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IT 기업 유치 총력…자원 의존형 탈피

러시아판 실리콘밸리 ‘스콜코보’

최근 러시아 언론이 연일 스콜코보(Skolkovo)와 관련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스콜코보와 관련된 기사에는 ‘러시아판 실리콘밸리’, ‘러시아 경제 현대화의 동력’, ‘러시아 테크노 허브’라는 단어가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도대체 스콜코보가 어떤 곳이기에 이처럼 러시아 언론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일까. 정식 명칭은 ‘스콜코보 혁신센터’다. 스콜코보 혁신센터는 모스크바 시내에서 서쪽으로 약 30km 떨어져 있는데 행정구역상으로는 모스크바 주에 속해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5월 러시아 경제 현대화 정책을 천명하고 자신을 위원장으로 한 대통령 직속 경제현대화기술발전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스콜코보 혁신센터 설립이 추진됐다. 이 위원회는 5대 핵심 산업으로 에너지 효율화·정보통신·우주·원자력·의료산업을 선정하고 2015년까지 35억 달러를 투자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러시아 경제 현대화 프로그램의 핵심인 이 첨단 기술 단지에는 에너지·정보기술(IT)·전자통신·생물의학·원자력 기술 등 5개 부문 관련 연구·교육 시설과 벤처기업이 집중적으로 들어설 예정이다. 러시아 정부는 이 사업을 위해 1단계로 정부 예산 3억5000만 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스콜코보 혁신센터를 건설하기 위해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빅토르 베크셀베르그 레노바그룹 회장과 크레이그 배럿 인텔 전 최고경영자(CEO)를 공동 추진위원장으로 임명하고 조레스 알페로프 박사와 2006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미국 스탠퍼드대 로저 D 콘버그 교수를 과학기술부문 공동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2015년까지 35억 달러 투자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해외 순방길에 거의 예외 없이 방문국 기업인들과의 자리를 마련하고 스콜코보 혁신센터에 대한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현재 핀란드 통신 업체 노키아, 독일 지멘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 등 글로벌 기업들의 입주가 확정됐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2010년 6월 미국 실리콘밸리를 방문했을 때 자신의 트위터에 ‘러시아는 누구에게든 예측할 수 있는 사업 파트너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정부의 역할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실리콘밸리가 없다. 돈을 현명하게 써야 한다’고 올릴 정도로 스콜코보 혁신센터 설립의 필요성을 강하게 피력하기도 했다.

러시아 정부가 이처럼 혁신센터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바로 러시아 경제의 현대화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1990년 초반 구소련 해체 후부터 지금까지 천연자원을 기반으로 경제가 성장해 왔다.

1997년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경제 위기를 겪었지만 2000년 이후 러시아는 연평균 경제성장률 6.5%를 기록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2008년 4분기부터 시작된 글로벌 금융 위기에 따라 유가 급락과 외국인 투자 자본의 이탈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결국 2009년 경제성장률 마이너스 7.9%라는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경험했다.

그러나 2010년 들어 석유 수요가 증가하고 원유 공급이 감소하면서 완만하던 국제 유가의 상승 속도가 빨라져 러시아의 수출 증가세가 확대됐다.

러시아는 경제지표가 말해주듯 천연자원 부문이 수출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자원 의존형 경제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러시아 경제가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원 의존형 경제구조에서 탈피해야 한다며 스콜코보 혁신센터의 성공에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그동안 러시아는 표면적으로 자원 개발 기업들에게 비교적 우호적인 조세 환경을 제공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러시아 정부는 재정 적자가 정부의 목표치인 5%를 훨씬 웃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5.9%에 이르자 세금 인상을 통해 재정 수입을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러시아 정부는 우선 에너지 자원 기업들에 대한 세금을 인상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 재무부는 그동안 면세 혜택을 주던 동시베리아산 원유에 대해 2010년 7월 말부터 수출세를 45% 인상했다. 반면 정부의 재정 적자에도 불구하고 첨단 산업 분야에서는 감세 정책을 새롭게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 연방의회는 2010년 9월 28일 ‘스콜코보 혁신센터에 관한 연방법률’을 제정했다. 이 법률은 스콜코보 혁신센터의 설립 및 개발, 입주 기업 및 거주민들에 대한 거주 시설 제공 등을 규정한 스콜코보 혁신센터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한 특별법이다.

스콜코보 혁신센터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러시아 정부는 컨트롤 타워 성격의 운영 회사를 설립해 이 회사에 스콜코보 혁신센터의 전반적인 건설, 행정, 인·허가, 연구 활동 지원, 각종 사업 관련 용역 제공, 세관 업무, 치안, 주민 복지 등의 권한을 부여하는 한편 프로젝트 부지의 소유권까지 제공했다.

이 법률에 따르면 스콜코보 혁신센터에 입주하는 기업들은 현행 러시아법령이 규제하고 있는 각종 요건들의 적용을 받지 않고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기업들이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할 때 이민청으로부터 받아야 했던 채용 허가서가 필요 없으며, 매년 러시아 연방정부가 정하는 노동 허가 쿼터에 따른 허가도 적용되지 않는다.

초청장 및 노동 허가 관련 업무를 스콜코보 혁신센터 운영회사로 이관하고, 노동 허가 기간도 최대 3년까지 허용되며 지속적인 기간 연장도 가능하다.

한국 IT 기업에 투자 ‘손짓’

또 스콜코보 혁신센터에 관한 연방 법률 제정과 함께 러시아연방 조세법이 함께 개정됐다.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10년간 스콜코보 혁신센터에 입주하는 기업들에 10년간 부가가치세를 면제해 주는 것이다.

다만, 한 해 매출이 10억 루블(약 3억1962만 달러)을 초과하고 영업이익이 3억 루블(약 9588만 달러)을 초과하면 부가가치세가 부과된다. 러시아의 부가가치세 세율이 18% 수준임을 고려하면 러시아 정부가 매우 진보적인 정책을 내놓은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2010년 한국과 러시아 간의 무역량은 약 160억 달러를 초과하였다. 한국이 2010년에 러시아에 투자한 자본은 총 6억 달러를 넘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표에도 불구하고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4강 국가들과의 교역 규모를 비교해 보면 러시아와의 교역 규모는 아직 초라한 수준이다.

현재까지 국내 기업과 정부는 러시아를 자원 공급 파트너로서만 인식하고 접근했다. 다행히 최근 러시아의 인프라 현대화 사업에 국내 기업들이 참여해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 정부는 스콜코보 혁신센터에 많은 글로벌 외국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IT 산업이 발달한 한국 기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러시아 정부 관계자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스콜코보 혁신센터는 러시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혁신적인 도시이며 야심 찬 계획을 갖고 있는 도시라고 밝히고 있다. 초기 단지 조성 단계에서 적극적으로 한국 기업들이 진출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러시아는 더 이상 자원 부국으로만 불리기를 원하지 않는다.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원천 과학 기술을 보유한 러시아가 외국 파트너들과 협력해 상업화 능력을 갖춤으로써 혁신적인 경제 체제로 전환되기를 바라고 있다.

스콜코보 혁신센터가 제 모습을 갖추고 필요한 연구 인력이 입주하는 데에는 앞으로 5~7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이 시기에 러시아 시장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및 유럽 시장을 바라보고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아직 모든 것이 틀이 잡히지 않았을 때 적극적으로 참여한 기업이나 국가를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승민 법무법인 지평지성 러시아 변호사

모스크바 국립국제관계대학교(MGIMO) 국제법학부ㆍ법학석사ㆍ국제법 박사(국제환경법). 법무법인 지평지성 러시아 변호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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