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철의 투자X파일] 우리 경제와 기업에 자신감을 가져야

한국 증시의 재평가, 이렇게 보자

오르는 주식과 오르는 시장은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이유가 없으면 그 이유를 만들어 나간다. 최근 한국 주식시장의 재평가(Rerating)에 관한 언급이 부쩍 많아졌다. 일견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왜 하필 코스피지수 2000이 넘은 시점에 와서야 ‘재평가’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 좀더 일찍 리레이팅을 외쳐서 불안에 떠는 개미 투자자들에게 길잡이가 돼 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흔히 주식시장의 재평가는 기업들의 실적 모멘텀이 둔화되고 더 이상 실적에 기댄 주가 상승이 부담스러운 국면에서 추가 상승을 외치기 위해 도입되는 구실이다. 다시 말해 실적은 둔화되지만 가치 대비 주가 수준이 낮으니 더 올라도 된다는 위무(慰撫)의 논리다.

지난해 우리 기업들의 주당순이익(EPS) 증가율은 30%를 넘었다. 올해에는 그 증가율이 11%에도 못 미칠 상황이다. 이러다 보니 실적의 성장성을 믿고 투자하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자연히 현재의 주가 수준이 상대적으로, 또는 절대적으로 부담스러운지 살펴보는 것이 당연하다.

다행히 우리 주식시장의 주가수익률(PER)은 9.9배로 세계 평균인 13.5배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평균 12.9배에 비해서도 여전히 낮다. 일부에서는 한국의 지정학적 위험을 감안하면 당연한 디스카운트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2007년 말 코스피지수가 2085에서 고점을 기록할 당시 우리 시장의 PER는 13.4배에 달했다.

그리고 2년 뒤인 2009년 5월 코스피지수가 1300에 불과한데도 시장의 PER는 역시 13배에 달했다. 2007년은 경기 호황과 이에 편승한 펀드 붐에 따라 주식시장이 오버슈팅한 결과이고 2009년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의 후유증으로 기업의 실적이 악화되면서 PER가 높아진 것이다.

두 기간 모두 지정학적 리스크에 변함이 없었는데도 PER가 13배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한국 주식시장이 PER 10배 아래에 머물러야 할 정당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역사적 고점인 13배 수준에 이르려면 코스피지수가 2700이 돼야 한다. 일부 공격적 낙관론자들이 주장하는 지수대이기도 하다.


또다시 벌어진 ‘외국인들의 잔치’

그렇다면 올해 기업의 실적 모멘텀이 줄어드는 국면에서 무슨 이유와 계기로 주식시장이 크게 오를 수 있을지 따져봐야 한다. 우선 기업의 실적 증가율에 비해 주가가 덜 올랐다는 소위 이연효과(Lagging Effect)를 기대해볼 수 있다.

코스피지수가 2000을 돌파했던 지난 2007년도 상장회사 영업이익의 총계는 70조 원에 불과했는데 2010년에는 100조 원을 넘어섰다. 43%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반면 같은 기간 시가총액은 21% 늘어나는데 그쳐 기업의 가치 대비 가격(주가)이 더 올라야 한다는 기대감이 남아 있다.

다음으로 주식시장 참가자들의 수급에서 그 이유를 찾고 싶다. 물론 주식시장의 심리와 수급은 유리그릇과 같아 돌발 변수에 의해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경기 상승을 수반한 강세 국면에서의 수급은 속성상 일정한 패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일관된 경험이다.

그래서 ‘수급은 재료에 우선한다’는 증시 격언이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누가 뭐래도 현재 주식시장을 이끌고 있는 수급의 주체는 외국인이다. 2009년 30조 원어치를 사고 2010년에도 20조 원어치를 사들였다.

외국인들의 한국 주식 사랑은 유럽의 재정 위기, 천안함과 연평도 도발에도 전혀 위축되거나 식을 줄 모른다. 마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한국 찬양’에 부응하는 듯한 인상마저 받는다.

그렇다면 향후 장세 전망도 외국인들의 손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심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분석하는 일이 중요하다. 현재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 주식의 보유 비중은 시가총액의 32.8%, 금액으로는 370조 원에 달한다.

리먼 사태 이후 증시 공황 국면에서 외인 비중이 한때 29%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오르고 있다. 1992년 증시 개방 이후 외국인 비중이 최고에 달한 해는 2004년 9월의 44%다. 이론적으로 다시 그 높이에 이르려면 100조 원 이상을 매수해야 가능하다.

다시 말해 최근 2년 동안 외국인의 집중적인 매수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 주식 보유 비중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어쩌면 외국인들도 엉겁결에 한국 주식을 많이 비워 놓고 허둥지둥 쫓아가면서 채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심화되면서 한국을 위시한 이머징 마켓에서 대거 철수한 해외 자본들은 위기 국면에서 더욱 돋보이는 한국 기업들의 체질과 경쟁력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정보기술(IT)·자동차·화학·철강·조선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다양한 산업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고 중국과 인도 등 떠오르는 거대한 소비 시장을 코앞에 둔 한국 경제와 기업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또 이머징 마켓과 선진국 증시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밸류에이션을 갖추고 있고 원화 가치의 절상까지 기대되는 ‘꿩 먹고 알 먹는’ 시장도 흔하게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국내 투자자들, 특히 비관에 사로잡힌 개인 투자자들의 펀드 환매 물량과 주식 매도 물량을 기다렸다는 듯이 받아가고 있다.

펀드 환매 물량 겨우 4조 남았다

필자는 이번 상승장이 철저히 외국인에 의한 외국인을 위한 잔치로 끝날 공산이 크다고 본다. 물론 연·기금이 13조 원 가까이 매수했고 자문형 랩으로 4조~5조 원이 몰리기는 했지만 외국인들의 매수 규모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만일 외국인들이 여기에서 한국 주식을 3%만 더 산다고 하더라도 34조 원이 더 유입돼야 한다. 만일 올 5월 한국이 모건 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증시에 편입된다고 가정하면 이론적으로 300억 달러(35조 원) 이상이 유입될 수 있다.

그래 봐야 외국인의 지분율은 35% 정도다. 여기에 올해 연·기금의 매수 여력이 8조~10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자문형 랩어카운트의 규모도 15조 원에서 20조 원에 육박할 가능성이 높다. 공통점은 모두 대형 우량주를 선호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핵심 우량주의 수급이 눈에 띄게 가벼워질 공산이 크다. 씨름판으로 치면 이미 외국인에게 안다리를 걸려도 단단히 걸린 셈이다. 유럽 국가들의 부도 위기에도, 남북 간의 군사적 충돌 위험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외국인들의 집요한 매수세를 지켜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다.

무언가 일을 내도 크게 낼 준비를 차곡차곡 해 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외국인들의 매수 주문을 받느라고 정신이 없어 그토록 기다리던 연말 휴가를 반납했다는 외국계 브로커의 푸념을 가볍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개인 투자자와 외국인 투자자 간의 팽팽한 매도-매수 공방이 임계점을 향해 나가고 있다. 코스피지수 2000 이상에서 대기하고 있는 환매 물량은 기껏해야 4조 원어치가 남았다. 이 물량이 소화되고 나면 싸움의 판세는 급격히 매수자 우위로 기울 가능성이 높다.

맹수들이 먹잇감에 접근할 때는 조심조심 엎드려 접근하지만 결정적 계기가 오면 강력한 스퍼트를 하듯 지금의 외국인 매집 국면도 이와 흡사해 보인다. 이미 안다리를 단단히 걸어 놓았으니 상대방의 중심이 흔들리는 결정적인 틈을 타 일거에 밀어붙이면 게임은 끝이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나 할까. 2009년 주식시장이 50%나 오르고 2010년에도 20% 가까이 올랐지만 증권가에 그다지 밝은 얼굴을 찾아보기 힘든 것도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강연회와 방송을 통해 마주하는 개인 투자자들의 한숨과 하소연이 귓전을 스친다.

우리가 스스로의 가치와 존엄을 내버리면 남이 우리 삶의 주인이 되는 법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경제와 기업에 대한 자긍과 확신으로 외국인의 손에 넘어가고 있는 증시주권(證市主權)을 되찾아야 할 때다. 아무쪼록 새해 들어 독자 여러분의 ‘성투(成投)’를 빌며 아름다운 부자가 되길 기원한다.


최남철 증권 칼럼니스트 serodasi@naver.com

‘꿈의 기울기에 투자하라’의 저자. 1988년 국민투자신탁 펀드매니저를 시작으로 푸르덴셜자산운용 등을 거쳐 현재 새로다시투자클리닉(cafe.naver.com/serodasi)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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