차이, 환경과 기회에 따라 결과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시장주의를 따르면서도 결과의 차이 혹은 불평등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 세상은 사람 살맛이 날 수도 없고 발전할 수도 없다. 돈 있는 사람은 돈이 없어 함께하지 못하는 이웃을 배려해 모든 걸 참고 자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돈이 있더라도 골프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배려해 골프도 자제해야 하고 돈이 없어 해외여행을 못하는 이웃을 생각해 해외여행도 자제해야 한다.
진보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는 상처받을 약자를 위해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하고 들어가더라도 조심해서 다녀야 한다. 스포츠나 예술, 혹은 문학에 훌륭한 재능이 있더라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조심해서 자기의 재능을 나타내야 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돈이 있다고 한들, 훌륭한 재능이 있다고 한들, 뛰어난 지식이 있다고 한들 무슨 재미로 살겠는가. 아니 나아가 그렇다면 무슨 재미로 돈을 벌려고 노력하겠는가. 무슨 이유로 서울대와 같은 명문대에 진학하려고 애를 쓰고, 무슨 동기로 스포츠나 예술이나 문학의 힘든 수련 과정을 마치겠는가. 이런 사회가 도대체 어떻게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겠는가.
나는 사람들이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복지는 궁핍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하고, 명예는 그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 정치적인 힘은 도덕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직책은 적임자들에게, 사치품은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능력과 의향이 있는 사람들에게, 신의 은총은 독실한 사람들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면적 무상 급식을 통해 없는 집 아이들의 상처를 감싸고 보듬어 주려는 마음은 갸륵하지만 그것으로 엄연히 존재하는 불평등한 현실을 호도하고 감춘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어려운 집 아이들에 대한 무상 급식을 통해 그들이 스스로 자기들이 처한 곤란한 상황을 서서히 직시하고 보다 행복한 미래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도록 깨우치고 격려하는 것이 오히려 더 교육적이다. 어린이들로 하여금 분발해서 노력하도록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야말로 참교육이다.
박상수 경희대 경영대학원장·한국재무학회장
1954년생. 77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86년 미국 시카고대 경영학 석사·박사. 90년 미국 뉴욕주립대(버팔로) 조교수. 95년 경희대 경영대 교수(현). 2001년 기획예산처 연기금투자풀 운영위원(현). 2009년 경희대 경영대학원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