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복지’, 과연 뭘 담았을까

여의도 생생토크

며칠 전 종로의 한 식당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정책 브레인 역할을 하는 한 인사와 만나 즉석에서 ‘2012년 대선 키워드’에 대한 난상토론을 벌였다. 참석자들 대부분이 천안함·연평도 사태로 이어진 남북 간 긴장 고조로 통일 논의가 안보 이슈로 전환된 점에 우선순위를 뒀다.

예컨대 다음 대선에선 나라를 튼튼히 지켜내고 안정적인 안보 정책을 펼쳐나갈 후보가 유력하다는 전망이었다. 하지만 친박(친박근혜)계의 그 인사는 “안보와 함께 복지를 주목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며칠 뒤 박근혜 전 대표가 ‘한국형 복지’를 기치로 내걸고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열었을 때 기자는 “역시 준비하고 있었구나”하면서 무릎을 쳤다.

“2012 대선 키워드, 안보·복지 주목해야”

사실 박 전 대표는 지난 한 해 세종시 원안을 지켜내면서 충청권 민심을 고스란히 안게 됐고 현직 대통령과 맞상대하는 ‘강단’ 있는 모습으로 확고한 차기 1순위 자리 또한 지켜냈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 앞에 직면한 것도 사실이다.

세종시 수정안 부결로 쓴맛을 본 여권 주류와 이를 따르는 보수층의 정서적 앙금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박 전 대표가 꺼낸 화두가 바로 복지다.

사실 박 전 대표는 2009년 10월 26일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30주기 추도식에서 “아버지가 경제성장을 이룩하셨지만 경제성장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궁극적인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앞서 2009년 5월 미국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경제 발전의 최종 목표는 소외 계층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공동체의 행복 공유”라고 언급한 후 그의 복지 지향 경제관은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 글과 각종 연설 등에서 ‘행복’이란 단어로 줄곧 변주돼 왔다.

대선전이 시작되는 2011년 중반기를 앞두고 박 전 대표는 그동안 경제 참모들과 함께 갈고닦은 복지 개념을 지난해 12월 전격적으로 공개했다. 그는 공청회에서 “한국형 복지는 단순히 돈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꿈과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안에는 구체적인 실천 내용은 빠져 있다. 그러나 공청회 자료집을 뜯어보면 ‘한국형 복지’는 모든 이에게 똑같은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는 야당의 보편적 복지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구체적 사례로는 무상 급식 문제를 살짝 건드렸다. 자료집에는 “보호자의 소득수준에 따라 학비 및 급식비 등 교육 지원 대상자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시스템 개선이 가능하다”며 “무상 급식 대상이 일정 수준 이하(하위 70%)의 대상으로 결정되고 운영될 경우 이와 관련된 정책 조정 및 연계 체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나의 사례로 든 것이지만 무상 급식 대상을 소득수준 ‘하위 70%’ 이하로 해놓은 것은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최근 내걸었던 ‘70% 복지’ 정책과도 일맥상통한다. 복지의 수혜자는 대폭 확대할 수 있지만 능력이 있는 계층에까지 확대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물론 정치권에서 비판 여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는 MB식 복지와 보편적 복지를 내세우는 민주당 사이에 어정쩡한 위치라는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선별적 복지냐, 보편적 복지냐의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복지 지출이 후대에 부담되지 않아야 하고, 성장과 복지가 선순환될 수 있어야 한다”고 해 성장과 복지 어느 쪽에도 방점을 찍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여권의 한 중진은 “박 전 대표가 대권 행보 초기부터 복지 이슈를 선점한 것은 1위 주자다운 면모”라면서도 “하지만 재원 마련 방안 등이 명확하지 않다. 국민의 기대치를 높여 놓으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준혁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rainbo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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