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Ⅰ] ‘창조의 시대’ 주역으로 뜨다

한국 경제 이끌 차세대 리더들① - 삼성그룹 전자계열

한국 경제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피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고난을 담대하게 즐겼을 뿐만 아니라 더 높은 도약을 위한 지렛대로 삼았다.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국가 부도로 전쟁 이후 최대 난국이었다는 외환위기도 단숨에 아련한 추억 속으로 밀어 넣었다. 세계 금융 위기라는 외생변수 앞에서도 가장 빠른 속도로 원기를 회복했다.

포기를 모르는 한국 경제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역시 사람이다. 한국인의 저력이다. 군중의 저력을 하나로 모으는 이가 바로 리더다. 그래서 리더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경비즈니스는 신묘년 새해를 맞아 재계·금융계·학계 등에서 한국 경제를 이끌 차세대 리더들을 집중 조명할 계획이다. 첫 번째 순서로 삼성그룹을 다뤘다.


바다의 최강자는 항공모함이다. 최근 서해 한미 연합 훈련에 동원된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의 위력은 웬만한 국가의 국방력과 맞먹는 수준이다.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항공모함급 기업은 어디일까. 삼성그룹이다. 삼성의 자산 규모는 192조8000억 원(2010년 4월 공정거래위원회 발표 기준)으로 2009년 국내총생산(GDP 1050조 원)의 18%를 넘었다.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곳이 삼성그룹이라면, 삼성그룹을 대표하는 기업은 역시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인텔·IBM·노키아 등 세계 정상의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초일류 글로벌 기업이다.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액이 112조7600억 원이다. 영업이익도 14조2800억 원으로 국내에서는 경쟁 기업을 찾을 수 없다.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선 비결은 여러 가지겠지만 그중 하나는 삼성 특유의 인재 경영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1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한마디가 삼성의 인재 제일주의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 삼성전자에서는 어떤 인재가 각광받을까. 삼성전자의 인사 스타일은 5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성과를 중시한다. “성과 있는 곳에 승진 있다”는 말은 불문율이다. 탁월한 성과를 내는 임원은 과감한 발탁 인사로 공적을 인정받는다. 2011년 인사만 봐도 그렇다. 9명의 사장 승진자 중 무려 5명이 부사장 1년 차 미만에서 발탁됐다.

둘째, 반도체·무선사업부 소속 임원들의 승진이 빨랐다. 반도체 및 무선사업부는 삼성전자의 기둥이다. 기업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 2위이고 이익 규모도 가장 크다. 셋째, 영업·마케팅 전문가도 남부럽지 않은 대접을 받고 있다. 더욱이 해외시장 개척에 공을 세운 임원들이 한 걸음 앞서나갔다.

넷째, 연구·개발(R&D) 인력을 대우한다. 제조업에서 R&D는 기본 중 기본이다.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해서는 가장 먼저 혁신적인 신제품이 나와야 한다. 다섯째, 신사업에서 기회가 많다. 삼성은 유난할 정도로 미래를 걱정하는 기업이다.

이 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위기론을 설파한다. 그러면서 5년, 10년 뒤 먹고 살 ‘미래의 신수종’을 강조한다. 삼성 식으로 말하면 다가오는 미래는 ‘창조의 시대’다. 삼성이 ‘창조의 시대’의 주역이 될 참신한 인물 발탁에도 공을 들이는 이유다.

삼성의 뉴 리더는 누굴까. 삼성전자의 차기 최고경영자(CEO)군은 전무·부사장 집단이다. 부사장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언제든지 사장 반열에 오를 수 있다. 물론 언제든지 옷을 벗을 수도 있다.

삼성전자의 부사장은 2010년 12월 기준으로 23명이다. 이 중 일부는 2012년 또는 2013년에 ‘사장님’이 된다. 23명 중 2011년 신임 부사장이 13명이다. 반도체 및 무선사업부가 각각 4명, 3명의 부사장 승진자를 배출했다.

더욱이 박동건 반도체사업부 메모리제조센터장과 홍완훈 반도체사업부 미국 법인장이 주목된다. 둘은 승진 2년 만에 부사장에 오른 발탁 인사의 주인공들이다.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전무로 승진한 지 4~5년 차에 부사장에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박 부사장은 미국 버클리대 전자공학 박사 출신으로 메모리 공정 개발, 설계 및 제품 기술 업무를 거쳐 2009년 제조센터장에 부임했다. 이후 제조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제조·기술의 매트릭스 체제 도입과 설비 내재화(內在化:internalization)를 추진해 생산성과 메모리 수율을 대폭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성과 내는 인재가 뉴 리더

홍완훈 부사장은 반도체 부문의 해외 영업 전문가다. 미국 대형 거래처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해 법인 매출을 1년 만에 2배로 성장시키는 등 반도체 사업부의 사상 최대 성과 달성에 공을 세웠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김광현 반도체사업부 시스템LSI 전략마케팅팀장과 정세웅 반도체사업부 시스템LSI SOC 개발팀장은 비메모리반도체 분야의 선두 주자다.

김 부사장은 주문형 반도체(ASIC) 설계 전문가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앱 칩을 기획하고 핵심 거래처에 공급하는데 성공하면서 공을 인정받았다.

정 부사장은 반도체 SOC 개발 전문가다. 고성능 모바일 AP 제품을 개발해 갤럭시S와 갤럭시탭에 적용하며 SOC 사업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판을 듣고 있다.

무선사업부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이 이제 성장 단계라는 점을 감안하면 반도체사업부 만큼이나 승진 기회가 많은 부서다. 김종호 무선사업부 글로벌 제조팀장은 휴대전화 및 세트 제조 전문가다.

2006년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을 수상한 김 부사장은 휴대전화 제조 부문에서 쌓아 온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사 셀(Cel) 라인 전환 등 제조 혁신을 주도해 왔다. 2009년부터 전사 제조기술센터장을 겸직하고 있다.

2010년 도요타 사태를 겪으면서 품질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더구나 생산 기지의 글로벌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글로벌 제조 혁신의 노하우가 있는 김 부사장의 활동 범위가 더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돈주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팀장은 갤럭시S를 세계적인 히트 상품으로 만든 공을 인정받아 부사장 대열에 올랐다. 그는 스마트폰 비중을 1년 만에 3%에서 10%대로 끌어올렸다. 갤럭시S는 소비재 상품으로는 최초로 일본에서도 돌풍을 일으키는 등 2011년에 세계 시장점유율을 더욱 끌어올릴 것으로 관측된다.

마케팅·영업 전문가들의 미래도 밝다. 김양규 부사장(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영상전략마케팅팀장)은 세트 부문 해외 영업 전문가다. 프랑스 법인장 시절 평판 TV 1위 달성 등 유럽 시장의 성장을 이끌었다. 2009년 TV 마케팅 수장으로 부임한 후에는 ‘LED TV, 3D TV=삼성’이라는 인식을 확고히 하면서 TV 사업 세계 1위를 견인했다는 평가다.

유두영 부사장(중남미 총괄) 또한 상파울루 지점장, 가전 중남미 수출 담당을 거친 중남미 전문가로, 2008년 중남미 총괄 부임 후 매출이 175% 늘어나는 등 신시장 개척의 일등 공신이다.

기존 부사장은 10명이다. 2010년 3분기 보고서에 기재된 부사장은 모두 25명이다. 15명이 승진했거나 다른 계열사로 전보했다. 일부는 현직에서 물러났다. 기존 10명 중에는 삼성전자가 향후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사업부를 맡고 있는 부사장들이 눈길을 끈다.

최창식 부사장(LCD광에너지사업팀장)은 삼성전자가 차기 성장 동력으로 지목한 태양전지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핵심 인물이다. 서울대 재료공학과 출신으로 시스템LSI 분야를 맡아왔다.


‘자랑스러운 삼성인상’ 수상자 주목해야

홍창완 생활가전사업부장도 눈길을 끄는 인물이다. 홍 부사장은 1981년 입사 후 28년간 TV 개발에만 몸담으며 디지털 TV 1위 신화를 썼던 개발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삼성광주전자를 흡수 합병했다.

또 정밀금형개발센터를 설립하는 한편 해외 생산 거점 투자를 확대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LG전자에 뒤지고 있는 가전 부문을 집중적으로 키우겠다는 의도다. 삼성전자가 특유의 집중력으로 가전 사업에 힘을 쏟는다면 성장 폭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SMD)·삼성SDI·삼성LED·삼성SDS 등 전자 부문 주력 계열사들이 2011년 인사에서 조수인 사장(54), 박상진 사장(57), 김재권 신임 사장, 고순동 신임 사장 등 50대 중반의 젊은 수장들로 완전히 새로운 진용을 꾸렸다. 진용이 바뀌고 조직 개편이 진행 중인 곳이 적지 않아 차세대 리더를 꼽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2011년 인사를 통해 대강의 윤곽을 그려볼 수 있다.

먼저 삼성전기는 두 명의 부사장이 앞자리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종혁 부사장은 삼성전자 DM총괄 경영지원팀장(상무)을 거쳐 2004년 삼성전기로 옮겨와 2006년 경영지원실장(전무)에 이어 지난해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최치준 부사장은 2002년 삼성전기 MLCC사업팀장(상무)을 거쳐 2007년 칩부품사업부장(전무), 2009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LCR사업부장을 맡고 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남편인 임우재 전무도 그룹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삼성SDS에서는 올해 부사장으로 승진한 김형태 부사장과 이계식 부사장이 있다. 둘다 삼성전자 출신이다. 김 부사장은 1983년 삼성전자로 입사해 2007년 전무로 승진(물류그룹장)했고, 2010년 1월부터 글로벌LPO사업부장을 맡고있다. 이계식 부사장도 1982년 삼성전자로 입사해 2006년 전무(컨설팅본부장)로 승진했고 지난해부터 하이테크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삼성SDI에는 회사 내 여성 최초로 임원 반열에 오르며 유명세를 치른 김유미 전무가 돋보인다. 소형 2차전지 사업을 맡아 일본 산요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오르며 ‘우먼파워’를 과시했다. 이와 함께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사업의 흑자 전환을 이끈 박종호 상무가 전무로 승진하며 차세대 리더로 자리매김했다.

삼성코닝정밀소재와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에서는 각각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을 수상한 박원규 전무와 김성철 전무 등을 주목할 수 있다. 박 전무는 2008년 용해 불량 개선을 19.3%에서 8.8%로 줄이며 공적상을 받았다. 김 전무는 세계 최초로 고해상도 VGA급 AMOLED 기술 개발로 영예를 안았다.

취재=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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