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6%대 초반의 경제성장률, 30만 명이 넘는 취업자 수 증가, 3% 이내의 물가상승률. 2010년 한국 경제가 거둔 성적표다. 경제성장률은 당초 5% 내외였던 정부 예상치를 1%포인트 정도 뛰어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고 취업자 수 증가 폭도 정부 예상치 20만 명을 훌쩍 넘었다. 그런 가운데 물가상승률은 연간 3% 이내를 유지했다.해마다 이맘때면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을 상투적으로 쓰지만 2010년 역시 한국 경제에는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았다. 새해 벽두 한국 경제는 미국·유럽·중국 등 세계 3대 경제권으로부터 몰아닥친 ‘3각 파도’에 휩쓸렸다.
은행의 자기자본 거래를 제한하는 미국의 금융개혁법안, 그리스 등 유럽 국가들의 재정 위기, 중국의 긴축 움직임 등이 겨우 회복세로 접어든 세계경제의 암초로 등장했다.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은 그대로 국내로 이어져 1100원을 향해 하락하던 원·달러 환율은 1160원대로 튀어 올랐고 1700대 초반이던 코스피지수도 한때 1500대 중반까지 하락했다.
경제성장률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
유럽 재정 위기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이 그리스 등에 자금을 지원하면서 세계적인 위기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막대한 문제의 근원은 해결되지 않았다. 그리스에 이어 아일랜드가 구제금융을 신청했고 포르투갈·스페인·이탈리아 등도 재정 적자가 심각해 유럽 재정 위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G2라고 불리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도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웠다. 막대한 대중국 무역 적자를 내고 있는 미국은 위안화가 달러 대비 지나치게 평가절하돼 있다며 중국을 압박했고 중국은 미국의 무역 적자가 환율이 아닌 미국인들의 과소비 때문이라며 맞섰다. 미국의 위안화 절상 압력은 아시아 통화의 동반 강세로 이어져 원·달러 환율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에 이어 엔고에 시달리던 일본이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브라질과 태국이 외국인의 자본거래에 대한 세율을 인상하는 등 환율 갈등이 전 세계로 번졌다.
지난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시장 결정적 환율로의 이행과 경쟁적 평가절하 자제 등에 합의하면서 일단락됐지만 환율을 둘러싼 갈등은 언제든 세계경제의 뇌관으로 떠오를 수 있다.
북한의 도발에서 비롯된 지정학적 위험도 1년 내내 한국 경제를 불안하게 했다. 국내 금융시장은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크게 출렁거렸지만 사태가 확대되지 않으면서 이내 안정을 되찾았다. 북한이 권력 세습 과정에 있고 남북 관계가 전반적으로 악화되는 추세에 있어 북한 관련 리스크는 당분간 한국 경제에 큰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국내적으로는 배추를 비롯한 장바구니 물가 폭등이 서민들의 생활을 힘들게 했다. 전년 동월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월부터 8월까지 2%대를 유지하는 등 전반적인 물가는 안정세에 있었지만 서민 생활과 직결된 채소·어류·과일 등의 가격이 급등해 체감 물가는 그 어느 해보다 높았다.
한국 경제는 2010년을 뒤로하고 이제 새로운 한 해를 맞는다. 정부는 새해 경제성장률을 5% 내외로 전망했다. 4% 초반이 대부분인 민간 경제 연구 기관의 예상치보다 긍정적인 전망이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높아 경제성장률이 낮아질 가능성은 정부도 인정한다.
빠른 경기 회복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서민과 중소기업의 체감경기를 개선하는 것도 새해에 해결해야 할 과제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12월 14일 경제정책 방향 브리핑에서 “예전에 비해 성장이 고용으로 이어지는 효과가 약해졌지만 그래도 성장해야 일자리가 생긴다”며 “일자리가 최대의 복지라는 생각으로 서민 체감경기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유승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usho@hankyung.com